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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바디우는 진리가 처음부터 완성돼 있는 게 아니라, 예상 못 한 '사건'이 터진 뒤 사람들이 그 사건에 끝까지 충실하면서 한 걸음씩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봤어요. 그리고 그렇게 진리가 태어나는 자리는 예술·사랑·정치·과학 네 곳뿐이라고 했지요. 이 네 가지 만들기 과정을 '진리 절차(procédures de vérité)'라고 불러요.
보물찾기를 떠올려 볼까요. 보통 우리는 진리가 어딘가 이미 숨어 있고, 똑똑한 사람이 그걸 '발견'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1937년 1월 17일생)는 다르게 봤어요. 진리는 찾아내는 게 아니라, 레고를 오래 쌓듯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요.
바디우는 프랑스의 철학자예요. 파리의 명문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ENS)에서 철학과 학과장을 지냈고, 아버지 레몽 바디우(Raymond Badiou, 1905~1996)는 수학자였어요. 그래서인지 그의 대표작 『존재와 사건』(L'Être et l'Événement, 1988년)에는 수학 이야기가 잔뜩 나와요. 그가 말한 '진리 절차'란, 진리가 만들어지는 네 가지 과정을 가리켜요.
교실에서 늘 하던 대로 지내다가, 어느 날 아무도 예상 못 한 일이 벌어졌다고 해 봐요. 기존 규칙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이요. 바디우는 이렇게 기존 질서에 딱 들어맞지 않는 뜻밖의 순간을 '사건(événement)'이라고 불러요.
사건은 그 자체로는 아직 진리가 아니에요. 중요한 건 그다음이에요. 누군가 "이건 중요한 일이야"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 뒤로 오랫동안 그 사건에 충실하게(fidélité) 살아갈 때 진리가 조금씩 모습을 갖춰요. 바디우는 갈릴레오가 관성 원리를 처음 말했을 때, 그 진리는 데카르트나 뉴턴처럼 뒷사람들이 우연히 이어받아 채워 준 오랜 시간 뒤에야 완성됐다고 설명해요. 진리는 한순간의 번쩍임이 아니라 긴 이어달리기인 셈이에요.
바디우는 진리가 아무 데서나 생기지 않는다고 했어요. 딱 네 영역에서만 태어난다고 봤지요.
| 영역 | 진리가 만들어지는 예 |
|---|---|
| 예술 | 새로운 시·그림이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요 |
| 사랑 | 두 사람이 만나 '둘의 세계'를 함께 지어요 |
| 정치 | 모두가 평등한 새 질서를 함께 세워요 |
| 과학 | 갈릴레오처럼 자연의 새 법칙을 밝혀요 |
이 네 가지가 바로 진리 절차예요. 그리고 바디우는 철학이 이 네 영역보다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들에 기대어(조건 삼아) 움직인다고 했어요.
철학은 네 영역 중 어느 하나에 자신을 꿰매 붙이면 안 돼요. 바디우는 이렇게 한 곳에만 매달리는 걸 '봉합(suture)'이라고 부르고, 그러면 '철학적 재앙'이 온다고 경고했어요.
예를 들어 진리 검증을 오직 과학(언어·논리)에만 맡겨 버리거나, 스탈린식으로 오직 정치에만 묶어 버리면, 철학은 나머지 세계를 못 보게 돼요. 네 다리로 서 있어야 할 의자를 한 다리로만 세우려는 것과 비슷해요.
바디우 존재론의 핵심 문장은 '일자는 없다(l'Un n'est pas)'예요. 세상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통일체는 없고, 모든 것은 여럿이라는 뜻이지요. 그는 이 '여럿'을 다루는 가장 정확한 언어가 수학의 집합론이라고 봤어요. 아무것도 안 든 상자인 공집합(Ø)을 존재의 출발점으로 삼기도 했고요.
다만 여기엔 주의할 점이 있어요. 앨런 소칼, 로저 스크루턴 같은 학자들은 바디우가 칸토어·괴델·코언의 수학을 정확히 쓰지 않았다고 비판했어요. 그러니 '수학으로 완벽히 증명된 철학'이라고 오해하면 안 돼요. 또 바디우는 "결정하면 참이 된다"는 식의 단순한 결단주의자(decisionist)로 불리는 걸 강하게 거부했어요. 사건에 이름을 붙이는 용기는 필요하지만, 진리는 그 뒤 긴 충실함으로 검증된다는 거예요.
바디우의 진리 절차는 '진리는 발견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돼요. 뜻밖의 사건이 터지고, 사람들이 거기에 충실하게 오래 매달릴 때, 예술·사랑·정치·과학 네 영역에서 진리가 자라나요. 철학은 그 네 곳 중 하나에만 붙지 않고 넷을 함께 껴안을 때 건강해요. 다음에 "이게 진짜야" 하고 확신이 드는 순간이 온다면, 그건 이미 완성된 답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된 이어달리기의 첫 구간일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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