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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믿어서 얻을 것과 잃을 것을 저울질해 보자는 거예요. 믿는 쪽에 걸면 맞았을 때 얻는 게 무한히 크고 틀렸을 때 잃는 건 작으니, 계산상 믿는 쪽에 거는 게 합리적이라는 논증이 파스칼의 내기예요.
동전 던지기 내기를 한다고 해볼게요.
맞히면 평생 쓸 돈이 생기고, 틀려도 만 원만 잃는다면 어느 쪽에 걸겠어요?
당연히 거는 쪽이 이득이죠.
파스칼은 바로 이 계산을 신을 믿는 문제에 그대로 가져왔어요.
블레즈 파스칼(1623~1662)은 기압계 실험과 확률론으로 이름을 남긴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예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인 1670년에 나온 책 『팡세』에 남긴 논증이 흔히 '파스칼의 내기(Pascal's wager)'라 불려요.
원래 파스칼 자신은 이 대목을 '기계에 관한 담론'이라고 불렀죠.
핵심은 이래요.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사람의 머리로 끝내 증명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증명'이 아니라 '내기'로 접근하자는 거죠.
그리고 손익을 따져 보면 믿는 쪽에 거는 편이 훨씬 남는 장사라는 거예요.
파스칼이 이런 발상을 한 데는 이유가 있어요.
1654년, 도박꾼이던 슈발리에 드 메레가 던진 '점수 분배 문제'를 계기로 파스칼은 수학자 페르마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확률론의 토대를 놓았거든요.
게임이 중간에 멈추면 판돈을 어떻게 나눠야 공정한가 하는 문제였는데, 여기서 '기댓값'이라는 개념이 자라났어요.
기댓값은 쉽게 말해 '얻을 값 ×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을 따져 평균적으로 얼마나 이득인지 재는 자예요.
도박판에서 어디에 거는 게 유리한지 계산하던 이 도구를, 파스칼은 인생에서 가장 큰 판돈인 신앙 문제에 갖다 댄 거죠.
신을 믿을지 말지도 결국 '어느 쪽에 걸어야 이득인가'라는 내기로 볼 수 있다고 본 거예요.
경우의 수는 네 가지예요.
내가 믿느냐 안 믿느냐, 그리고 실제로 신이 있느냐 없느냐.
표로 보면 이래요.
| 신이 정말 있다면 | 신이 없다면 | |
|---|---|---|
| 믿는 쪽에 걸면 | 영원한 행복 (무한한 이득) | 잠깐의 즐거움을 조금 포기 |
| 안 믿는 쪽에 걸면 | 모든 것을 잃음 | 약간의 이득 |
여기서 파스칼이 주목한 건 왼쪽 위 칸이에요.
믿었는데 신이 정말 있다면, 그 상은 잠깐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라 사실상 무한대예요.
반대로 안 믿는 쪽에 건 사람이 잃는 것도 무한대고요.
그에 비하면 오른쪽 두 칸, 즉 신이 없을 때의 이득과 손해는 기껏해야 세속의 즐거움 정도라 크기가 작아요.
작은 손해를 무릅쓰고 무한한 상을 노리는 것과, 작은 이득을 챙기려다 무한한 것을 놓치는 것.
기댓값으로 저울질하면 답은 한쪽으로 확 기울죠.
그래서 '믿는 쪽에 거는 게 합리적'이라는 결론이 나와요.
이 논증은 '신이 있다는 증명'이 아니에요.
파스칼도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던 게 아니라, 이성으로 결판이 안 나는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게 현명한지를 말한 거예요.
자료에서도 이 내기를 '피데이즘적' 논증이라고 소개하는데, 이는 참된 믿음이 결국 이성 너머의 자리에 있다고 보는 태도예요.
계산은 사람을 문 앞까지 데려다줄 뿐이라는 거죠.
반론도 많아요.
신이 여럿이라면 어느 신에게 걸어야 하느냐, 계산이 이득이라고 해서 마음이 진짜로 믿어지느냐 하는 물음이죠.
이런 지점 때문에 파스칼의 내기는 지금도 철학 수업의 단골 토론거리예요.
완벽한 정답이라기보다, 증명이 안 되는 문제를 손익 계산으로 바꿔 놓은 발상의 참신함에 무게가 있어요.
파스칼의 내기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논리가 아니라, 증명할 수 없을 때 어떻게 걸어야 유리한지를 따지는 내기예요.
믿는 쪽에 걸면 맞았을 때 얻는 게 무한하고 틀렸을 때 잃는 건 작으니, 기댓값으로는 믿는 쪽이 이득이라는 이야기죠.
도박판의 판돈 나누기에서 자라난 확률론을 인생의 가장 큰 물음에 갖다 댄 발상이라는 점만 기억해도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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