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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충실성(fidélité)이란 내 삶을 뒤흔든 어떤 '사건'을 만난 뒤에, 그 사건이 옳았다는 걸 오랜 시간 행동으로 지켜 나가는 태도예요. 바디우는 이렇게 끝까지 지키는 과정에서 비로소 '진리'가 만들어진다고 봤어요.
어느 날 정말 좋은 노래를 처음 들었다고 해볼게요. 가슴이 쿵 내려앉는 그 순간은 몇 분이면 지나가요. 그런데 그 뒤로 매일 그 밴드를 찾아 듣고, 악기를 배우고, 나도 곡을 만들기 시작해요. 몇 년이 지나면 그 짧은 순간이 내 삶 전체를 바꿔 놓은 거죠. 이렇게 '그 순간'을 오래 지켜 나가는 태도, 그게 바로 충실성이에요.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1937년 1월 17일생)가 쓴 원어는 '피델리테(fidélité)'예요. 흔히 '충실성'이라고 옮기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지키는 '신의'와 비슷한 말인데, 바디우는 이 말을 훨씬 크게 썼어요. 나를 뒤흔든 그 사건에 계속 충실한 사람만이 새로운 진리를 세상에 만들어 낸다고 본 거예요.
바디우 철학의 출발점은 '사건(événement, 에벤망)'이에요. 사건은 지금까지의 질서로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던 일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거예요. 첫사랑, 낡은 세상을 뒤엎는 혁명, 지금껏 없던 과학의 발견 같은 것들이죠.
그런데 사건 자체는 번개처럼 순식간에 지나가요. 정말 중요한 건 그다음이에요. 그 사건에 이름을 붙이고, '이건 진짜였어'라고 믿으며 끝까지 밀고 나가는 사람이 있어야 사건이 의미를 가져요. 바디우는 이렇게 사건에 충실한 사람을 '주체(sujet)'라고 불렀어요. 사건이 씨앗이라면, 충실성은 그 씨앗을 몇 년이고 물 주며 키우는 손길인 셈이에요.
바디우는 대표작 『존재와 사건』(L'Être et l'Événement, 1988년)에서 갈릴레오 이야기를 들어요.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이래요. "갈릴레오가 관성의 원리를 선언했을 때, 그는 아직 새로운 물리학의 진리로부터 데카르트나 뉴턴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온갖 우연한 만남들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다"(『존재와 사건』 401쪽). 쉽게 풀면, 갈릴레오 한 사람이 한순간에 새 물리학을 완성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갈릴레오가 씨앗을 뿌리고, 데카르트가 이어받고, 뉴턴이 또 이어받으면서 여러 세대에 걸쳐 조금씩 진리가 자라났어요. 그러니까 진리는 처음부터 완성된 채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사건에 충실한 사람들이 대를 이어 만들어 가는 긴 과정이에요. 참이라는 게 미리 증명돼 있어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충실하게 지어 나가는 동안 비로소 참이 되어 간다는 거죠.
바디우는 진리가 만들어지는 자리를 딱 네 곳으로 봤어요. 이걸 '진리 절차'라고 불러요. 서로 다른 영역인데, 사건과 충실성이라는 뼈대는 똑같아요.
| 진리 절차 | 사건의 예 | 충실성의 모습 |
|---|---|---|
| 과학 | 새로운 발견 | 여러 세대가 이론을 이어 감 |
| 정치 | 혁명, 봉기 | 그 이상을 계속 실천함 |
| 사랑 | 두 사람의 만남 | 매일 관계를 지켜 나감 |
| 예술 | 낯선 작품의 등장 | 새 형식을 밀고 나감 |
바디우는 철학이 이 네 가지에 기대야 한다고 봤어요. 만약 철학이 그중 하나에만 매달려 버리면(그는 이걸 '봉합, suture'이라고 불렀어요) 재앙이 생긴다고 경고했죠. 그래서 그의 철학은 수학, 정치, 사랑을 하나의 지도 위에 나란히 올려놓아요.
충실성을 '내가 참이라고 우기면 참이 된다'는 말로 오해하기 쉬워요. 하지만 바디우는 자신이 '결정주의자(decisionist)'로 불리는 걸 아주 강하게 거부했어요.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거든요.
핵심은 '진짜로 일어난 사건'이 먼저 있고, 그 뒤에 오랜 시간 충실하게 그 결과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밀고 나가는 거예요. 밴드에 반한 사람이 그냥 좋아한다고 말만 하는 게 아니라, 매일 연습하고 곡을 만들며 몸으로 증명하듯이요. 충실성은 말이 아니라 지켜 나감이에요.
바디우의 충실성은 어렵게 들리지만, 한 문장으로 기억하면 돼요. "내 삶을 뒤흔든 사건을 오래 지켜 나갈 때 진리가 생긴다." 사건은 순간이지만 충실성은 시간이 걸려요. 갈릴레오에서 뉴턴까지 이어졌듯이, 진리는 미리 완성돼 있는 게 아니라 충실한 사람들이 함께 지어 가는 거예요. 수학이든 정치든 사랑이든, 반짝인 그 순간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만이 새로운 것을 세상에 남긴다는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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