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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데이비드슨은 우리가 무언가를 한 '이유'가 곧 그 행동을 실제로 일으킨 '원인'이라고 봤어요. 마음속 이유는 핑계가 아니라 몸을 움직이게 만든 진짜 힘이라는 뜻이에요.

밤 열두 시에 물을 마시러 부엌에 간 적 있으세요? 누가 "왜 갔어?"라고 물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목이 말라서요"라고 답해요. 너무 당연한 대답이죠. 그런데 미국 철학자 도널드 데이비드슨(1917~2003)은 바로 이 평범한 "목이 말라서요" 한마디에 깊은 수수께끼가 숨어 있다고 봤어요. 이 글은 그가 그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었는지를 따라가 볼 거예요.

데이비드슨이 활동하기 전, 많은 철학자는 '원인'과 '이유'가 전혀 다른 종류라고 생각했어요.
당구공을 떠올려 보세요. 흰 공이 빨간 공을 때려서 빨간 공이 굴러가요. 이게 바로 '원인'이에요. 부딪히는 힘이 있고, 그래서 결과가 생기죠.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밀침이에요.
반면 "목이 말라서 물을 마셨어요"의 '목마름'은 좀 다르게 느껴지죠. 이건 내 행동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이유'처럼 보여요. 당구공처럼 무언가를 쾅 때리는 게 아니라, 그냥 "말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말했어요. 이유는 행동을 이해시켜 줄 뿐, 원인처럼 진짜로 일으키는 건 아니라고요.

데이비드슨은 1963년에 '행동, 이유, 그리고 원인'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 통념을 흔들어요.
그가 던진 질문은 이거예요. "나는 물을 마실 이유가 여러 개일 수 있어요. 목도 마르고, 약도 먹어야 하고, 컵도 치울 겸이요. 그런데 내가 실제로는 '목이 말라서' 마셨다고 말할 때, 이 '때문에'는 무슨 뜻일까요?"
여러 이유 중에서 하나를 콕 집어 "바로 이것 때문에 움직였다"라고 말하려면, 그 이유가 단순히 변명거리여서는 부족해요. 그 이유가 실제로 내 손을 컵으로 뻗게 만든 힘이어야 하죠. 즉 그 이유가 진짜 원인일 때만, 우리는 "이것 때문에 했다"라고 정확히 말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데이비드슨은 행동의 이유가 곧 행동의 원인이라고 결론 내려요.

그럼 고민이 하나 생겨요. 마음속 생각이 원인이라면, 그건 뇌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사건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데이비드슨의 답이 그 유명한 '무법칙 일원론'이에요. 어렵게 들리지만 뜻은 단순해요. '일원론'은 마음의 사건과 뇌의 사건이 사실 같은 하나의 사건이라는 말이에요. '무법칙'은 그렇다고 "이런 생각은 반드시 이런 뇌 상태"라는 딱 떨어지는 법칙은 없다는 뜻이고요. 같은 사건이지만, 마음을 물리 법칙처럼 깔끔하게 묶을 수는 없다는 거죠.
참고로 그는 언어 쪽에서도 큰 발자국을 남겼어요. 어떤 문장의 뜻은 그 문장이 '참이 되는 조건'을 아는 것이라는 진리 조건 의미론인데, 이것도 결국 우리의 말과 행동을 또렷하게 이해하려는 같은 마음에서 나온 작업이었어요.

데이비드슨이 남긴 핵심은 한 문장으로 기억할 수 있어요. "목이 말라서 물을 마셨다"의 '목마름'은 그저 듣기 좋은 변명이 아니라, 실제로 내 몸을 움직인 원인이라는 거예요. 이유와 원인은 다른 세계가 아니라 같은 것의 두 얼굴이었던 셈이죠. 다음에 누군가 "왜 그랬어?"라고 물을 때, 당신의 그 대답이 사실은 당신을 움직인 진짜 힘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떠올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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