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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기호계는 말의 뜻이 생기기 전부터 있는 리듬과 소리, 몸의 충동이고, 상징계는 문법과 규칙으로 또렷한 뜻을 만드는 질서예요.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언어가 된다고 봤어요.

아직 말을 못 하는 아기를 어른이 어르는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아기는 "마마마", "바바바" 하고 옹알이를 해요.
거기에 또렷한 뜻은 없죠.
그런데 그 소리에는 분명히 리듬과 높낮이가 있고, 좋고 싫은 느낌이 담겨 있어요.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1941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1960년대에 프랑스로 건너가 활동한 철학자인데, 바로 이 "뜻이 되기 전의 소리"에 평생 주목했어요.
기호학과 정신분석, 문학을 넘나들며 말이라는 게 어떻게 사람을 만드는지를 파고든 사람이죠.
크리스테바는 이 옹알이의 세계를 기호계라고 불렀어요.
갓난아기와 엄마 사이에 흐르는 리듬, 숨결, 몸짓처럼 아직 문법이 없는 충동의 흐름이에요.
노래로 치면 가사가 아니라 멜로디에 가깝죠.
이 글에서는 기호계와 상징계가 무엇인지, 그게 왜 시 한 편을 읽는 일까지 이어지는지 천천히 따라가 볼게요.

아기는 자라면서 말을 배워요. "사과"라는 소리가 저 빨간 과일을 가리킨다는 약속, "나는 사과를 먹어요"라는 문장의 순서, 이런 규칙의 세계를 크리스테바는 상징계라고 했어요.
보드게임을 하려면 누구나 같은 규칙표를 따라야 하듯, 남과 뜻을 주고받으려면 모두가 아는 문법과 약속을 따라야 하거든요.
상징계는 아주 편리해요.
덕분에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과도 말이 통하고, 책을 읽고, 약속을 정하고, 학교에서 같은 답을 배워요.
하지만 규칙은 우리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대신, 옹알이가 가졌던 그 들쭉날쭉하고 뜨거운 느낌을 꽤 많이 깎아내요. "사랑해"라는 세 글자가 가슴속 그 큰 마음을 다 담지 못하는 것처럼요.
정해진 칸에 마음을 욱여넣다 보면 늘 뭔가가 흘러넘쳐요.

| 구분 | 기호계 | 상징계 |
|---|---|---|
| 비유 | 노래의 멜로디 | 노래의 가사 |
| 정체 | 리듬과 소리, 몸의 충동 | 문법과 규칙, 약속 |
| 시작되는 자리 | 엄마와 아기 사이 | 말을 배우는 사회 |
| 혼자 남으면 | 아무도 못 알아들어요 | 느낌이 메말라요 |
크리스테바의 핵심은, 이 둘 중 하나만 고르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상징계만 있으면 말은 사전처럼 정확하지만 차갑고 죽은 글자가 돼요.
기호계만 있으면 느낌은 살아 있지만 아무도 못 알아듣는 비명이 되고요.
진짜 살아 있는 말은 규칙이라는 바닥 위로 리듬과 충동이 새어 나올 때 태어나요.
멜로디 없는 가사도, 가사 없는 흥얼거림도 노래가 되긴 어려운 것과 같아요.
그는 이 충동들이 출렁이는 자리를 코라라고 불렀어요.
코라는 원래 그릇이나 자궁처럼 아직 모양이 정해지지 않은 것들을 담는 공간이라는 뜻이에요.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말이 되기 전의 충동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 가마솥을 떠올리면 돼요.

크리스테바가 1974년에 펴낸 책 제목이 바로 시적 언어의 혁명이에요.
그가 시인의 언어를 그토록 오래 들여다본 이유가 여기 있어요.
시는 일부러 규칙을 흔들거든요.
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문장을 뚝뚝 끊고, 일부러 리듬을 만들죠.
사전적인 뜻만 따지면 비효율적인데, 바로 그 흔들림 덕분에 기호계의 리듬이 상징계의 문법을 뚫고 올라와요.
그러니까 시나 노래 가사를 읽을 때 뜻을 다 이해하기도 전에 가슴이 먼저 두근거리는 건 우연이 아니에요.
소리와 리듬이 우리 몸을 먼저 건드리니까요.
크리스테바는 이렇게 규칙과 충동이 부딪치고 섞이는 자리에서 "나"라는 주체가 한 번 완성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진다고 봤어요.
우리는 다 빚어진 채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옹알이와 문법 사이를 평생 오가며 계속 다듬어지는 존재라는 거예요.

기호계는 뜻 이전의 리듬과 충동, 상징계는 뜻을 만드는 규칙이에요.
크리스테바는 이 둘 중 하나를 버리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규칙만 남으면 말이 죽고, 충동만 남으면 말이 안 통하니까요.
옹알이하던 아기가 문법을 다 배우고도 노래와 시 앞에서 여전히 가슴이 뛰는 이유, 그게 바로 두 세계가 우리 안에서 아직도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증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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