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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무대에서 펑펑 우는 명배우는 실제로 슬픈 게 아니에요. 디드로는 최고의 배우란 감정에 휩쓸리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정확히 재현하는 사람이라고 봤어요.
드니 디드로(1713~1784)는 백과전서를 편찬한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예요.
그가 남긴 『배우에 관한 역설』(Paradoxe sur le comédien)은 연극을 다룬 짧은 대화편인데, 던지는 질문 하나가 아주 뾰족해요.
"무대에서 눈물 흘리는 명배우는 정말로 슬플까?"
디드로의 답은 "아니요"예요.
정말 뛰어난 배우일수록 연기하는 그 순간에는 실제로 그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거죠.
슬픔에 진짜로 휩쓸린 사람은 목이 메고 대사를 놓치고 매번 연기가 달라져요.
반대로 최고의 배우는 슬픔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관객에게 슬프게 보이도록 목소리와 몸짓을 정확히 계산해요.
이게 왜 '역설'이냐면, 당시 사람들은 배우라면 남다른 감수성으로 진짜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디드로는 그 통념을 정반대로 뒤집었어요.
비유를 하나 들어볼게요.
아주 매운 떡볶이를 처음 먹고 눈물 콧물을 쏟는 사람은 요리를 못 해요.
정작 그 매운맛을 똑같이 재현하는 요리사는 자기가 울지 않아요.
몇 스푼을 넣어야 딱 그 맛이 나는지 침착하게 알고 있을 뿐이죠.
배우도 마찬가지라는 게 디드로의 생각이에요.
매일 밤 같은 장면에서 똑같은 높이로 울려면, 배우는 그 슬픔 바깥에 서 있어야 해요.
감정에 빠진 사람은 오늘은 이렇게 울고 내일은 저렇게 울어서 들쭉날쭉하지만, 감정을 '설계'하는 사람은 몇 번을 해도 똑같이 정확해요.
그래서 디드로는 배우의 재능이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 곧 관찰력과 판단력에 있다고 봤어요.
디드로는 이 생각을 무대 전체로 넓혔어요.
1758년 그는 '제4의 벽'(fourth wall)이라는 개념을 처음 꺼냈는데, 지금도 연극과 영화에서 쓰는 말이에요.
무대에는 좌우와 뒤, 벽이 세 개 있잖아요.
관객이 보는 앞쪽에도 보이지 않는 네 번째 벽이 있다고 상상하라는 거예요.
디드로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래요.
« Imaginez sur le bord du théâtre un grand mur qui vous sépare du parterre ; jouez comme si la toile ne se levait pas. » — "무대 가장자리에 관객석과 당신을 갈라놓는 커다란 벽이 있다고 상상하라. 마치 막이 오르지 않은 것처럼 연기하라."
관객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말고, 아무도 안 보는 것처럼 자기 세계에만 몰입하라는 뜻이죠.
이것도 앞의 역설과 통해요.
배우는 관객의 박수에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자기 연기를 통제해야 하니까요.
짚어둘 게 있어요.
"명배우는 실제로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주장은 디드로가 완전히 처음 한 말은 아니에요.
당대 배우였던 다네테르(D'Hannetaire)가 비슷한 이야기를 이미 했거든요.
다만 디드로는 이걸 철학적 대화편으로 날카롭게 벼려서, 지배적 통념을 뒤집는 '역설'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특별해요.
또 하나.
『배우에 관한 역설』은 디드로가 살아 있을 때 출판되지 못했어요.
『라모의 조카』, 『운명론자 자크』, 『달랑베르의 꿈』처럼 그의 대표작 상당수가 사후에야 세상에 나왔죠.
그래서 이 예리한 연기론도 당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가, 훗날 연극 이론의 고전이 됐어요.
이 역설은 무대 밖에서도 쓸모가 있어요.
발표를 앞두고 너무 긴장한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라"는 말은 오히려 독이 될 때가 있어요.
디드로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감정에 잡아먹히지 말고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을 관찰하라고요.
떨리는 손과 빨라지는 말투를 바깥에서 지켜보는 순간, 우리는 그걸 조금씩 다룰 수 있게 되니까요.
디드로의 '배우의 역설'은 한 문장으로 요약돼요.
최고의 배우는 감정을 진짜로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정확히 재현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뜨거운 가슴 대신 차가운 머리, 관객 앞에서도 '제4의 벽'을 세우고 자기 연기를 통제하는 힘.
배우는 남다른 감수성을 지녀야 한다는 오래된 통념을 뒤집었기에 '역설'이라 불렸고, 이 생각은 발표든 무대든 감정에 휩쓸릴 것 같은 순간마다 한 발 물러서 보라는 조언으로 오늘까지 이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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