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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국가 권력을 손에 넣어야 한다고 봤고, 바쿠닌은 그 국가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봤어요. 바쿠닌은 아무리 뜨거운 혁명가라도 절대 권력을 쥐면 결국 예전 황제보다 더한 독재자가 된다고 경고했지요.
미하일 바쿠닌은 국가와 권위에 맞선 무정부주의(아나키즘) 사상가예요.
그런 그가 카를 마르크스와 크게 부딪쳤다고 하면, 흔히 "사이 나쁜 두 사람이 싸웠나 보다" 하고 넘기기 쉬워요.
그런데 이 다툼은 단순한 감정싸움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두고 갈린 노선 싸움이었어요.
놀랍게도 두 사람은 처음부터 적은 아니었어요.
바쿠닌은 1844년 파리에서 마르크스를 처음 만났고, 1869년에는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기까지 했어요.
마르크스의 생각을 러시아 사람들에게 소개한 사람이 바쿠닌이었던 거예요.
둘 다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억눌리는 세상을 뒤엎고 싶어 했다는 점에서는 같은 편이었어요.
문제는 "뒤엎은 다음에 무엇을 세울까"에서 생각이 정반대였다는 데 있었어요.
비유를 하나 들어볼게요.
나쁜 반장이 반 아이들을 괴롭히는 교실이 있다고 해봐요.
마르크스의 생각은 "착한 아이들이 힘을 모아 반장 자리를 빼앗아, 잠깐 동안 우리가 반장을 하자"에 가까웠어요.
노동자들이 국가라는 권력을 일단 손에 넣고, 그 힘으로 낡은 세상을 정리하자는 거였죠.
이 잠깐의 단계를 어려운 말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불러요.
바쿠닌의 생각은 달랐어요.
그는 "반장 자리 자체가 문제야. 누가 앉든 그 자리는 결국 남을 짓누르게 돼 있어. 그러니 반장 제도를 아예 없애자"고 했어요.
국가라는 권력은 누가 쥐든 사람을 지배하게 되니, 손에 넣을 게 아니라 통째로 없애야 한다는 거예요.
두 사람의 갈림길을 표로 보면 이래요.
| 물음 | 마르크스 | 바쿠닌 |
|---|---|---|
| 국가 권력은? | 노동자가 일단 손에 넣는다 | 아예 없애야 한다 |
| 힘을 모으는 방식 | 중앙에 집중시킨다 | 위에서 내리누르는 권위를 거부한다 |
| 잠깐의 독재는? | 낡은 세상을 정리하는 데 필요하다 | 새로운 압제로 변한다 |
같은 목표를 보면서도, 한 사람은 권력을 도구로 쓰자 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도구가 곧 새로운 감옥이 된다고 본 거예요.
두 사람은 실제로 같은 단체 안에서 부딪쳤어요.
마르크스가 이끌던 국제노동자협회, 흔히 '제1인터내셔널'이라 부르는 노동자들의 국제 모임이에요.
바쿠닌은 1868년 여기에 들어가 아나키스트 편을 빠르게 넓혀 나갔어요.
한 지붕 아래에 권력을 쥐자는 쪽과 없애자는 쪽이 함께 있었으니, 부딪치는 건 시간문제였죠.
결국 1872년 헤이그 대회에서 바쿠닌은 아주 근소한 표 차이로 이 협회에서 제명(쫓겨남)됐어요.
마르크스 쪽은 바쿠닌이 비밀 조직을 운영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어요.
이 사건은 이후 마르크스주의 운동과 아나키즘 운동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큰 갈림길이 됐어요.
이 분열 이야기는 그 자체로 긴 주제라 여기서는 여기까지만 짚어둘게요.
헤어진 뒤 바쿠닌은 마지막 대표작 「국가주의와 아나키」(러시아어로 「Государственность и анархия」)를 써서 마르크스를 정면으로 겨냥했어요.
그는 마르크스를 당시 힘을 키우던 독일식 권위주의에 빗대며, 노동자가 잠깐 쥐겠다던 그 권력이 결국 소수 독재자들이 자기 자리를 영원히 지키는 독재로 굳어질 거라고 경고했어요.
이 경고를 가장 날카롭게 보여주는 문장이 있어요.
바쿠닌은 이렇게 말했어요.
«Если взять самого пламенного революционера и дать ему абсолютную власть, то через год он будет хуже, чем сам Царь.»
우리말로 풀면 "가장 열렬한 혁명가를 데려다 절대 권력을 준다면, 일 년 안에 그는 차르(러시아 황제) 자신보다 더 나쁜 자가 될 것이다"라는 뜻이에요.
나쁜 반장을 몰아내려던 착한 아이도, 아무도 못 말리는 권력을 손에 쥐면 또 다른 나쁜 반장이 된다는 거죠.
먼 훗날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이 대목을 두고 "사회과학에서 실제로 들어맞은 몇 안 되는 예언 중 하나"라고 평했어요.
다만 이 다툼이 늘 점잖았던 건 아니에요.
바쿠닌은 마르크스를 겨냥해 반유대주의적인 험한 표현까지 남겼는데, 이 대목이 그의 사상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는지는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갈려요.
바쿠닌과 마르크스의 대립은 사이 나쁜 두 사람의 말다툼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두고 갈린 두 노선의 충돌이었어요.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국가 권력을 잠깐 손에 넣자고 했고, 바쿠닌은 그 권력 자체가 새로운 압제가 되니 없애야 한다고 봤어요.
처음엔 함께 「공산당 선언」까지 나누던 사이였지만, 1872년 바쿠닌이 제1인터내셔널에서 쫓겨나며 두 운동은 갈라섰어요.
"절대 권력을 쥔 혁명가는 황제보다 나빠진다"는 그의 말은, 혁명 뒤에도 권력을 놓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다시 불려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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