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에도 막부의 쇼군이 한 가문을 시골로 내쫓았을 때, 그는 자신이 100년 뒤 일본을 뒤흔들 사상가를 직접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1679년, 오규 소라이의 아버지가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눈 밖에 나서 에도에서 쫓겨났어요.
열세 살 소라이는 가즈사, 지금의 지바현 시골 마을에서 갑자기 극빈 생활을 시작하게 됐죠.
그 시절 가족의 끼니를 이어준 건 마을 두부 장수 시치베에였어요.
시치베에는 매일 아침 외상으로 두부를 문 앞에 놓아두었어요.
소라이 가족은 그 두부로 버텼고, 소라이는 그 시간을 독서에 쏟았어요.
구할 수 있는 한문 원전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요.
여기서 반전이 있어요.
에도의 관학, 그러니까 나라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학문 체계 밖에 있었기 때문에, 소라이는 "이 책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는 정답 없이 원전을 직접 마주할 수 있었어요.
회사에서 잘리고 시골로 내려갔는데, 그 시간이 오히려 인생 최고의 공부 기간이 된 사람의 이야기예요.

수백 년 동안 일본의 유학자들은 공자를 읽었다고 믿었어요.
소라이는 그들이 읽은 것은 공자가 아니라 일본어로 재조립된 별개의 문장이라고 말했어요.
에도로 돌아온 소라이는 고문사학이라는 독법을 창시했어요.
고문사학이 뭐냐 하면, 한문을 일본어 어순으로 재배치해서 읽지 말고, 중국어 원문을 그대로 중국어 어순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에요.
당시 일본 학자들은 훈독이라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원문을 분해해서 일본어 문법에 맞게 재조립한 다음 읽었거든요.
영어 원서를 번역본으로만 읽다가 원서를 펼쳤더니 완전히 다른 책이었던 경험, 있죠.
번역 과정에서 핵심 뉘앙스가 증발해버리는 그 감각이에요.
소라이는 일본의 유학자들이 수백 년간 바로 그 함정에 빠져 있었다고 본 거예요.
그런데 이게 단순한 독법 논쟁이 아니었어요.
"원전으로 돌아가자"는 복고적 구호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당대 가장 급진적인 선언이었어요.
국가가 공인한 주자학의 해석 독점을 정면으로 부정한 셈이니까요.

47명의 사무라이가 주군의 원수를 베었을 때, 에도의 모든 사람이 울며 박수를 쳤어요.
딱 한 사람만 "이들을 죽여야 한다"고 말했어요.
1703년의 아코 사건이에요.
주군이 억울하게 죽자 47명의 낭인, 그러니까 주군을 잃은 사무라이들이 원수의 저택을 습격해서 복수했어요.
에도 시민들은 이들을 충의와 의리의 상징으로 칭송했어요.
소라이는 달랐어요.
이들의 충성심 자체는 인정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사적 복수는 법질서를 파괴하므로 할복을 명해야 한다"고 막부에 건의했고, 이 의견이 실제로 채택되었어요.
SNS에서 모두가 한쪽을 응원할 때 혼자 다른 의견을 내야 하는 상황, 그 의견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입 밖에 꺼내기 어려운 순간이 있잖아요.
소라이가 정확히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리고 그는 말했어요.
그런데 이 판단은 즉흥이 아니었어요.
그의 철학 전체와 정확하게 맞닿아 있었어요.
개인의 도덕 감정이 아니라 제도와 법이 사회를 유지한다는, 그 생각이요.

"도덕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다. 아주 영리한 누군가가 설계한 것이다."
소라이는 이 한 문장으로 일본 유학 300년의 전제를 뒤집었어요.
소라이의 핵심 저작 『변도』는 이렇게 주장해요.
도, 그러니까 유교에서 말하는 도덕의 길이란, 우주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자연 원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고대의 뛰어난 왕들이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한 예악, 즉 의례와 음악 체계라는 거죠.
당시 주류 학문인 주자학은 "도덕은 천리에서 나온다"고 봤어요.
천리란, 하늘의 이치라는 뜻이에요.
도덕이 우주의 법칙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죠.
소라이는 그 전제를 정면으로 부정했어요.
유교의 언어를 쓰면서 유교의 핵심 전제를 해체한 거예요.
"도덕은 발명품이다"라고 쇼군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시 일본에 몇 명이나 있었겠어요.
그리고 이 생각은 300년이 지난 지금, 놀랍도록 익숙하게 들려요.
"나쁜 사람을 벌하면 사회가 좋아질까, 아니면 나쁜 행동을 못 하게 시스템을 바꿔야 할까?"
이 질문이 현대 정치철학과 행동경제학의 핵심이고, 소라이가 300년 전에 던진 질문이에요.
두부 외상으로 연명하던 열세 살 소년은 결국 그 물음에 평생을 걸었어요.
제도가 사람을 만든다는 그 생각이, 정작 그를 만든 건 아버지의 추방과 시골의 독서였다는 사실과 함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