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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앙가주망은 '나를 세상 안으로 던져 넣는 참여'예요. 사르트르는 인간에게 정해진 본질이 없어 매 순간 선택으로 스스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봤고, 그 선택 하나하나가 "사람은 이렇게 사는 게 옳다"는 본보기가 되어 인류 전체를 책임진다고 했어요.
1964년 사르트르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답했어요.
"Je le refuse, et vous pouvez l'écrire!"(나는 그것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쓰셔도 좋습니다!)
작가가 상이라는 제도에 갇히면 자기 목소리가 무뎌진다고 봤거든요.
상을 거절하는 것조차 그에게는 하나의 '참여'였어요.
앙가주망(engagement)은 프랑스어로 '약속·관여·참여'를 뜻해요.
쉽게 말하면 팔짱 끼고 구경만 하지 않고, 내 몸을 경기장 안으로 밀어 넣는 거예요.
사르트르는 인간이 세상 밖 안전한 관람석에 앉아 있을 수 없다고 봤어요.
우리는 이미 특정한 시대, 특정한 상황 안에 던져져 있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조차 하나의 선택이니까요.
그래서 그는 글을 쓰든 표를 던지든, 우리의 모든 행동이 "나는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겠다"는 참여라고 말했어요.
사르트르 철학의 출발점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였어요.
컵은 물을 담으려는 목적(본질)이 먼저 정해진 뒤 만들어지지만, 인간은 먼저 태어나 세상에 나온(실존) 다음에야 스스로가 누구인지 정한다는 거예요.
그는 이렇게 적었어요. "il n'y a pas de nature humaine"(인간 본성이란 없다).
정해진 설계도가 없으니, 나는 내 선택으로 나를 만들어 갈 수밖에 없어요.
문제는 여기서 책임이 따라온다는 점이에요.
사르트르는 "Nous sommes seuls, sans excuses"(우리는 혼자다, 변명의 여지 없이)라고 했어요.
신도, 타고난 본성도 핑계가 못 되니 모든 선택은 온전히 내 몫이죠.
게다가 그는 내 선택이 나 혼자로 끝나지 않는다고 봤어요.
"notre responsabilité… engage l'humanité entière"(우리의 책임은… 인류 전체를 관여시킨다).
내가 어떤 삶을 고르는 순간, 나는 "사람은 이렇게 사는 게 좋다"는 본보기를 온 인류 앞에 내미는 셈이라는 거예요.
반장 한 명이 손을 드는 순간 반 전체 분위기가 정해지듯, 내 작은 선택 하나도 인류 전체의 무게를 걸고 이뤄진다는 뜻이에요.
앙가주망은 책상 위 이론이 아니라 사르트르가 몸으로 산 태도였어요.
그는 자유를 이렇게 표현했죠. "L'homme est condamné à être libre"(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자유는 선물이 아니라 벗을 수 없는 짐이라, 우리는 계속 선택하고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펜과 발로 세상에 참여했어요.
1945년에는 계간지 『현대』(Les Temps modernes)를 창간해 글로 세상에 개입했고, 1960년에는 알제리 독립을 지지하는 '121인 선언'에 서명했다가 아파트가 두 차례 폭탄 공격을 받기도 했어요.
1967년에는 버트런드 러셀과 함께 베트남 전쟁 중 미군의 전쟁범죄를 따지는 '러셀 법정' 의장을 맡았고요.
독일 점령기를 돌아보며 그는 이렇게 썼어요. 쫓기던 그 시절 "chacun de nos gestes avait le poids d'un engagement"(우리의 모든 몸짓은 하나의 앙가주망의 무게를 지녔다).
위험할수록 말 한마디, 몸짓 하나가 분명한 선택이 됐다는 뜻이에요.
앙가주망을 단순히 '정치 활동 열심히 하기'로만 읽으면 절반만 이해한 거예요.
핵심은 특정 활동이 아니라 태도예요.
헷갈리기 쉬운 것들을 나란히 놓아 볼게요.
| 헷갈리는 생각 | 사르트르의 앙가주망 |
|---|---|
| 나는 중립이라 참여 안 해 | 침묵·방관도 이미 하나의 선택이자 참여 |
| 시키는 의무라서 한다 |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자유로 떠맡는 것 |
| 나 하나쯤은 상관없어 | 내 선택은 인류 전체를 향한 본보기 |
즉 앙가주망은 "억지로 떠맡는 봉사 활동"이 아니라, 어차피 자유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이 그 자유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끌어안는 방식이에요.
참여를 피하려는 태도조차 실은 하나의 참여라는 게 사르트르의 매서운 지적이죠.
앙가주망은 나를 세상 안으로 던져 넣는 참여예요.
인간에게는 정해진 본질이 없어서(실존이 본질에 앞서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으로 자기를 만들고, 그 선택은 변명 없이 온전히 내 책임이며, 나아가 "사람은 이렇게 사는 게 옳다"는 본보기로 인류 전체를 걸어요.
그래서 사르트르에게 구경꾼이란 없어요.
잡지를 만들고 선언에 서명하고 상까지 거절한 그의 삶이, 앙가주망이 말뿐이 아니었음을 보여 줘요.
오늘 우리가 무심코 넘긴 침묵 하나도, 사르트르라면 이미 하나의 선택이라고 말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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