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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데이비드슨은 은유에 글자 그대로의 뜻 말고 따로 숨은 뜻은 없다고 봤어요. 은유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를 다르게 보도록 슬쩍 떠미는 일이라는 거예요.

도널드 데이비드슨은 "은유는 언어가 꾸는 꿈이다"라고 말했어요. 꿈은 멋지고 생생하지만, 막상 "그 꿈이 무슨 뜻이야?"라고 물으면 똑 부러지게 답하기 어렵죠. 데이비드슨이 은유를 본 방식이 딱 그래요.
데이비드슨은 1917년부터 2003년까지 산 미국 철학자예요. 말의 뜻을 따질 때 "이 문장이 어떤 경우에 참이 되는가"로 풀어 보는 진리 조건 의미론, 그리고 마음과 몸의 관계를 다룬 무법칙 일원론으로 유명해요. 어려운 이름이지만 걱정 마세요. 여기서는 그가 1978년에 쓴 글 '은유는 무엇을 말하나'만, 12살도 알 수 있게 풀어 볼게요.

"내 동생은 천사야"라는 말, 들어 봤죠? 사람들은 보통 이런 은유를 암호처럼 생각해요. 겉으로는 '천사'라고 말했지만, 진짜 속뜻은 '아주 착하다'라는 거라고요. 그래서 은유를 잘 풀기만 하면 그 안에 숨겨 둔 메시지가 짠 하고 나온다고 믿어요.
마치 선물 상자 같은 거예요. 예쁜 포장지(은유)를 벗기면 안에 진짜 선물(숨은 뜻)이 들어 있다는 생각이죠.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은유를 이렇게 이해했어요.

그런데 데이비드슨의 생각은 정반대였어요. 그는 은유 속 단어도 그냥 사전에 적힌 뜻 그대로일 뿐이라고 봤어요. '천사'는 그냥 천사고, "내 친구는 늑대야"의 '늑대'도 그냥 늑대예요. 은유라고 해서 단어에 비밀 뜻이 하나 더 붙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 "내 동생은 천사야"는 글자 그대로 보면 사실 거짓말이에요. 동생은 날개 달린 진짜 천사가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우리는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죠. 거짓말인데 왜 통할까요? 바로 여기서 데이비드슨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돼요.

누군가 밤하늘의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고 해 봐요. 그 손가락이 달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 주는' 건 아니에요. 손가락은 그냥 우리 눈길을 달 쪽으로 돌릴 뿐이죠. 데이비드슨에게 은유가 바로 이 손가락이에요.
"내 동생은 천사야"라는 말은 동생에 관한 새 정보를 전하는 게 아니라, 듣는 사람이 동생을 천사처럼 한번 바라보게 만들어요.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 '아, 잘 웃고 잘 도와주는구나' 하고 느끼죠. 그래서 데이비드슨은 은유가 단어의 뜻 문제가 아니라, 말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사용의 문제라고 했어요.

데이비드슨의 주장에는 재미있는 증거가 하나 있어요. 정말 좋은 은유일수록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바꿔 쓸 수 없다는 거예요. "내 친구는 늑대야"를 풀어 보려 하면 '거칠다, 자유롭다, 무리 지어 다닌다, 눈빛이 사납다'처럼 설명이 끝없이 이어져요.
만약 은유 안에 정해진 숨은 뜻이 딱 있다면, 그걸 한 줄로 적을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그게 안 되죠. 이것이야말로 은유에 '정해진 속뜻'이 없다는 증거라고 데이비드슨은 봤어요. 은유는 답을 알려 주는 문장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새롭게 보게 만드는 그림에 가까운 거예요.
데이비드슨이 한 말은 이렇게 기억하면 돼요. 은유에는 벗겨 내면 나오는 숨은 선물 같은 건 없어요. 단어는 그냥 글자 그대로의 뜻일 뿐이에요. 대신 은유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우리가 무언가를 새로운 눈으로 보도록 떠밀어 줘요. 그래서 좋은 은유는 한 줄로 풀리지 않고 자꾸 곱씹게 되죠. 다음에 멋진 비유를 만나면, 그 안의 정답을 찾기보다 그 비유가 당신에게 무엇을 보여 주는지 느껴 보세요. 그게 바로 데이비드슨이 알려 준 은유를 즐기는 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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