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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바디우가 말한 '사건(événement)'은 지금의 질서에서 '있는 것'으로 세어지지 않던 무언가가 갑자기 나타나, 그 전까지 진리로 여겨지지 않던 것을 진리로 만들 기회를 여는 순간이에요. 사건 자체가 진리는 아니고, 사람들이 그 뒤를 끝까지 따라갈 때 비로소 진리가 만들어져요.
친구 열 명이 모인 파티를 떠올려 볼까요.
문 앞에 붙은 명단에는 딱 열 명의 이름만 적혀 있어요.
그런데 명단에 없던 사람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와요.
이 순간, 파티라는 '상황'은 흔들려요.
못 본 척 넘길 수도 있고, 자리를 새로 만들어 그 사람을 받아들일 수도 있죠.
알랭 바디우(Alain Badiou)가 말한 '사건(événement)'이 바로 이런 거예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있다'고 셈해지는 것들의 목록이 있어요.
사건은 그 목록에 없던 것, 세어지지 않던 것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순간이에요.
사랑에 빠지는 순간, 혁명이 터지는 순간, 새로운 과학이 열리는 순간처럼요.
그래서 사건은 예정된 계획표에는 절대 적혀 있지 않아요.
늘 예상 밖에서 찾아오죠.
바디우는 1937년 1월 17일에 태어났어요.
출생지는 자료마다 달라서(한국어 위키백과는 모로코라고 전해요) 딱 잘라 말하긴 어려워요.
아버지 레몽 바디우는 수학자였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맞선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동했어요.
그는 프랑스 최고 학교 중 하나인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ENS)에서 공부했고, 나중에 질 들뢰즈, 미셸 푸코,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같은 유명한 철학자들과 함께 파리8대학 철학과를 세웠어요.
무엇보다 그의 삶을 흔든 건 정치였어요.
1968년 5월, 프랑스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큰 봉기가 있었어요.
바디우에게 이 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었어요.
세상이 늘 그대로일 줄 알았는데, 아무도 셈하지 않던 힘이 갑자기 터져 나왔으니까요.
이 경험이 평생 그의 철학을 이끌었어요.
바디우는 수학자의 아들답게 수학을 깊이 파고들었어요.
그래서 1988년 대표작 『존재와 사건』(L'Être et l'Événement)에서 아주 낯선 주장을 해요.
"존재를 이야기하려면 수학, 그중에서도 집합론을 써야 한다"고요.
그의 핵심 문장은 '일자는 없다(l'Un n'est pas)'예요.
세상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전체'나 '신' 같은 건 없고, 있는 건 오직 여럿(다자)뿐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그는 하나뿐인 우주도, 신의 존재도 부정하는 철저한 무신론자예요.
그럼 사건은 이 질서 어디에서 올까요?
바디우는 '공집합(Ø)', 즉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텅 빈 자리에서 온다고 봐요.
지금 셈에는 '없는 것'으로 취급되던 빈자리, 거기서 사건이 솟아난다는 거예요.
파티 명단에 이름이 없던 손님처럼요.
여기가 제일 중요한 대목이에요.
사건이 일어났다고 곧바로 진리가 되는 건 아니에요.
사건은 그저 문을 열어 줄 뿐이에요.
바디우는 갈릴레오를 예로 들어요.
갈릴레오가 관성의 원리를 처음 외쳤을 때, 그는 아직 새로운 물리학의 '진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데카르트, 뉴턴 같은 사람들이 뒤를 이어 오랜 시간에 걸쳐 그 길을 따라갔을 때 비로소 진리가 채워졌죠.
즉 진리는 사건 하나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그 사건에 끝까지 충실한 사람들이 한 걸음씩 만들어 가는 과정이에요.
바디우는 진리가 만들어지는 자리를 네 가지로 봐요.
예술, 사랑, 정치, 과학이에요.
그는 이걸 '진리 절차'라고 불러요.
| 진리 절차 | 사건의 예 |
|---|---|
| 사랑 | 두 사람이 서로에게 빠지는 순간 |
| 정치 | 혁명이나 봉기가 터지는 순간 |
| 예술 | 새로운 형식이 처음 나타나는 순간 |
| 과학 | 갈릴레오처럼 새 원리가 열리는 순간 |
철학은 이 네 가지에 기대어 살아가는데, 만약 철학이 그중 하나에만 딱 달라붙으면(그는 이걸 '봉합'이라 불러요) '철학적 재앙'이 벌어진다고 경고해요.
첫째, 사건을 '내가 마음대로 결정하면 진리가 된다'는 이야기로 오해하기 쉬워요.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를 '결정주의자'라고 불렀는데, 정작 바디우는 이 딱지를 강하게 거부했어요.
진리는 개인의 변덕이 아니라 오랜 충실함으로 다시 세워지는 것이라고 봤거든요.
둘째, 그의 수학 사용은 학계에서 논쟁거리예요.
앨런 소칼, 로저 스크루턴 같은 학자들은 그가 칸토어나 코언의 수학을 정확히 이해하고 쓴 게 아니라고 비판했어요.
그러니 '수학으로 완벽히 증명된 철학'이라고 말하면 지나쳐요.
여기서는 그가 수학의 언어를 빌려 존재를 새롭게 생각하려 했다는 정도로 기억하면 돼요.
바디우의 '사건'은 지금 질서에서 세어지지 않던 것이 텅 빈 자리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순간이에요.
그 순간 자체는 진리가 아니라 진리로 가는 문일 뿐이고, 그 뒤를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들의 충실함이 사랑·정치·예술·과학에서 진리를 만들어 가요.
명단에 없던 손님이 문을 두드릴 때, 그 문을 열고 끝까지 함께 걸어갈지는 우리 몫이라는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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