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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삼각측량 논증은 객관적인 생각과 말의 의미가 생기려면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둘이 함께 바라보는 대상, 이 세 꼭짓점이 모두 있어야 한다는 도널드 데이비드슨의 주장이에요. 혼자만의 머릿속에서는 '맞다'와 '틀리다'가 아예 생기지 않거든요.

멀리 있는 산봉우리까지 거리를 어떻게 잴까요? 줄자를 들고 산을 오를 수는 없어요. 옛날 측량 기사들은 멀찍이 떨어진 두 지점에서 각각 산봉우리를 바라본 다음, 두 각도로 삼각형을 그려서 거리를 알아냈어요. 한 지점에서만 보면 답이 안 나오고, 두 시선이 만나야 비로소 거리가 정해지죠. 이걸 삼각측량이라고 불러요. 데이비드슨은 이 측량 방법을 사람의 마음에 그대로 옮겨 왔어요. 우리가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걸 말로 가리키는 일도, 알고 보면 두 개의 시선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거예요. 지금부터 그 두 시선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하나씩 따라가 볼게요.

무인도에서 태어날 때부터 줄곧 혼자 살아온 사람을 떠올려 봐요. 그 사람 앞으로 빨간 열매 하나가 굴러왔어요. 그는 마음속으로 어떤 느낌을 가져요. 그런데 그 느낌은 '열매'에 대한 걸까요, '빨강'에 대한 걸까요, 아니면 '둥근 것'에 대한 걸까요? 물어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무엇에 대한 생각인지 딱 잘라 정할 길이 없어요. 게다가 그가 무얼 떠올리든 "그건 아니야" 하고 바로잡아 줄 사람도 없죠. 그런데 틀릴 수 없는 곳에서는 맞을 수도 없어요. 정답이 없는 시험에는 오답도 없는 것과 같아요. 데이비드슨은 바로 이 점을 콕 집어요. 생각에 '맞다와 틀리다'가 들어오려면, 다시 말해 그 느낌이 진짜로 무언가에 대한 생각이 되려면 혼자서는 부족하다고요.

이제 그 섬에 친구 한 명이 도착했어요. 둘은 나란히 서서 같은 빨간 열매를 봐요. 한 사람이 "아!" 하고 소리 내자 다른 사람도 같은 열매 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요. 두 사람의 반응이 같은 곳에서 딱 만나는 순간, 비로소 '우리가 지금 같은 것을 보고 있구나' 하는 감각이 생겨요. 그리고 한 사람이 엉뚱하게 돌멩이를 가리키며 같은 소리를 내면, 다른 사람이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열매"라고 고쳐 줄 수 있어요. 여기서 처음으로 '틀림'이 태어나요. 틀림이 생겨야 맞음도 생기고, 맞음과 틀림이 함께 있어야 '진짜로 그러함', 곧 객관적인 진리라는 생각이 가능해져요. 두 번째 사람은 단순한 말동무가 아니라, 내 생각이 빗나갈 수도 있다는 걸 알려 주는 거울인 셈이에요.

삼각측량에는 관측 지점 둘과 목표물 하나가 필요했죠. 데이비드슨의 그림도 똑같이 세 꼭짓점이에요. 나, 너, 그리고 우리 둘이 함께 반응하는 세상의 한 대상. 내가 내는 어떤 말이 하필 '열매'를 뜻하게 되는 이유는, 내가 그 말을 낼 때마다 너도 같은 열매에 반응하고 그런 일이 자꾸 되풀이되기 때문이에요. 두 사람의 시선이 같은 대상에서 교차하는 그 지점이, 마치 두 각도가 산봉우리를 콕 짚어 내듯 단어의 의미를 한자리에 붙들어 매 줘요. 만약 세상이라는 세 번째 꼭짓점이 빠지면 두 사람은 그저 허공에 대고 소리만 주고받는 셈이라,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해지지 않아요. 그래서 데이비드슨에게 의미와 생각은 머릿속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둘 사이에서, 세상을 가운데 두고 생겨나는 일이에요.
도널드 데이비드슨은 1917년부터 2003년까지 산 미국의 분석철학자예요. 그는 "어떤 문장의 뜻을 안다는 건 그 문장이 어떤 경우에 참이 되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봤어요. 예를 들어 '눈이 온다'는 말의 뜻을 안다는 건, 바깥에 정말 눈이 올 때 그 말이 맞는다는 걸 안다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진리 조건 의미론이라고 불러요. 또 마음과 몸의 관계를 두고 무법칙 일원론이라는 독특한 입장도 내놨어요.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과 뇌에서 일어나는 일은 결국 같은 하나의 사건이지만, 마음을 물리 법칙처럼 빈틈없이 예측하는 규칙은 없다는 거예요. 삼각측량 논증은 이런 그의 생각들과 한 줄로 이어져 있어요. 의미든 진리든 마음이든, 세상 그리고 다른 사람과 떼어 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거죠.

데이비드슨의 삼각측량 논증은 결국 이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어요. 객관적인 생각과 말은 혼자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멀리 있는 산봉우리를 재려면 떨어진 두 지점이 필요하듯, 내 생각이 무언가에 대한 '맞거나 틀린' 생각이 되려면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함께 보는 세상이라는 세 꼭짓점이 모두 있어야 해요. 다음에 누군가와 같은 것을 바라보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면, 바로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작은 삼각형 하나가 조용히 그려지고 있는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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