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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볼테르는 역사를 신이 미리 짜둔 계획이 이뤄지는 무대가 아니라, 사람들의 풍습과 생각이 이성과 미신 사이에서 다투며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으로 봤어요. 그래서 왕의 전쟁 기록 대신, 각 나라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무엇을 믿었는지를 썼지요.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몇 년에 누가 왕이 되고, 어디서 전쟁이 났다" 같은 연표라면, 볼테르는 그걸 재미없고 반쪽짜리라고 봤어요.
그가 말한 역사철학(philosophie de l'histoire)은 사건을 줄줄이 나열하는 게 아니라, "왜 이렇게 됐고, 사람들은 그때 어떻게 살았나"를 이성으로 따져 묻는 태도예요.
볼테르(본명 프랑수아마리 아루에, 1694년부터 1778년까지 산 프랑스 계몽주의 작가)는 1745년 프랑스 왕실 사료편찬관 자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역사를 썼어요.
그런데 그가 쓴 역사책은 기존 것과 아주 달랐답니다.
핵심은 세 가지예요.
왕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보고, 기적과 전설을 걷어내고, 유럽 바깥 세상까지 함께 다룬다는 것이지요.
볼테르는 역사의 주인공을 바꿨어요.
마치 축구 경기를 감독 이름만 적어 기록하는 대신, 관중석 분위기와 응원가, 표 값까지 적는 것과 비슷해요.
그는 사람들이 뭘 먹고, 어떤 법을 따르고, 무슨 예술을 즐겼는지가 진짜 역사라고 봤지요.
그 결과가 두 권의 큰 책이에요.
《루이 14세의 시대(1751)》에서는 전쟁 이야기보다 그 시대의 예술과 과학, 생활이 어떻게 꽃폈는지에 무게를 뒀고, 《각국의 풍습·정신론(Essai sur les mœurs, 1756)》에서는 제목 그대로 여러 나라의 '풍습(mœurs)'과 '정신(esprit)'을 나란히 살폈어요.
왕조의 족보가 아니라 문명의 살림살이를 쓴 셈이죠.
옛 역사책에는 신이 일으킨 기적, 하늘의 계시, 믿기 힘든 전설이 사실처럼 섞여 있었어요.
볼테르는 여기에 이성이라는 체를 갖다 댔어요.
증거로 확인되지 않는 기적과 미신은 걸러내고, 사람의 힘으로 설명되는 것만 남기려 한 거예요.
그는 이렇게 적었어요.
"La superstition met le monde entier en flammes; la philosophie les éteint."
미신은 온 세상을 불길에 휩싸이게 하고, 철학은 그 불을 끈다는 뜻이에요.
역사도 마찬가지여서, 미신을 걷어내야 사람들이 정말로 겪은 일이 보인다고 본 거죠.
이 태도는 성서가 그린 세계 지도까지 흔들었어요.
볼테르는 모든 인류가 아담과 이브 한 쌍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여러 갈래에서 따로 생겨났다는 다원발생설을 폈어요.
다만 오늘날 학자들은 이 주장이 흑인을 낮잡아 보는 인종차별적 서술로도 이어졌다고 비판해요.
이성을 앞세운 그도 자기 시대의 편견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던 셈이에요.
볼테르 이전의 '세계사'는 사실상 유럽과 기독교의 역사였어요.
그는 이 좁은 틀이 못마땅했어요.
그래서 중국, 인도, 이슬람 세계까지 한 무대에 올려, 인류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으려 했지요.
볼테르가 인도에 가졌던 관심은 재미난 일화도 남겼어요.
1760년 그는 《에주르베담(Ezourvedam)》이라는 글을 인도 베다의 '참뜻'을 알려주는 귀한 자료로 반겼다가, 이듬해인 1761년에는 그저 베다에 붙은 주석 정도라고 평가를 낮췄어요.
새 자료를 만나면 판단을 고쳐가는 모습인데, 이것도 그의 역사철학다운 면이에요.
유럽만이 문명이 아니라는 생각, 이게 그의 넓은 시야였답니다.
볼테르의 역사철학은 세 문장으로 기억하면 돼요.
첫째, 역사는 왕과 전쟁의 연표가 아니라 사람들의 풍습과 정신을 다뤄요.
둘째, 기적과 미신은 이성의 체로 걸러내고 사람의 힘으로 설명해요.
셋째, 유럽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봐요.
그래서 제목의 말처럼, 그에게 역사는 신의 섭리가 펼쳐지는 무대가 아니라 인간이 이성과 미신 사이에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어요.
오늘 우리가 역사책에서 옛사람들의 일상과 생각을 궁금해하는 습관은, 상당 부분 볼테르가 물려준 눈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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