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바디우가 말한 공(vide)은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는 수학의 공집합이에요. 그는 세상 만물의 밑바닥에 모든 걸 하나로 묶는 중심이 아니라 텅 빈 자리가 있고, 존재의 진짜 이름이 바로 그 공집합이라고 봤어요.
빈 상자를 하나 떠올려 보세요.
뚜껑을 열면 안에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신기하죠?
'아무것도 없음'이라는 상태 자체는 분명히 있어요.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1937년생)가 말한 '공(vide)'이 바로 이거예요.
프랑스어로 vide는 '텅 빔'을 뜻하고, 수학에서는 이걸 '공집합'이라고 불러요.
아무 원소도 들어 있지 않은 집합, 기호로는 Ø라고 써요.
바디우는 여기서 놀라운 말을 해요.
"존재의 진짜 이름은 공집합이다."
세상 모든 것의 가장 밑바닥에는 대단한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자리가 있다는 거예요.
이 한 문장이 그의 대표작 『존재와 사건』(L'Être et l'Événement, 1988년)의 출발점이에요.
바디우 철학의 첫 번째 규칙은 이거예요.
"일자는 없다(l'Un n'est pas)."
'일자'란 세상을 하나로 딱 묶어주는 커다란 중심, 이를테면 '우주 전체'라든가 '신' 같은 거예요.
바디우는 그런 하나짜리 중심은 없다고 봐요.
있는 건 여럿, 즉 '다자'뿐이에요.
그러면 그 여럿은 어디서 시작될까요?
바로 아무것도 없는 공집합에서요.
마치 숫자를 셀 때 0에서 출발하듯, 존재도 '텅 빔'에서 하나씩 쌓여 올라가요.
바디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요.
집합론에는 '자기 자신을 품는 집합은 없다'는 규칙(기초공리)이 있어요.
이 규칙을 따르면 '모든 것을 다 담는 하나의 거대한 전체'—우주 전체나 신 같은 존재—는 성립할 수 없어요.
그래서 바디우는 철저한 무신론자예요.
다만 짚어둘 게 있어요.
바디우는 여럿을 정확하게 생각하는 유일한 길이 '집합론'이라며 책에 수학 기호를 잔뜩 썼는데, 앨런 소칼이나 로저 스크루턴 같은 학자들은 그가 수학을 엄밀하게 쓰지 않았다고 비판했어요.
그러니 '수학으로 완벽히 증명된 철학'이라기보다, 수학의 아이디어를 철학에 빌려 온 시도로 이해하면 좋아요.
여기서 재미있는 질문.
다 정해진 세상에 '새로움'은 어떻게 생길까요?
반에서 늘 같은 아이들이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예상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처럼요.
바디우는 이 '새로움'을 '사건(événement)'이라고 불러요.
사건은 평소에 눈에 안 보이던 그 '공', 텅 빈 자리에서 갑자기 솟아나요.
세상이 미처 세어 두지 못한 빈틈에서 말이에요.
그리고 누군가 그 사건을 알아보고 이름을 붙이며 "이건 진짜야" 하고 끝까지 따라가면, 거기서 '진리'가 만들어져요.
바디우는 이걸 '결정 불가능한 것에 대해 결정하라'고 표현해요.
미리 정답이 없는 일을 두고, 그래도 믿고 걸어가는 사람—그 사람을 '주체'라고 불러요.
참고로 바디우는 이 말을 '내키는 대로 결정하면 다 참이 된다'는 뜻으로 오해받는 걸 몹시 싫어했어요.
진리는 기분이 아니라, 사건을 끝까지 지켜 가는 오랜 과정에서 세워지는 거예요.
바디우가 멋진 건, 이 '텅 빔에서 진리가 솟는다'는 생각을 삶의 여러 곳에 똑같이 적용한다는 점이에요.
그는 진리가 만들어지는 길을 네 가지로 봤어요.
| 영역 | 텅 빈 자리에서 생기는 사건 |
|---|---|
| 과학 | 아무도 못 풀던 문제에서 새 발견이 나와요 |
| 정치 | 억눌려 안 보이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요 |
| 예술 | 낡은 형식을 깨는 새 작품이 태어나요 |
| 사랑 | 남남이던 두 사람이 '우리'가 돼요 |
사랑을 예로 들어 볼까요?
서로 몰랐던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 세상은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아니라 '둘'이라는 새로운 눈으로 바뀌어요.
이것도 하나의 사건이고, 그 사랑을 매일 지켜 가는 게 진리를 만드는 일이에요.
바디우는 철학이 이 네 가지 중 하나에만 딱 달라붙으면 안 된다고 봤어요.
그렇게 되면 '봉합(suture)'이라는 병이 생겨요.
진리를 오직 과학으로만 따지려 하면, 사랑이나 정치의 진리는 놓치고 말거든요.
바디우의 '공(vide)'은 어렵게 들리지만 뼈대는 단순해요.
세상 밑바닥에는 모든 걸 묶는 대단한 중심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자리가 있어요.
그 자리를 그는 수학의 공집합(Ø)에 빗대며 "존재의 이름은 공집합"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새로움은 바로 그 빈틈에서 솟아나요.
세상이 미처 세지 못한 자리에서 '사건'이 터지고, 그걸 믿고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이 '진리'를 만들어요.
과학이든 정치든 예술이든 사랑이든 똑같아요.
텅 빔은 모자람이 아니라, 새것이 태어날 수 있는 여백이라는 것—이게 바디우가 우리에게 건네는 생각이에요.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