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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볼테르의 낙관주의 비판(anti-optimisme)은 "지금 이 세상이 신이 고른 가장 좋은 세상"이라는 라이프니츠식 위안에 반대한 거예요. 눈앞의 고통이 뻔한데 "다 잘된 일"이라고 우기는 태도가 오히려 사람을 눈멀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고 본 겁니다.
친구가 크게 다쳐서 병원에 누워 있는데, 옆에서 누가 "괜찮아, 이게 다 최선이야, 세상은 원래 이렇게 잘 굴러가게 되어 있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위로가 되기는커녕 좀 얄미울 거예요.
볼테르가 겨눈 과녁이 바로 이런 태도예요.
여기서 말하는 '낙관주의(optimisme)'는 우리가 흔히 쓰는 "긍정적으로 살자" 같은 기분 얘기가 아니에요.
철학에서 낙관주의는 훨씬 딱딱한 주장이었어요.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신은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세계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이 세계를 만들었다"고 봤어요.
이걸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선의 세계'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보이는 고통과 재난조차도, 전체로 보면 최선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부품이라는 뜻이에요.
볼테르는 이 주장에 정면으로 딴지를 걸었어요.
볼테르는 프랑스 계몽주의를 이끈 철학자이자 작가로, 본명은 프랑수아마리 아루에(François-Marie Arouet)예요.
이성과 관용을 앞세워 평생 글로 싸운 사람이었죠.
그런 그가 보기에, "모든 게 최선을 위해 일어난다"는 말은 위험한 눈가림이었어요.
지진으로 사람이 깔려 죽고, 무고한 사람이 고문당하고, 전쟁으로 마을이 불타는데, 그걸 "큰 그림에서는 다 좋은 일"이라고 정리해 버리면, 우리는 그 고통을 고칠 생각을 멈추게 되니까요.
최선의 세계라는 말은 결국 "그러니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는 말이 되기 쉬웠던 거예요.
볼테르가 던진 질문은 단순해요.
"정말 이게 최선이라면, 왜 이렇게 아프고 억울한 일이 많을까?"
그는 고통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이 뻔한 사실을, 멋진 형이상학 이론보다 더 믿을 만하다고 봤어요.
볼테르는 이 비판을 논문이 아니라 이야기로 했어요.
1759년에 낸 소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Candide, ou l'Optimisme)》예요.
제목에 아예 '낙관주의(l'Optimisme)'를 박아 넣었죠.
이 작품은 볼테르가 쓴 글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책이 되었어요.
방식은 이래요.
주인공은 "이 세상은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선"이라고 배운 대로 믿으며 길을 떠나요.
그런데 가는 곳마다 재난과 배신, 폭력이 쏟아져요.
배운 낙관주의로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참혹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죠.
독자는 "최선의 세계"라는 구호와 눈앞의 지옥 사이의 간격을 보면서 저절로 웃고, 그다음 씁쓸해져요.
볼테르의 무기는 논리적 반박이 아니라 이 어긋남 자체였어요.
아름다운 이론을 현실 옆에 나란히 세워 두기만 해도, 그 이론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지 드러나거든요.
마치 폭우로 지붕이 무너진 집 앞에서 "이 동네는 완벽하게 설계됐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여 주는 것과 같아요.
헷갈리기 쉬운 대목이에요.
낙관주의를 비웃었으니 "세상은 어차피 글렀다"는 비관주의로 넘어간 걸까요?
그렇지 않아요.
볼테르가 싫어한 건 '세상이 완벽하다'는 쪽도, '세상이 절망적이다'는 쪽도 아니라, 둘 다 팔짱 끼고 앉아 아무것도 안 하게 만든다는 점이었어요.
| 입장 | 세상을 보는 눈 | 태도 |
|---|---|---|
| 라이프니츠식 낙관주의 | 지금 이대로가 최선 | 그러니 그냥 받아들여라 |
| 막연한 비관주의 | 어차피 다 소용없다 | 그러니 포기해라 |
| 볼테르의 태도 | 고통은 진짜고 세상은 불완전 |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걸 고쳐라 |
볼테르는 거창한 우주의 설계도를 논하는 대신, 눈앞의 구체적인 불의를 직접 손보는 쪽을 택했어요.
실제로 그는 억울하게 처형된 사람들의 사건에 뛰어들어 몇 년씩 재심 운동을 벌였죠.
세상이 최선이라 믿었다면 굳이 그렇게 싸울 이유가 없었을 거예요.
볼테르의 낙관주의 비판은 지금도 낯설지 않아요.
"다 잘될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 일이야" 같은 말은 따뜻하게 들리지만, 때로는 아픈 사람에게 "불평하지 말라"는 압력이 되기도 하니까요.
볼테르가 남긴 건 냉소가 아니라 정직함이에요.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고, 억울한 걸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
세상을 다 좋게 포장하지 않아야, 비로소 무엇을 고쳐야 할지 보인다는 태도죠.
볼테르의 낙관주의 비판(anti-optimisme)은 "이 세계가 신이 고른 최선"이라는 라이프니츠식 주장에 반대한 것이었어요.
고통은 실제로 존재하는데 그걸 "다 잘된 일"로 덮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고치지 않게 되니까요.
그는 이 생각을 1759년 소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서, 아름다운 구호와 참혹한 현실을 나란히 놓아 비웃는 방식으로 드러냈어요.
다만 그는 비관으로 도망친 게 아니라, 세상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내 손으로 고쳐야 한다고 봤다는 점, 이 한 가지를 기억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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