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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백과전서 편찬 전쟁은 디드로가 20여 년 동안 교회와 정부의 금지, 믿었던 출판업자의 몰래 삭제까지 견디며 세상의 지식을 28권 책으로 모아낸 싸움이에요. 지식을 한데 모으는 일 자체가 당시엔 위험한 반항이었거든요.
여러분이 궁금한 걸 검색하면 위키백과가 뜨죠.
그런데 인터넷은커녕 전기도 없던 260여 년 전, 세상의 모든 지식을 종이책 한 질에 다 담으려 한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1713년부터 1784년까지 살았어요)예요.
그가 만든 책이 바로 『백과전서』, 말하자면 종이로 만든 위키백과인 셈이죠.
1750년에 "이런 책을 만들겠다"는 취지서가 나왔고, 1751년에 1권이 세상에 나왔어요.
처음엔 수학자 달랑베르와 둘이 편집을 맡았는데, 1759년 달랑베르가 손을 떼면서 디드로 혼자 편집장이자 최대 필자가 되었어요.
그가 직접 쓴 항목만 자료에 따라 5,000개에서 7,000개에 이르러요.
완간된 건 무려 1772년, 시작한 지 20년도 더 지나서였고 전부 합쳐 28권(글 17권, 그림 11권)이나 됐죠.
디드로가 백과전서에서 하려던 건 단순한 지식 정리가 아니었어요.
신부님의 설교나 왕의 명령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과 관찰로 세상을 설명하려 했거든요.
예를 들어 「정치적 권위」 항목에는 원문으로 « La liberté est un présent du ciel », 곧 "자유는 하늘이 준 선물이며, 이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문장이 실렸어요.
왕이 다스릴 권리를 하늘이 준 게 아니라니, 당시엔 아주 위험한 말이었죠.
그래서 교회와 정부가 가만있지 않았어요.
자료마다 시점이 조금 달라서, 영어 위키백과는 1758년 가톨릭교회가, 1759년 프랑스 정부가 백과전서를 금지했다고 하고, 프랑스어 위키백과는 이미 1752년에 작업이 한 번 중단됐다고 적고 있어요.
다만 금지령이 아주 엄격히 지켜지진 않아서, 디드로는 몰래몰래 작업을 이어갔답니다.
정말 가슴 아픈 사건은 적이 아니라 같은 편에서 터졌어요.
1764년 말, 디드로는 뒤늦게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돼요.
출판업자 르 브르통이 정부의 눈치를 보다가, 디드로의 손을 떠난 교정쇄에서 위험해 보이는 구절들을 몰래 지워 버린 거예요.
심지어 원본 원고까지 파기했고요.
20년을 바친 글이 자기도 모르게 잘려 나간 걸 알았을 때, 디드로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사실 디드로는 이 거대한 일을 처음부터 반긴 것도 아니었어요.
그는 나중에 이렇게 털어놨죠. « Je proteste que l'entreprise de l'Encyclopédie n'a pas été de mon choix », 곧 "백과전서 사업은 내 선택이 아니었고, 교묘하게 받아낸 명예의 약속이 나를 손발 묶인 채 이 거대한 과업에 넘겨주었다"고요.
하기 싫은 숙제를 떠맡은 심정이었던 거예요.
빚에 쫓기던 디드로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놀랍게도 러시아 여제 예카테리나 2세였어요.
1765년, 그녀는 돈이 궁한 디드로의 책 3,000권을 15,000리브르에 사 주고는, 정작 책은 디드로가 계속 갖고 있게 했어요.
그를 종신 사서로 삼아 연 1,000리브르를 줬는데, 나중엔 50년치 봉급을 한꺼번에 선불로 건넸다고 해요.
덕분에 디드로는 편찬을 끝까지 밀고 갈 수 있었죠.
디드로는 이 힘든 싸움의 의미를 믿었어요.
1762년 연인 소피 볼랑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 Cet ouvrage produira sûrement avec le temps une révolution dans les esprits », 곧 "이 책은 언젠가 반드시 사람들 정신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고, 우리는 인류에 봉사한 것"이라고 적었어요.
백과전서 편찬 전쟁은 디드로가 20년 넘게 교회와 정부의 금지·검열, 믿었던 출판업자의 배신까지 견디며 세상의 지식을 28권에 모아낸 긴 싸움이었어요.
무기를 든 전쟁이 아니라, "지식을 이성으로 정리한다"는 생각 하나로 낡은 권위와 맞선 싸움이었죠.
그 책 한 질이 결국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는 것, 그것만 기억해도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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