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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파스칼은 미완성 노트 모음 『팡세』에서 인간을 이렇게 봤어요. 죽음과 지루함 앞에 한없이 약한 비참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자기가 비참하다는 걸 아는 유일한 존재라고요. 그 '앎' 때문에 인간이 결국 신을 찾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이 향하는 결론이에요.
블레즈 파스칼은 1623년에 태어나 1662년에 서른아홉 살로 세상을 떠난 프랑스 사람이에요.
기압계 실험으로 대기압을 다루고, 도박 문제를 풀다가 확률의 수학적 토대를 놓은 물리학·수학 천재였죠.
그런데 1654년 11월 어느 밤 강렬한 종교 체험을 한 뒤로는 수학 연구를 거의 접고, 기독교 신앙이 왜 믿을 만한지를 설득하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어요.
원래 계획한 제목은 『Apologie de la religion Chrétienne(기독교의 옹호)』였어요.
하지만 그 책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어요.
파스칼이 병으로 일찍 죽으면서, 그가 틈틈이 적어 둔 800개가 넘는 짧은 메모 조각만 남았거든요.
이 조각들을 사람들이 모아 1662년 사후에, 1670년 『Pensées de M. Pascal sur la religion, et sur quelques autres sujets(종교와 몇 가지 다른 주제에 관한 파스칼 씨의 생각들)』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펴냈어요.
'팡세(Pensées)'는 '생각들'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팡세』는 잘 짜인 논문이 아니라,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 메모 뭉치인 셈이죠.
『팡세』를 관통하는 큰 주제 하나가 바로 '인간의 비참(misère)'이에요.
비참이라고 하면 굶주림이나 가난 같은 걸 떠올리기 쉬운데, 파스칼이 말한 비참은 좀 더 깊은 이야기예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얼마나 약하고 불안한지를 가리켜요.
파스칼은 사람이 방 안에 혼자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한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조금만 심심해지면 우리는 뭔가 할 거리를 찾아 나서죠.
요즘으로 치면 심심한 순간마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켜는 것과 비슷해요.
파스칼은 이렇게 끊임없이 오락과 기분 전환에 매달리는 이유가, 사실은 조용해지는 순간 마주하게 될 진짜 문제, 즉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봤어요.
아무리 힘센 왕이라도 혼자 남겨져 자기 죽음을 곰곰이 생각하게 되면 불안해진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 불안을 잊으려고 계속 바깥으로 도망친다는 것, 그 어쩔 수 없는 처지가 바로 인간의 비참이에요.
여기서 파스칼 이야기의 반전이 나와요.
길가의 돌멩이는 부서져도 자기가 부서진다는 걸 몰라요.
그래서 돌멩이는 비참하지 않아요.
그런데 사람은 자기가 약하고, 언젠가 죽는다는 걸 '알아요'.
이 앎이 우리를 괴롭게 하죠.
하지만 파스칼이 보기엔 바로 그 앎이야말로 인간이 다른 사물과 다른 특별한 점이었어요.
즉 인간은 비참하지만, 그 비참을 아는 존재라서 오히려 존엄해요.
자기가 무너진다는 걸 아는 것 자체가 아무 생각 없는 우주보다 위대하다는 거예요.
이 '위대함' 쪽을 파스칼은 다른 데서 유명한 비유로 더 풀어내는데, 그 이야기는 이 글의 범위 밖이라 여기서는 접어 둘게요.
중요한 건, 파스칼이 비참과 위대함을 한 짝으로 묶어서 봤다는 점이에요.
인간은 이 둘 사이에 어정쩡하게 걸쳐 있는, 스스로는 답을 못 내는 존재라는 거죠.
파스칼이 인간의 비참을 강조한 데는 목적이 있었어요.
사람에게 '너는 사실 약하고 불안한 존재야'라고 정직하게 보여 주면, 그 사람은 자기 힘만으로는 이 문제를 못 푼다는 걸 깨닫게 되고, 결국 자기 밖의 무언가, 곧 신을 찾게 된다고 봤거든요.
그러니까 '인간의 비참'은 절망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신앙으로 향하는 첫 계단으로 놓인 셈이에요.
원래 제목이 '기독교의 옹호'였던 이유도 여기 있어요.
파스칼 자신이 평생 병약했다는 점도 이 주제와 겹쳐요.
말년에 그는 의사의 치료를 마다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져요.
"La maladie est l'état naturel du chrétien(병은 그리스도인의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고통과 병 속에서, 온갖 욕심을 내려놓고 끊임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마땅한 모습이라는 뜻이었죠.
그는 자기가 책에 쓴 비참을 몸으로 겪으며 살았던 거예요.
앞서 말했듯 『팡세』는 정돈된 책이 아니라 조각난 메모예요.
그래서 초기 편집자들이 손을 많이 댔어요.
1670년에 처음 나온 판본은 포트루아얄이라는 수도원 쪽 사람들이 정리한 것인데, 신앙에 회의적으로 보일 수 있는 조각들을 숨기거나 고쳐서 펴냈어요.
파스칼이 실제로 적어 둔 모습 그대로의 완전한 판본은 한참 뒤인 19세기에야 철학자 빅토르 쿠쟁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죠.
그래서 『팡세』를 읽을 때는 이게 한 번에 매끈하게 쓴 완성작이 아니라, 흩어진 생각의 뼈대라는 점을 기억하는 게 좋아요.
어떤 조각은 한 문장으로 툭 끊기고, 어떤 조각은 앞뒤 맥락이 비어 있어요.
그 미완성 자체가, 답을 다 내지 못한 채 비참과 위대함 사이에서 서성이던 인간의 모습과 어쩐지 닮아 있기도 해요.
『팡세』는 파스칼이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려다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남긴 생각 메모 800여 조각을 사후에 모은 책이에요.
그 핵심 주제인 '인간의 비참'은, 사람이 죽음과 지루함 앞에서 한없이 약하고 그 불안을 오락으로 자꾸 덮으려 한다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파스칼은 인간이 자기 비참을 '안다'는 바로 그 점에서 존엄하다고 봤고, 그 정직한 자각을 신앙으로 가는 첫걸음으로 삼았어요.
비참하지만 비참을 아는 존재라는 이 한 짝의 그림이, 미완성으로 남은 『팡세』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또렷한 물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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