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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관용(tolérance)은 남이 나와 다른 종교나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를 벌하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에요. 볼테르는 무고한 사람이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처형당하는 걸 보고, 그 믿음이 틀렸다고 여겨지더라도 국가가 힘으로 사람을 짓밟을 권리는 없다고 외쳤어요.
반에서 짝꿍이 나와 다른 종교를 믿거나 다른 축구팀을 응원한다고 해서 때리거나 교실에서 쫓아내면 안 되죠.
볼테르가 말한 관용이 딱 이거예요.
프랑스어 톨레랑스(tolérance)는 원래 "참고 견디다"라는 말에서 왔어요.
상대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 사람이 그렇게 믿을 자리를 남겨두는 것이죠.
볼테르(본명 프랑수아마리 아루에, 1694년부터 1778년까지 산 프랑스 계몽주의 작가)는 관용을 "네 말이 다 옳다"라는 뜻으로 쓰지 않았어요.
오히려 "네가 틀렸다고 내가 생각하더라도, 그 이유로 너를 감옥에 넣거나 죽이지는 않겠다"에 가까웠죠.
그러니까 관용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는 예의범절이 아니라, 생각이 다르다고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막는 제도의 원칙이에요.
계기는 1762년에 일어난 '칼라스 사건'이었어요.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 살던 장 칼라스(Jean Calas)는 개신교도 상인이었는데, 그의 아들이 죽자 "아버지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려는 아들을 막으려 죽였다"는 소문이 퍼졌어요.
뚜렷한 증거도 없이, 종교가 다르다는 편견만으로 칼라스는 고문당한 끝에 처형당했어요.
볼테르는 이 사건에 뛰어들어 3년 동안 캠페인을 벌였고, 1763년에 《관용론(Traité sur la tolérance)》을 펴냈어요.
그리고 1765년, 마침내 재심에서 칼라스의 무죄를 이끌어냈죠.
관용은 볼테르에게 책상 위 이론이 아니라, 억울하게 죽은 한 사람의 이름을 되찾는 실제 싸움이었던 거예요.
이 무렵부터 볼테르는 편지 끝에 이런 구호를 즐겨 붙였어요.
1766년, 십자가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19세 청년 슈발리에 드 라 바르(chevalier de La Barre)가 참수·화형당한 사건 때도 볼테르는 가만있지 않았어요.
그는 이렇게 썼죠.
Ce sang innocent crie, et moi je crierai aussi. — "이 무고한 피가 울부짖고 있으니, 나 또한 울부짖을 것이다."
관용은 그에게 조용한 미덕이 아니라, 끝까지 소리치는 일이었어요.
관용 하면 흔히 이 문장을 떠올려요.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것을 말할 권리는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
그런데 이건 볼테르가 쓴 문장이 아니에요.
이 말은 1906년 영국 작가 에벌린 비어트리스 홀이 《볼테르의 친구들》에서 볼테르의 태도를 자기 말로 요약한 것인데, 뒷날 볼테르가 직접 한 말처럼 굳어져 버렸어요.
홀 자신도 볼테르가 실제로 그렇게 쓴 적은 없다고 해명했죠.
그러니 이 문장은 볼테르의 정신을 잘 압축하긴 했지만, 진짜 인용으로 갖다 쓰면 곤란해요.
재미있는 건, 문장이 가짜여도 그 안의 태도만큼은 볼테르답다는 점이에요.
상대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것과 상대를 해치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예요.
이게 관용의 핵심이니까요.
볼테르의 관용은 "다 좋게좋게 넘어가자"가 아니에요.
그는 자기와 다른 생각을 매섭게 비판했어요.
다만 비판과 처벌을 딱 갈랐죠.
말로 반박하는 건 얼마든지 하되, 믿음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잡아 가두거나 죽이는 건 안 된다는 선을 그은 거예요.
생각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 쉬운 시대에, 이 구분은 여전히 쓸모가 있어요.
싫어할 자유와 해칠 권리는 전혀 다른 것이니까요.
볼테르의 관용(tolérance)은 남의 종교나 생각이 틀렸다고 여겨지더라도, 그 이유로 사람을 벌하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에요.
그는 억울하게 처형된 칼라스를 위해 3년을 싸워 1763년 《관용론》을 쓰고 1765년 무죄를 받아냈어요.
"동의하지 않아도 말할 권리를 지키겠다"는 유명한 문장은 실제 그의 말이 아니지만, 비판과 처벌을 갈라놓은 그 태도만은 정확히 볼테르의 것이에요.
싫어하는 것과 해치는 것은 다르다는 것, 이 한 줄이 관용의 알맹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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