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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콩도르세는 혁명 재판소의 체포령을 피해 약 9개월을 숨어 지내며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를 썼어요. 자기 목숨이 끝나가는 순간에도 인류 전체는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으며, 그 믿음을 마지막 원고에 담았습니다.
먼저 이 사람이 누군지 한 줄만 짚을게요.
콩도르세(1743~1794)는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계몽사상가로, 열여섯 살에 수학 논문을 발표할 만큼 뛰어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 글이 다루려는 건 그의 수학이 아니라, 인생의 맨 마지막 장면이에요.
프랑스 혁명이 한창이던 1793년, 콩도르세는 혁명의 급진파와 부딪혔어요.
그가 지지하던 헌법 초안이 밀려나고, 급기야 그를 붙잡으라는 체포령이 떨어졌죠.
붙잡히면 곧 처형이라는 뜻이었어요.
그는 파리의 베르네 부인(Mme Vernet) 집으로 몸을 숨겼고, 그곳에서 약 9개월을 도망자로 지냈습니다.
언제 문이 두드려질지 모르는, 숨죽인 나날이었어요.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도망칠 궁리만 할 거예요.
그런데 콩도르세는 책상 앞에 앉아 원고를 썼어요.
그렇게 나온 책이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Esquisse d'un tableau historique des progrès de l'esprit humain)예요.
제목이 길지만 뜻은 단순해요.
"사람의 앎과 삶은 시대가 지날수록 계속 나아져 왔다"는 이야기를 원시시대부터 미래까지 죽 훑은 책이에요.
비유하자면,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불길 속에서 "그래도 인류는 결국 더 나은 곳으로 간다"는 편지를 써 내려간 셈이에요.
이 책은 그가 살아 있을 때 나오지 못했어요.
1795년, 그의 아내 소피 드 그루시(Sophie de Grouchy)가 남편이 죽은 뒤에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한 가지 짚어둘 게 있어요.
흔히 '옥중 집필'이라고 부르지만, 이 원고 대부분은 감옥이 아니라 숨어 지내던 은신처에서 쓰였어요.
그가 실제로 감방에 갇힌 건 삶의 마지막 이틀뿐이었거든요.
여기서 마음이 좀 이상해져요.
자기는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인류는 계속 좋아진다'는 밝은 책을 썼을까요?
실마리는 그의 친구가 남긴 초상에 있어요.
쥘리 드 레스피나스는 그를 이렇게 그렸어요.
« Cette âme calme et modérée dans le cours ordinaire de la vie, devient ardente et pleine de feu, s'il s'agit de défendre les opprimés... »
평소에는 차분하고 절제된 이 영혼이, 억압받는 이들과 인간의 자유를 지키는 일 앞에서는 뜨겁게 불타오른다는 뜻이에요.
콩도르세에게 진보의 역사를 쓰는 일은 곧 그 자유를 지키는 일이었어요.
자기 한 사람의 운명은 끝나도, 사람이 앎을 쌓아 더 나은 세상으로 간다는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고 본 거죠.
그래서 이 원고는 절망 속에서 쓴 유서가 아니라, 미래에 부치는 희망의 편지에 가까워요.
1794년 3월 25일, 콩도르세는 은신처가 더는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밖으로 나섰어요.
파리를 빠져나가려 한 거예요.
예전에 함께 지낸 쉬아르(Jean-Baptiste Suard)의 집에 몸을 부탁했지만, 밀고가 두려웠던 쉬아르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어요.
프랑스어 자료에는 이런 일화도 전해요.
클라마르의 한 선술집에서 그가 오믈렛을 시키자 하녀가 달걀을 몇 개 넣을지 물었고, 그가 "열두 개"라고 답했대요.
귀족이나 학자가 아니면 그렇게 많이 시킬 리 없다는 의심을 사서 붙잡히는 빌미가 되었다는 이야기예요.
결국 그는 클라마르에서 체포되어 '평등의 마을'이라는 뜻의 부르라렌 감옥에 갇혔고, 이틀 뒤 감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어요.
죽음의 원인은 지금도 확실하지 않아요.
반지에 숨긴 독을 먹은 자살이라는 설, 누군가에게 살해됐다는 설 등 여러 이야기가 엇갈리고, 어느 하나로 못 박기 어렵습니다.
콩도르세의 마지막 9개월은 도망자의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그 시간의 결과물은 도망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라는 희망의 역사서였습니다.
자기 목숨이 꺼져가는 와중에도 인류 전체는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으며 쓴 책이죠.
흔히 '옥중 집필'이라 부르지만 실은 은신처에서 쓴 원고이고, 세상에 나온 건 아내 소피의 손을 거쳐 그가 죽은 이듬해였어요.
사형선고 앞에서 미래를 기록한 사람, 그것이 콩도르세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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