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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기원전 375년, 신불해의 조국 정(鄭)나라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그를 삼킨 나라 한(韓)에서 그는 복수 대신 출세를 택했다.
오늘날로 치면 이런 상황이다.
내가 다니던 스타트업을 대기업이 인수합병했는데, 그 대기업에서 결국 내가 CEO가 된 것이다.
신불해는 자기 나라를 없앤 그 체제 안에서 낮은 관리로 시작해 재상 자리까지 올랐다.
그가 어떤 감정으로 한나라 궁궐에 출근했을지는 기록에 없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이 꽤 놀랍다.

한나라에는 진(秦)나라 같은 군대도, 초(楚)나라 같은 땅도 없었다.
신불해가 가진 건 인사 평가표뿐이었다.
전국칠웅이란 전국시대를 지배한 일곱 강국을 말한다.
한나라는 그 일곱 중 가장 약했고, 진·위(魏)·초 사이에 끼인 지리적 사지(死地)였다.
사방이 강국이라는 건, 어느 방향에서든 언제라도 먹힐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신불해가 재상에 오른 기원전 354년부터 그가 죽은 337년까지 15년 동안, 한나라는 단 한 번도 대규모 침략을 당하지 않았다.
전쟁의 시대에, 전쟁 없이 살아남은 것이다.
칼이 아니라 서류로 나라를 지킨 셈이었다.
그의 무기는 술(術)이었다.
술이란 간단히 말해 '관리를 제대로 뽑고, 제대로 평가하는 방법'이다.
누가 어떤 자리에 있고, 그 자리에서 실제로 무슨 일을 했는지를 체계적으로 따지는 것이었다.

신불해가 왕에게 한 가장 중요한 조언은 이것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그의 핵심 이론은 형명참동(形名參同)이었다.
어려운 이름이지만 내용은 단순하다.
신하가 스스로 맡겠다고 한 업무와 실제로 낸 결과가 일치하는지만 확인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를 더 강조했다.
군주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절대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군주의 취향이 새어나가는 순간 신하 전원이 그 취향에 맞추느라 진짜 일을 안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건 2500년 전 이야기가 아니다.
팀장이 회의에서 먼저 의견을 내면 팀원 전체가 거기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는 현상, 지금도 모든 조직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좋은 리더는 마지막에 말한다는 현대 경영학의 원칙이 신불해의 말과 정확히 겹친다.
리더십의 본질을 "존재감을 지우는 것"으로 정의한 사람이 기원전에 이미 있었다.

신불해는 "사람이 바뀌어도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그가 빠지자 모든 것이 무너졌다.
기원전 337년 그가 죽은 뒤, 한나라는 급격히 쇠퇴했다.
15년 동안 버텨온 균형이 한 사람의 부재와 함께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역설은 여기에 있다.
탁월한 CEO가 퇴임하면 주가가 폭락하는 것처럼, 시스템을 만든 사람 자체가 그 시스템의 핵심 부품이었다.
"사람에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설계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대체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더 아이러니한 건 그 이후의 역사다.
신불해의 사상을 계승한 것은 한나라가 아니었다.
적국 진(秦)나라의 사상가 한비자(韓非子)가 그의 이론을 흡수해 발전시켰고, 진나라 시황제가 그것을 채택해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세웠다.
신불해가 쓴 책 《신자(申子)》는 대부분 소실되었다.
오늘날 단편적인 문장 몇 개만 남아 있다.
망한 나라 출신으로 태어나, 만든 것마저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 생각만은 다른 나라의 역사 속에 살아남았다.
그걸 신불해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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