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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즉자존재(être-en-soi)는 의식이 없는 사물의 존재 방식으로, 자기 자신과 조금의 틈도 없이 '있는 그대로' 꽉 차 있는 상태를 말해요. 그래서 사물은 '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왜 나는 나일까' 같은 물음 없이, 그냥 그것으로 있습니다.
돌멩이 하나를 손에 올려 볼게요.
그 돌은 그냥 돌이에요.
"내가 왜 돌이지?" 하고 고민하지 않고, "더 멋진 돌이 되고 싶어" 하고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그것인 그대로 딱 있을 뿐이죠.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1905~1980)는 1943년에 낸 『존재와 무』에서, 이렇게 자기 자신과 아무 틈 없이 꽉 차 있는 존재를 즉자존재(être-en-soi)라고 불렀어요.
사르트르는 이렇게 적었어요.
"Les objets sont ce qu'ils sont"(레 조브제 송 스 킬 송) — "사물은 그것이 그러한 바로 존재한다"는 뜻이에요.
여기서 핵심은 '그러한 바로 존재한다'예요.
돌은 돌이고, 책상은 책상이고, 딱 그만큼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거죠.
이게 즉자존재를 한 줄로 줄인 답이에요.
'틈'이라는 말을 조금 풀어 볼게요.
우리는 자기 자신을 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요.
"나는 게으른가? 아니, 사실은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렇게 나와 나 사이에 '지금의 나'와 '되고 싶은 나'가 벌어져 있어요.
이 벌어진 자리가 바로 틈이에요.
그런데 사물에는 이 틈이 없어요.
컵은 '더 좋은 컵'을 꿈꾸지 않고, 자기가 컵이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해요.
자기를 돌아보는 의식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즉자존재는 물이 컵에 가득 찬 것처럼 자기 안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어요.
사르트르는 이런 상태를 '충만하다'고 표현했어요.
남는 공간도, 부족한 공간도 없이 그냥 꽉 차 있다는 뜻이에요.
말로만 하면 헷갈리니 세 가지로 묶어 볼게요.
| 특징 | 쉬운 설명 | 예시 |
|---|---|---|
| 충만하다 | 자기 안에 빈틈이 없다 | 물이 가득 찬 컵 |
| 불투명하다 | 자기를 들여다보는 의식이 없다 | 자기가 돌인 줄 모르는 돌 |
| 그냥 있다 | 이유나 목적 없이 그저 존재한다 | "왜?"를 묻지 않는 바위 |
세 가지를 하나로 이으면 이래요.
즉자존재는 '있는 그대로 꽉 차서, 자기를 되돌아보지 않고, 그냥 있는 것'이에요.
여기엔 후회도 계획도 자유도 끼어들 자리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모두 나와 나 사이의 '틈'에서 생기는데, 사물에는 그 틈이 아예 없으니까요.
그럼 사람은요?
사르트르는 사람은 즉자존재가 아니라고 봤어요.
같은 문장을 이어서 이렇게 적었거든요.
"l'homme n'est pas ce qu'il est, il est ce qu'il n'est pas"(롬 네 파 스 킬 레) — "인간은 그가 그러한 바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가 그러하지 않은 바로 존재한다"는 뜻이에요.
말이 어렵지만 뜻은 단순해요.
사람은 '지금의 나'에 딱 붙어 있지 못하고, 늘 '아직 아닌 나'를 향해 벌어져 있다는 거예요.
학생은 지금 학생이면서도 마음은 이미 졸업 뒤를 향해 있잖아요.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고 다른 무언가가 되려는 존재를 사르트르는 대자존재(être-pour-soi)라고 따로 불렀는데, 그건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룰게요.
여기서는 즉자존재의 반대편에 사람이 있다는 것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 구분 | 즉자존재(사물) | 대자존재(사람) |
|---|---|---|
| 틈 | 없다 | 있다 |
| 의식 | 없다 | 있다 |
| 상태 | 그것으로 꽉 차 있다 | 늘 무언가가 되어 간다 |
즉자존재는 사르트르가 사물의 존재 방식을 가리키려고 쓴 말이에요.
돌이 그냥 돌이듯, 사물은 자기 자신과 틈 없이 꽉 차서 '있는 그대로' 존재해요.
되고 싶은 것도, 후회도, 자유도 없이 그저 그것으로 있죠.
이 개념이 중요한 건, 사르트르가 이걸 거울처럼 세워 두고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이에요.
사물은 꽉 차 있고, 사람은 늘 벌어져 있어요.
사르트르는 이 차이에서 출발해 인간의 자유를 이야기해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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