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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상호텍스트성은 모든 글이 이미 있던 다른 글들을 빌리고 섞어서 만들어진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어떤 글도 혼자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수많은 다른 글들과 보이지 않게 손을 잡고 있다는 뜻이죠.

좋아하는 노래를 떠올려 볼까요.
분명 처음 듣는 신곡인데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가사 한 줄, 박자 하나가 예전에 듣던 다른 노래를 살짝 닮았거든요.
사실 세상의 노래는 다 그래요.
완전히 무에서 솟아난 멜로디는 거의 없고, 알게 모르게 앞선 노래들의 조각을 물려받아요.
줄리아 크리스테바라는 철학자는 이 일이 글에서도 똑같이 벌어진다고 봤어요.
이 글에서는 그가 말한 '상호텍스트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게 우리가 글을 읽고 쓰는 방식을 바꿔 놓는지 쉬운 말로 풀어 볼게요.

크리스테바는 1960년대 후반에 쓴 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모든 텍스트는 인용들의 모자이크로 만들어진다." 모자이크가 뭔지 아시죠.
작은 색 타일을 잔뜩 붙여서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드는 거예요.
타일 하나하나는 원래 다른 데서 온 조각인데, 모아 놓으면 새 그림이 돼요.
글도 똑같아요.
우리가 쓰는 문장은 우리가 처음 발명한 게 아니에요.
학교에서 배운 말, 책에서 읽은 표현, 부모님에게 들은 이야기, 인터넷에서 본 농담이 머릿속에 쌓여 있다가 슬그머니 흘러나오는 거예요.
그러니 글 한 편은 한 사람의 머리에서 통째로 나온 게 아니라, 수많은 다른 글의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진 모자이크인 셈이죠.
이걸 크리스테바는 '상호텍스트성'이라고 불렀어요. '서로(상호) 글(텍스트)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에요.

재미있는 건, 크리스테바 자신도 이 생각을 혼자 짜낸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그는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건너간 학자인데, 미하일 바흐친이라는 러시아 사상가의 글을 읽다가 영감을 얻었어요.
바흐친은 모든 말에는 항상 '대답을 주고받는 성질'이 있다고 봤어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건 이미 누군가 한 말에 대한 응답이라는 거죠.
크리스테바는 이 생각을 받아서 더 또렷한 이름표를 붙였어요.
바로 '상호텍스트성'이라는 단어예요.
그러니까 '모든 글은 빌려 온 조각으로 만들어진다'는 이론 자체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려 와 만들어진 거예요.
자기 이론이 자기 이론을 증명하는 셈이라 꽤 멋지죠.

예전 사람들은 글을 읽을 때 '이 작가가 무슨 뜻으로 썼을까'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어요.
작가 한 사람이 글의 주인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상호텍스트성으로 보면 그림이 달라져요.
| 기존의 생각 | 상호텍스트성의 생각 |
|---|---|
| 글은 작가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다 | 글은 수많은 다른 글의 조각이 모여 만들어진다 |
| 작가의 의도가 뜻을 정한다 | 읽는 사람이 떠올리는 연결까지가 뜻이 된다 |
| 글은 홀로 완성된 작품이다 | 글은 다른 글들과 이어진 그물의 한 매듭이다 |
이렇게 보면 글의 뜻은 작가 혼자 정하는 게 아니에요.
읽는 사람이 그 글에서 어떤 다른 이야기를 떠올리느냐에 따라 뜻이 새로 피어나요.
같은 동화를 읽어도 그동안 본 만화가 다르면 다르게 느끼는 것처럼요.
그래서 크리스테바의 생각은 '읽는 사람'의 자리를 한층 넓혀 줬어요.

크리스테바의 상호텍스트성은 어렵게 들리지만 핵심은 간단해요.
세상에 완전히 혼자 태어난 글은 없고, 모든 글은 앞선 글들의 조각을 빌려 만든 모자이크라는 거예요.
노래가 옛 멜로디를 물려받고, 크리스테바조차 바흐친의 생각을 빌려 온 것처럼요.
다음에 책이나 글을 읽다가 '어,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이 든다면, 그건 착각이 아니라 글들이 서로 손잡고 있다는 증거예요.
그 보이지 않는 손잡음을 알아채는 것, 그게 바로 상호텍스트성이라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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