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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크립키는 이름이 그 사람의 설명이나 특징 때문에 대상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처음 이름을 붙인 순간부터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이어져 온 '연결 고리' 덕분에 대상을 가리킨다고 봤어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뭐가 떠오르나요? 아마 '옛날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같은 설명이 먼저 떠오를 거예요. 오랫동안 많은 학자들은 이름이 바로 그런 설명 덕분에 누군가를 가리킨다고 믿었어요. 이름을 일종의 '숨은 설명 뭉치'로 본 거죠.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실 '철학을 한 그리스 사람, 알렉산더의 스승…' 같은 정보 카드의 줄임말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미국의 논리학자 솔 크립키는 여기에 의문을 던졌어요. 만약 우리가 아는 사실이 전부 틀렸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실은 철학책을 한 권도 안 썼고 알렉산더를 가르친 적도 없다고 해 봐요. 설명 뭉치 이론대로라면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은 갑자기 다른 사람을 가리키게 되어야 해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사람,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리키고 있다고 느끼죠.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크립키의 대답은 이래요. 이름은 설명이 아니라 '연결 고리' 덕분에 대상을 가리킨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생각을 인과 지시 이론이라고 불러요. '인과'는 원인과 결과가 사슬처럼 이어진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상상해 보세요. 아주 오래전, 누군가 갓 태어난 아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아이는 아리스토텔레스야'라고 처음 이름을 붙여요. 이게 출발점, 말하자면 이름의 '명명식'이에요. 그다음부터 이름은 이어달리기의 배턴처럼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해져요. 부모가 이웃에게, 이웃이 친구에게, 그 친구가 또 다른 사람에게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을 넘겨주죠.
재미있는 건, 배턴을 넘겨받는 사람은 그 아이에 대해 자세히 몰라도 된다는 점이에요. 여러분이 '아리스토텔레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사람을 직접 만나서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이 말의 연결 고리 끝자락을 잡고 있기 때문이에요. 설명을 외워서가 아니라, 사슬에 매달려 있어서 가리킬 수 있는 거예요.

크립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어요. 우리 머릿속 '만약에' 게임을 떠올려 보세요. '만약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을 안 하고 어부가 됐다면?' 같은 상상 말이에요. 철학에서는 이런 상상 속 세상을 가능세계라고 불러요.
자, 그 '어부가 된 아리스토텔레스'를 떠올릴 때, 우리는 여전히 같은 사람을 떠올리고 있어요. 직업이 바뀌었어도 '그 사람'인 건 변하지 않죠. 크립키는 이름이 이렇게 어떤 가능세계에서도 똑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성질을 가졌다고 봤고, 이런 이름을 고정 지시어라고 불렀어요. 마치 어느 상상 속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단단히 붙은 이름표 같은 거예요.
설명은 세상마다 달라질 수 있어요. '철학을 한 사람'이라는 설명은 어부가 된 세상에선 맞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름은 그래도 끄떡없어요. 크립키는 10대에 이미 이 가능세계를 다루는 논리를 연구해서 학자들을 놀라게 했고, 1970년에 한 강의를 모아 1972년에 책으로 펴내면서 이 생각을 널리 알렸어요.

이름이 누군가를 가리키는 힘은 그 사람에 대한 설명에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처음 이름 붙인 순간부터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이어져 온 연결 고리, 그리고 어떤 상상 속 세상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단단한 이름표. 크립키는 이 두 가지로 이름의 비밀을 새로 설명했어요. 다음에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여러분도 사실은 아주 긴 사슬의 끝을 잡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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