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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근본 해석은 통역도 사전도 없이 낯선 말을 처음부터 알아듣는 상황을 가정한 데이비드슨의 사고실험이에요. 상대가 어떤 문장을 '참'으로 여기는 순간들을 차곡차곡 모아 그 말의 뜻을 알아내자는 거고, 그래서 한 말의 의미란 결국 '그 말이 참이 되는 조건'이라는 게 핵심이에요.

여러분이 지도에도 없는 마을에 혼자 떨어졌다고 상상해 볼까요. 사전도 없고, 통역해 줄 사람도 없고, 영어나 한국어를 아는 사람도 없어요. 마을 사람들은 처음 듣는 말로만 이야기해요. 이때 여러분은 그 말을 어떻게 배우기 시작할까요.
미국 철학자 도널드 데이비드슨은 1923년부터 2003년까지 살면서, 바로 이 막막한 상황을 진지하게 파고들었어요. 그는 이걸 '근본 해석'이라고 불렀어요. '근본'이라는 말은 아무것도 미리 주어진 게 없이, 정말 맨바닥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뜻이에요. 이 한 가지 상상에서 '말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큰 질문의 실마리가 풀려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해요. 우선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봐요. 비가 쏟아지는데 누군가 창밖을 보며 "구바"라고 말하고 고개를 끄덕여요. 다음 날 또 비가 오자 그 사람이 다시 "구바"라고 해요. 며칠을 지켜보니, 비가 올 때마다 "구바"라는 문장을 참이라고 여긴다는 걸 알게 돼요. 그러면 짐작할 수 있어요. "구바"는 "비가 온다"는 뜻이겠구나, 하고요.
여기서 데이비드슨이 깔아 둔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어요. 상대를 '대체로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믿고 시작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는 이걸 '관용의 원리'라고 불렀어요. 상대가 온통 엉터리 거짓말만 한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그 말을 영영 해석할 수 없어요. 상대가 대체로 참인 말을 한다고 믿어야, 비로소 그 말과 세상을 맞춰 볼 수 있는 거예요. 사람을 일단 신뢰해야 대화가 시작된다는 건, 외국어 배울 때도 똑같죠.

그래서 데이비드슨은 한 문장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해요. "눈이 하얗다"라는 말의 뜻은, 바로 '눈이 실제로 하얄 때 그 문장이 참이 된다'는 조건이에요. 어떤 상황에서 그 말이 참이 되는지를 알면, 그 말의 뜻을 안 거예요. 이걸 어려운 말로 '진리 조건 의미론'이라고 불러요. 의미를 머릿속 신비한 그림이 아니라, 말과 세상이 맞아떨어지는 조건으로 본 거죠.
이게 왜 멋지냐면, 의미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끌어내렸기 때문이에요. "사랑이 뭐예요?"처럼 막연하게 묻는 대신, "이 문장은 어떤 때 참이 되나요?"라고 물으면 돼요. 손에 잡히지 않던 '뜻'이 갑자기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로 바뀌는 거예요.

데이비드슨은 마음에 대해서도 비슷한 고집을 부렸어요. 그는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이 결국 뇌에서 일어나는 일과 같은 사건이라고 봤어요. 마음과 몸이 따로 떨어진 두 세계가 아니라는 거죠. 여기까지는 '하나'라는 입장이에요.
그런데 그는 한 가지를 더 붙였어요. "이런 뇌 상태면 반드시 이런 마음이 된다" 같은 딱 떨어지는 법칙은 없다는 거예요. 마음은 너무 자유롭고 복잡해서, 물리 법칙처럼 정확한 공식에 가둘 수 없거든요. 그래서 마음과 몸은 같은 사건이지만, 둘을 잇는 법칙은 없어요. 이 묘한 입장을 '무법칙 일원론'이라고 불러요. '하나'이긴 한데 '법칙은 없다'는, 그 사람다운 절묘한 줄타기예요.

데이비드슨은 통역도 사전도 없는 자리에서 출발하면 의미의 정체가 보인다고 믿었어요. 상대가 어떤 문장을 참이라 여기는 순간을 모으는 게 근본 해석이고, 그러려면 상대를 일단 믿어 주는 관용의 원리가 필요했어요. 그렇게 모은 결론이 '한 말의 뜻은 그 말이 참이 되는 조건'이라는 진리 조건 의미론이고요. 마음에 대해서도 그는 몸과 하나이되 법칙으로는 묶이지 않는다는 무법칙 일원론을 내놓았어요. 어려운 이름들이지만, 바닥에 깔린 마음은 하나예요. 뜻이든 마음이든, 막연한 안개로 두지 말고 언제 무엇이 맞아떨어지는지를 보자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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