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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크리스테바는 이방인이 국경 너머 낯선 사람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이미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의 낯선 부분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남을 미워하는 마음은 사실 내 안의 낯섦을 견디지 못해 밖으로 떠넘기는 데서 온다고 했지요.

여러분, '이방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누가 떠오르나요?
아마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말이 잘 안 통하는 낯선 손님을 먼저 생각할 거예요.
줄리아 크리스테바라는 철학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깜짝 놀랄 질문을 던져요. "그 낯선 사람이 혹시 너 자신은 아닐까?" 이 글에서는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어려운 용어 없이 천천히 풀어 볼게요.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1941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스물네 살이던 1965년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학자예요.
그러니까 그 자신이 진짜로 낯선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살아 본 사람이지요.
새 나라에서 새 언어로 공부하고 글을 쓰며 평생을 보냈어요.
그는 한 가지 분야에만 머물지 않았어요.
말과 기호가 어떻게 뜻을 만드는지 살피는 기호학,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정신분석, 그리고 소설과 시를 파고드는 문학이론을 자유롭게 넘나들었지요.
분야를 옮겨 다닌 이유는 하나예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정말 다 알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여러 방향에서 두드려 보고 싶었거든요.
1988년에는 이 고민을 모은 책 『우리 자신에게 낯선 사람들』을 펴냈어요.

크리스테바의 가장 유명한 생각은 한 문장으로 줄여져요.
이방인은 내 안에 있다.
이런 경험, 해 본 적 있나요?
분명히 내 방, 내 침대인데 한밤중에 깨어나면 모든 게 낯설게 느껴질 때요.
또는 거울 속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이게 정말 나인가?' 싶어 섬뜩해질 때요.
친숙하던 것이 별안간 낯설어지는 이 느낌을 정신분석에서는 '운하임리히', 우리말로 옮기면 '낯선 두려움'이라고 불러요.
크리스테바는 말해요.
우리 마음에는 우리도 잘 모르는 방이 하나 있다고요.
잔뜩 화를 내고 나서 '내가 왜 그랬지?' 싶을 때, 꿈속에서 엉뚱한 내가 튀어나올 때, 우리는 그 방에 사는 낯선 손님을 만나는 거예요.
이 손님을 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이라고 부르지요.
평소에는 문이 닫혀 있어서 안 보일 뿐, 그 손님은 처음부터 내 안에 살고 있었어요.
크리스테바가 말한 이방인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방인과 이렇게 달라요.
| 흔히 떠올리는 이방인 | 크리스테바가 말한 이방인 |
|---|---|
| 국경 밖에서 온 외국인 | 내 마음속에 사는 낯선 나 |
| 말이 안 통하는 손님 | 화내는 나, 꿈속의 나 |
| 나와 상관없는 남 | 알고 보면 나 자신 |

여기서 크리스테바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나와요.
사람들은 왜 낯선 외국인이나 나와 다른 사람을 그토록 무서워하고 미워할까요?
크리스테바의 답은 이래요.
사실 무서운 건 내 안의 낯선 부분이에요.
내가 인정하기 싫은 내 모습, 내 안의 어두운 구석을 스스로 견디지 못하니까, 그걸 밖에 있는 '저 사람' 탓으로 돌려 버리는 거지요.
마치 내 방이 어질러진 게 부끄러워서 괜히 옆집을 흉보는 것과 비슷해요.
그래서 크리스테바는 이렇게 말해요.
내 안에 낯선 내가 있다는 걸 솔직히 인정하는 사람만이, 밖에 있는 낯선 사람도 편안하게 대할 수 있다고요.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이방인이라는 걸 알면, 다른 이방인에게 손을 내밀기가 한결 쉬워지거든요.
이렇게 나와 다른 존재를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 그것이 바로 그가 말한 '타자성'의 출발점이에요.

크리스테바의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래요.
가장 낯선 사람은 바다 건너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살고 있어요.
화가 났던 나, 꿈속의 나, 나도 미처 몰랐던 내 모습이 바로 그 손님이지요.
이 낯선 나를 미워해 밖으로 떠넘기면 남을 차별하게 되고, 가만히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의 낯섦까지 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이방인을 이해하는 일은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에서 시작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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