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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토크빌은 프랑스혁명이 모든 것을 뒤엎어 새로 시작한 사건이 아니라, 낡은 왕정이 이미 오래전부터 밀어붙이던 중앙집권과 평등화를 격렬하고 빠르게 마무리 지은 사건이라고 봤어요. 혁명은 새 건물을 지은 게 아니라, 낡은 집이 향하던 방향을 단숨에 밀어붙였다는 거예요.
1789년 프랑스혁명 하면 보통 이렇게 생각하죠.
성난 시민들이 왕정을 완전히 부수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처음부터 만들었다고요.
그런데 알렉시 드 토크빌은 《구체제와 프랑스 혁명》(L'Ancien Régime et la Révolution, 1856년)에서 정반대로 말해요.
그는 이렇게 적었어요.
"Tout ce que la Révolution a fait, se fût fait, je n'en doute pas, sans elle."
풀이하면 "혁명이 이룬 모든 것은, 나는 의심치 않거니와, 혁명 없이도 이루어졌을 것이다"라는 뜻이에요.
이어서 혁명은 그저 "정치 상태를 사회 상태에, 사실을 관념에, 법을 관습에 맞추기 위한 격렬하고 신속한 수단이었을 뿐"이라고 했죠.
쉽게 말하면, 이미 바뀐 사회에 뒤늦게 법과 제도를 억지로 맞춘 게 혁명이라는 거예요.
비유를 들어볼게요.
아주 오래된 집이 있다고 해봐요.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기둥은 이미 삭았고, 벽은 조금씩 기울고 있어요.
어느 날 강한 바람이 불어 집이 우르르 무너졌다면, 사람들은 "바람이 집을 무너뜨렸다"라고 말하겠죠.
하지만 사실 집은 진작부터 무너지는 중이었고, 바람은 그저 마지막 한 방이었을 뿐이에요.
토크빌이 본 프랑스가 딱 이랬어요.
왕정은 수백 년에 걸쳐 지방 귀족의 힘을 조금씩 빼앗고, 모든 권력을 파리의 중앙 정부로 끌어모으고 있었어요.
신분이 사람의 자리를 미리 정해 버리던 옛 질서도 이미 안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었고요.
그가 말한 '조건의 평등'(l'égalité des conditions), 즉 신분이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미리 못 박지 않는 상태가 왕정 시대에 이미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 혁명은 없던 걸 만든 게 아니라, 이미 자라던 씨앗을 단숨에 터뜨린 셈이죠.
여기서 중요한 게 토크빌이 쓴 '격렬하고 신속한 수단'이라는 말이에요.
방향은 어차피 정해져 있었는데, 왜 굳이 피를 흘렸느냐는 물음이 남죠.
토크빌의 대답은 이래요.
사회는 이미 앞서 바뀌었는데 법과 제도, 특권만 옛날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마음은 새 옷을 입었는데 몸에는 낡은 옷이 걸려 있는 것처럼 어긋난 상태였죠.
이 어긋남이 오래 참을 수 없이 팽팽해지자, 사람들은 천천히 고치는 대신 한꺼번에 뜯어냈어요.
그래서 혁명은 새로운 발명이 아니라, 이미 진행되던 변화를 빠르고 거칠게 밀어붙인 지름길이었던 거예요.
토크빌은 이 지름길이 오히려 중앙집권 권력을 왕정 때보다 더 강하게 만들었다고 봤어요.
이 책엔 토크빌 개인의 사연이 깊게 배어 있어요.
그의 외가 쪽 증조부인 말제르브는 루이 16세의 대신이었는데 1793년 단두대에서 처형됐고, 그의 부모도 공포정치 시기에 감옥에 갇혔다가 1794년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면서 겨우 처형을 면했어요.
혁명은 그에게 남의 역사가 아니라 집안의 상처였던 거예요.
게다가 그는 1851년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반대하다 잠시 억류된 뒤 정계를 떠났어요.
자유를 외치던 혁명이 결국 또 다른 1인 권력으로 이어지는 걸 두 눈으로 본 거죠.
그래서 그는 물었어요.
"프랑스는 왜 자유를 원하면서도 자꾸 강한 중앙 권력으로 되돌아갈까?"
그 답을 과거에서 찾으려고 1856년 이 책의 1권을 냈고, 2권은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1859년 세상을 떠났어요.
《구체제와 프랑스 혁명》의 핵심은 하나예요.
혁명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단절이 아니라, 낡은 왕정이 수백 년 동안 준비해 온 흐름의 마무리였다는 거죠.
중앙으로 권력을 모으는 일도, 신분의 벽이 낮아지는 일도 이미 왕정 안에서 자라고 있었고, 혁명은 그 흐름을 격렬하고 빠르게 완성했을 뿐이에요.
그래서 토크빌은 과거를 잘 들여다봐야 현재가 왜 이런 모습인지 알 수 있다고 봤어요.
낡은 집이 어떻게 삭아 갔는지 봐야, 바람이 왜 그 집을 무너뜨렸는지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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