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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혁명적 행동주의는 세상을 책상 위 이론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낡은 질서를 실제로 부수는 행동에서만 새 세상이 열린다고 본 바쿠닌의 태도예요. 그래서 그는 글보다 봉기 현장에 먼저 서 있었어요.
미하일 바쿠닌은 1814년 러시아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혁명 사상가예요.
국가와 권위에 맞선 무정부주의를 펼친 인물인데, 오늘은 그 여러 생각 중에서 '혁명적 행동주의' 하나만 좁게 들여다볼게요.
방이 너무 더러울 때, 청소 계획서를 백 장 써 봐야 방은 그대로예요.
결국 손으로 직접 치워야 깨끗해지죠.
바쿠닌은 세상을 바꾸는 일도 이와 같다고 봤어요.
아무리 멋진 이론을 종이에 적어도, 몸을 움직여 낡은 질서를 실제로 흔들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바뀐다는 거예요.
이게 '혁명적 행동주의'의 뼈대예요.
토론과 계획이 아니라 행동, 그것도 봉기 같은 직접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은 거죠.
그에게 혁명은 언젠가 올 먼 사건이 아니라, 지금 당장 손을 대야 하는 일이었어요.
바쿠닌이 젊은 시절 1842년에 쓴 글 「독일에서의 반동」 끝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고 전해져요.
"파괴의 열정은 곧 창조의 열정이다."
(이 문장은 한국어로 옮겨진 형태로만 자료에 남아 있어요.)
말이 좀 무섭게 들리지만, 뜻은 단순해요.
오래된 집을 헐지 않으면 그 자리에 새 집을 지을 수 없잖아요.
바쿠닌에게 부수는 일은 그냥 난동이 아니라, 새것이 들어설 자리를 비우는 일이었어요.
낡은 왕정과 억압을 무너뜨리는 그 손길 자체가 이미 새 세상을 짓기 시작한 거라고 본 거죠.
그래서 그의 행동주의는 '부수기'와 '만들기'를 따로 떼어 놓지 않아요.
부수는 순간이 곧 짓기 시작하는 순간인 셈이에요.
이 대목이 그의 행동주의를 단순한 폭력과 갈라놓는 지점이에요.
바쿠닌이 특별한 건, 이 생각을 글로만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그는 유럽 곳곳의 봉기 현장에 몸소 뛰어들었어요.
다른 사상가들이 서재에서 혁명을 논할 때, 그는 실제로 거리에 나가 있었죠.
| 연도 | 뛰어든 현장 |
|---|---|
| 1848년 | 프라하 봉기 참가, 「슬라브인에게 고함」 발표 |
| 1849년 | 드레스덴 봉기 참가, 이후 체포·수감 |
| 1870년 | 프랑스 리옹 봉기 참가, 시청을 잠시 점거 |
| 1874년 | 이탈리아 볼로냐 봉기 계획 |
1849년 드레스덴에서 붙잡힌 뒤에는 사형 선고까지 받았고, 여러 요새 감옥을 거쳐 시베리아로 유배됐어요.
그런데 1861년, 그는 시베리아를 탈출해 일본과 미국을 돌아 런던까지 갔어요.
목숨을 건 이 긴 탈출 뒤에도 그는 다시 봉기의 현장으로 돌아왔죠.
생각과 삶이 이렇게 딱 붙어 있는 사상가는 드물어요.
바쿠닌에게 행동주의는 구호가 아니라 자기 몸으로 증명하는 일이었던 거예요.
행동을 앞세우다 보면 한 가지 물음이 남아요.
부수고 난 다음은요?
흥미롭게도 바쿠닌 자신이 이 위험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는 이렇게 경고했어요.
«Если взять самого пламенного революционера и дать ему абсолютную власть, то через год он будет хуже, чем сам Царь.» — "가장 열렬한 혁명가를 데려다 절대 권력을 준다면, 일 년 안에 그는 차르 자신보다 더 나쁜 자가 될 것이다."
봉기로 낡은 지배자를 몰아내도, 그 빈자리를 새 지배자가 차지하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의 행동주의는 '누가 권력을 잡느냐'가 아니라 '권력 자체를 어떻게 흩어 놓느냐'를 향해요.
역사가 폴 애브리치는 바쿠닌을 이렇게 요약했어요.
"농민 봉기를 갈망한 귀족이었고, 남을 지배하려는 충동을 가진 자유지상주의자였으며, 강한 반지성주의적 성향을 지닌 지식인이었다."
모순처럼 보이는 이 뒤섞임이 그의 행동주의를 뜨겁게도, 위태롭게도 만들었어요.
혁명적 행동주의는 한마디로 '몸으로 하는 혁명'이에요.
이론과 토론만으로는 세상이 안 바뀌니, 낡은 질서를 직접 부수는 행동에서 새 세상이 시작된다고 본 거죠.
바쿠닌은 이 믿음을 글로만 두지 않고 프라하·드레스덴·리옹·볼로냐의 봉기에 실제로 뛰어들었고, 시베리아 탈출까지 감행했어요.
동시에 그는 부순 뒤에 새 권력이 들어서면 헛일이 된다는 위험도 경고했죠.
그래서 그의 행동주의는 '부수기'와 '권력을 다시 세우지 않기'를 함께 품은, 뜨겁고도 조심스러운 태도로 기억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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