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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콩도르세는 인간의 지식과 이성이 언젠가 멈춰 설 최종 한계가 없다고 봤어요. 그래서 세대가 이어질수록 우리 정신은 완성된 끝점에 닿는 게 아니라, 늘 조금씩 더 나아지며 끝없이 열려 있다는 거예요.
혹시 게임에서 레벨을 올려 본 적 있나요?
보통 게임은 만렙이라는 끝이 있죠.
그런데 콩도르세가 말한 인간의 진보에는 그 만렙이 없어요.
아무리 지식이 쌓여도 "여기서 끝"이라고 못 박을 지점이 없다는 거예요.
마리 장 앙투안 니콜라 드 카리타, 곧 콩도르세 후작(1743년부터 1794년까지 산 프랑스의 수학자)은 인류 역사를 한 편의 계단으로 봤어요.
원시 시대부터 자기가 살던 계몽의 시대까지, 인간은 한 칸씩 지식과 자유의 계단을 올라왔다고 정리했죠.
여기까지는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이야기예요.
콩도르세가 특별한 건, 이 계단이 위로 끝없이 이어져 있다고 못 박은 점이에요.
오르막의 꼭대기가 아예 안 보이는 계단이라고 상상하면 돼요.
놀라운 건 이 밝은 생각을 쓴 상황이에요.
콩도르세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체포령을 피해 파리의 한 부인 집에 약 9개월간 숨어 지냈어요.
언제 붙잡힐지 모르는 처지에서 그는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Esquisse d'un tableau historique des progrès de l'esprit humain)를 썼죠.
이 책은 그가 죽은 뒤인 1795년에 아내 소피 드 그루시의 손으로 세상에 나왔어요.
자기 앞날은 캄캄한데, 인류 전체의 앞날은 환하게 그렸다는 점이 이 책의 핵심이에요.
자신은 이 계단에서 곧 내려가야 하지만, 뒤따라 오르는 사람들의 걸음은 멈추지 않을 거라고 믿은 거죠.
그러니까 '진보의 무한성'은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인류라는 긴 행렬 전체에 관한 이야기예요.
콩도르세가 든 근거는 크게 세 가지로 묶을 수 있어요.
표로 보면 이래요.
| 무엇이 나아지나 | 콩도르세의 생각 |
|---|---|
| 나라 사이 | 앞선 지식이 늦은 곳으로 퍼져 격차가 줄어듦 |
| 사람 사이 | 교육이 넓어져 신분·성별에 따른 불평등이 줄어듦 |
| 사람 자체 | 학문·의학이 발전해 능력과 수명까지 늘어남 |
특히 세 번째가 파격적이에요.
콩도르세는 의학이 계속 발전하면 인간의 수명이 사실상 끝없이 길어져, 나중엔 사고나 살인 같은 우연으로만 죽게 될 거라고 내다봤어요.
이 대목 때문에 오늘날 철학자 닉 보스트롬은 그를 '초기 트랜스휴머니스트', 곧 기술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생각의 먼 조상으로 꼽기도 해요.
왜 이렇게까지 확신했을까요?
콩도르세가 수학자였다는 점이 열쇠예요.
그는 지난 역사에서 진보가 이어져 온 흐름을 보고, 그 흐름을 미래로 쭉 이어 그으면 앞으로도 이어질 거라고 본 거예요.
그가 쓴 말이 '사회의 완전가능성'(perfectibility of society)인데, '이미 완전하다'가 아니라 '얼마든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뜻이에요.
완성이 아니라 가능성에 방점이 찍혀 있죠.
네, 아주 유명한 반론이 있어요.
영국의 토머스 맬서스는 1798년 『인구론』을 쓰면서, 상당 부분을 콩도르세의 이 '완전가능성' 주장을 겨냥해 반박했어요.
맬서스의 논리는 이랬어요.
살기 좋아지면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데, 식량은 그만큼 빨리 늘지 못한다는 거죠.
그러니 진보가 끝없이 이어지긴커녕 굶주림과 가난이라는 벽에 부딪힌다는 거예요.
끝없이 오르는 계단이라는 콩도르세의 그림에, 맬서스는 "자원이라는 천장이 있다"고 맞선 셈이에요.
두 사람의 이 맞섬은 오늘날 성장과 환경을 둘러싼 논쟁의 아주 오래된 원형이라고 볼 수 있어요.
콩도르세의 낙관을 그대로 믿기는 어려워요.
20세기의 전쟁과 여러 재난은 역사가 늘 위로만 오르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줬으니까요.
그의 생각에는 자기 시대 유럽을 기준으로 다른 문화를 낮춰 본 편견도 섞여 있어, 지금은 비판적으로 다시 읽혀요.
그래도 남는 것이 있어요.
숨어 지내며 죽음을 앞둔 사람이, 그럼에도 뒤에 올 사람들의 삶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적어 둔 마음이에요.
진보가 저절로 굴러온다는 약속이 아니라, 교육을 넓히고 불평등을 줄이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붙잡은 태도죠.
무한한 계단이 정말 있는지는 몰라도, 다음 한 칸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로 읽으면 지금도 힘이 돼요.
콩도르세의 '진보의 무한성'은 인간의 지식과 이성에 최종 한계가 없어, 세대가 이어질수록 끝없이 더 나아진다는 생각이에요.
그는 체포를 피해 숨어 지내며 이 밝은 전망을 담은 책을 썼고, 그 책은 사후에 세상에 나왔어요.
나라 사이·사람 사이·사람 자체가 모두 나아진다고 봤고, 수명까지 끝없이 늘 거라 내다봤죠.
맬서스는 자원의 한계를 들어 반박했어요.
오늘 우리는 그의 낙관을 그대로 믿진 않지만, 다음 한 칸은 우리가 놓는다는 태도만은 기억할 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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