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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얀센주의 논쟁은 "사람이 아무리 착하게 살려고 애써도 스스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신이 거저 주는 은총만이 사람을 구한다"는 주장을 둘러싼 다툼이에요. 파스칼은 이 편에 서서, 사람의 노력을 더 크게 보던 예수회와 정면으로 맞섰어요.
1646년 겨울, 파스칼의 아버지 에티엔이 루앙의 빙판길에서 넘어져 고관절을 크게 다쳤어요.
이때 아버지를 치료해 준 의사 형제가 마침 '얀센주의자'였고, 그 인연으로 파스칼 가족 전체가 얀센주의(장세니즘)라는 신앙에 이끌렸어요.
이걸 파스칼의 '첫 번째 회심'이라고 불러요.
참고로 파스칼은 기압계 실험과 확률론으로 이름난 수학·물리학의 천재인데, 이 사고를 계기로 신앙 문제에 깊이 빠져든 거예요.
여기서 열쇠가 되는 말이 '은총(grace)'이에요.
은총은 쉽게 말하면 신이 사람에게 아무 대가 없이 거저 주는 선물 같은 도움이에요.
그런데 이 선물을 두고 큰 질문이 생겼어요.
사람이 착하게 살고 열심히 애를 쓰면 스스로 구원에 다가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구원은 순전히 신이 주는 은총에만 달려 있을까요?
얀센주의는 뒤쪽, 즉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되고 신의 은총이 모든 걸 결정한다"에 강하게 손을 들었어요.
이 물음을 둘러싼 다툼이 바로 은총과 얀센주의 논쟁이에요.
비유로 그려 볼게요.
아주 높은 담을 넘어야 '구원'이라는 마당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해 봐요.
한쪽은 "사다리(신의 은총)만 있으면 넘어가고, 그 사다리는 신이 직접 골라서 놓아 준다"고 말해요.
사람이 발버둥 친다고 담이 낮아지지는 않는다는 거죠.
다른 한쪽은 "사다리도 필요하지만, 네가 열심히 발을 굴러 올라가는 몫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해요.
앞쪽이 얀센주의에 가깝고, 뒤쪽이 당시 교회 안에서 힘이 세던 예수회의 분위기에 가까워요.
두 입장을 표로 견주면 이렇게 정리돼요.
| 물음 | 얀센주의(파스칼 편) | 예수회 쪽 분위기 |
|---|---|---|
| 구원의 열쇠 | 신이 주는 은총이 결정한다 | 사람의 자유로운 노력도 함께 작용한다 |
| 사람을 보는 눈 | 스스로는 약하고 죄로 기울어져 있다 | 애쓰면 꽤 해낼 수 있는 존재다 |
| 도덕을 대하는 태도 | 엄격하게 지킨다 | 상황에 맞춰 너그럽게 푼다 |
파스칼이 특히 못 견딘 건 마지막 칸이었어요.
예수회 일부가 쓰던 '궤변론(카수이스트리)'은 원래 어려운 도덕 문제를 경우에 따라 하나하나 따져 보는 방법이었는데, 파스칼이 보기엔 이게 죄가 될 만한 일도 상황을 요리조리 재서 "이 경우엔 괜찮다"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준다고 여겼어요.
그의 눈에는 이게 신앙을 헐겁게 만드는 얄팍한 잔재주로 보인 거예요.
파스칼에게 이 다툼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어요.
1654년 11월 23일 밤, 그는 밤 열 시 반쯤부터 자정 무렵까지 강렬한 종교 체험을 하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짧은 메모를 남겼어요.
훗날 '메모리알'이라 불리는 이 쪽지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Dieu d'Abraham, Dieu d'Isaac, Dieu de Jacob, non des philosophes et des savants." —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철학자와 학자들의 신이 아니라.
머리로 따져서 증명하는 신이 아니라 은총으로 직접 만나는 신, 이것이 파스칼이 붙든 믿음이었어요.
그는 이 쪽지를 외투 안쪽에 꿰매어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옮겨 지녔고, 죽은 뒤에야 하인이 우연히 발견했다고 해요.
은총이 그에게 얼마나 개인적인 문제였는지 보여 주는 장면이죠.
그러고 나서 파스칼은 펜을 들어요.
1656년부터 1657년까지, 예수회의 궤변론을 조목조목 파고드는 편지 18통을 써서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게 바로 『시골 벗에게 부치는 편지(Lettres provinciales)』예요.
재미있게도 자기 이름 대신 '루이 드 몽탈트'라는 가명을 썼어요.
편지는 날카롭고 재치가 넘쳐 큰 화제가 됐지만, 그만큼 권력의 심기를 건드렸죠.
결국 1660년, 루이 14세는 이 책을 찢어 불태우라고 명령했어요.
은총과 얀센주의 논쟁은 결국 이 한 물음으로 좁혀져요.
구원은 사람이 노력으로 얻어내는 걸까, 아니면 신의 은총이 정하는 걸까.
파스칼은 아버지의 낙상 사고를 계기로 얀센주의에 들어섰고, 1654년 밤의 체험으로 그 믿음을 단단히 굳혔으며, 예수회의 느슨한 도덕론에 맞서 가명으로 편지를 써 싸웠어요.
그 편지가 끝내 왕의 명령으로 불태워졌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이게 조용한 신학 토론이 아니라 시대를 흔든 진짜 싸움이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파스칼에게 신앙은 똑똑함으로 담을 넘는 일이 아니라, 거저 받는 은총 앞에 자기를 가만히 내려놓는 일이었던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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