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27년, 태국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의 아홉 살 소년이 집을 나섰어요.
돈을 벌러 간 게 아니라, 평생 아무것도 갖지 않기 위해서였어요.
아잔 차가 태어난 곳은 태국 동북부 이산 지방이에요.
전기도 수도도 없던 시절, 태국에서도 가장 가난한 땅이었어요.
그런데 그는 가난 때문에 출가한 게 아니었어요.
그게 이 이야기의 이상한 점이에요.
아홉 살에 사미승이 된 뒤, 그는 오히려 더 철저하게 가난을 선택했거든요.
사미승이란 오늘날로 치면 수습 스님, 정식 수계를 받기 전 단계예요.
스무 살에 정식 비구로 수계를 받은 그가 가진 건 허름한 가사 한 벌이 전부였어요.
매일 아침 맨발로 마을을 돌며 음식을 구걸했어요.
이걸 탁발이라고 해요.
스님이 직접 밥을 짓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그릇에 담아주는 것으로만 하루를 버티는 방식이에요.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고도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이게 맞나"라고 느껴본 적 있다면, 아홉 살에 이미 그 선택을 내린 소년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그는 답을 얻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맨발로 걸었어요.
스승이 준 답은 "걷지 말고 앉아라"였어요.
비구가 된 후 아잔 차는 수년 동안 태국 전역을 떠돌았어요.
이걸 투동(tudong)이라고 해요.
정해진 사원 없이 숲속을 걸어 다니며 수행하는 것, 오늘날로 치면 모든 걸 내려놓고 배낭 하나로 세상을 순례하는 여정이에요.
결정적인 만남이 찾아왔어요.
태국 숲속 수행 전통을 다시 일으킨 스승, 아잔 먼이었어요.
아잔 먼은 복잡한 교리 대신 단 하나만 가르쳤어요.
"지금 여기서 마음을 봐."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 찾아간 스승이 알려준 건 결국 "더 이상 아무 데도 가지 마"라는 것이었어요.
자기계발서 열 권을 읽고 나서 "그래서 결국 그냥 하라는 거잖아"라고 깨달은 순간이랑 비슷해요.
그런데 그게 맞는 말이었어요.
아잔 차는 그 뒤 고향 근처 숲으로 돌아갔어요.
1954년, 사람도 드물고 코브라가 출몰한다는 소문이 돈 숲에 작은 사원을 세웠어요.
그게 왓 파퐁의 시작이었어요.

1970년대, 전기도 없는 태국 숲속 사원 앞에 미국인과 유럽인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어요.
그들이 버린 것은 여권이 아니라 풍요였어요.
베트남전이 끝난 직후였어요.
전쟁의 혼란 속에서 수많은 서양 청년들이 동남아시아를 떠돌고 있었어요.
그러다 누군가로부터 왓 파퐁 이야기를 들은 거예요.
새벽 3시에 일어나 좌선.
하루 한 끼 식사.
전기 없음. 코브라 있음.
그들은 왔어요.
그리고 떠나지 않았어요.
아잔 차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 했어요.
하지만 통역을 거친 그의 말이 서양인들의 삶을 바꿨어요.
"조금 내려놓으면 조금 평화롭고, 많이 내려놓으면 많이 평화로워."
서양인들이 계속 늘자 아잔 차는 1975년, 그들만을 위한 사원을 따로 세웠어요.
왓 파 나나찻, 태국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수행자를 위해 세워진 숲속 사원이에요.
해외여행 중 우연히 들른 허름한 가게의 음식이 미슐랭 레스토랑보다 나았던 경험 있잖아요.
화려한 포장 없이 본질만 남은 것이 때로 가장 강력해요.
그 숲이 딱 그랬어요.

1981년부터 1992년까지, 아잔 차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바로 그 10년 동안 그의 사원은 가장 빠르게 늘어났어요.
1981년, 당뇨 합병증으로 뇌수술을 받은 뒤 그는 전신 마비 상태가 됐어요.
말도 할 수 없었고, 몸도 움직일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스승이 침묵하는 동안, 오히려 분원이 가장 활발하게 세워진 거예요.
현재 태국 안에만 200개 이상, 해외 15개국에 100개 이상의 사원이 그의 이름 아래 이어져 있어요.
은퇴한 창업자가 떠난 뒤에도 회사가 더 잘 돌아가는 경우가 있잖아요.
진짜 리더십은 자신이 없어도 작동하는 무언가를 남기는 거예요.
아잔 차가 정확히 그랬어요.
그는 평생 아닛짜(anicca)를 가르쳤어요.
아닛짜란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진다"는 불교의 핵심 가르침이에요.
결국 "영원한 건 없다"는 뜻이죠.
그런데 마지막 10년 동안 그는 자기 몸이 무너지는 것으로 그 가르침을 직접 보여줬어요.
어떤 법문보다 강한 증명이었어요.
1992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태국 왕실이 장례를 주관했어요.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왔어요.
아무것도 갖지 않았던 남자의 마지막 자리였어요.
말 한마디 없이 누워만 있었던 10년이, 그가 남긴 어떤 설법보다 많은 것을 말했을지도 몰라요.
그 침묵이 지금도 300개의 사원을 흐르고 있으니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