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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일본 근대철학의 창시자로 불린 니시다 기타로는 처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오늘로 치면 명문대 정규 졸업장이 애매한 사람이, 훗날 그 대학권에서 가장 중요한 교수 중 한 명이 된 셈이에요.
니시다는 도쿄제국대학에서 공부했지만 정규 학생이 아니라 선과생이었어요.
선과생은 학교 수업을 들을 수는 있지만, 정식 학생처럼 안정된 소속과 학위가 보장된 자리는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그는 제도 안에 들어가긴 했지만, 제도의 한가운데 앉아 있지는 못했던 거예요.
이게 이상하게 중요해요.
니시다의 철학은 늘 “중심은 어디인가”를 묻거든요.
그런데 정작 그의 출발점은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였어요.
학위 경력이 탄탄하지 않았던 사람이 나중에 교토제국대학 교수가 됩니다.
교토제국대학은 당시 일본에서 최고 수준의 학문 기관이었어요.
누군가에게는 “이력서가 부족하다”는 말이 끝이지만, 니시다에게는 시작이었어요.
그는 묻고 또 물었어요.
“나는 어디서부터 생각하고 있는가.”
이 질문 하나가, 졸업장보다 더 오래 그를 따라다녔어요.

니시다가 붙잡으려 한 것은 생각하기 전의 순간이었어요.
사과를 보고 “이건 사과야”라고 말하기 전, 이미 빨갛고 둥글고 먹고 싶은 느낌이 먼저 오잖아요.
니시다는 바로 그 찰나를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어요.
젊은 시절 니시다는 선 수행을 했어요.
선은 말로 설명하기보다 앉아서 마음을 들여다보며, 생각이 생기기 전의 자리를 확인하려는 불교 수행이에요.
머리로 정답을 맞히는 공부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직접 부딪히는 훈련에 가까워요.
그런데 니시다는 그 경험을 신비로운 이야기로만 남기지 않았어요.
“깨달았다” 하고 끝내지 않았어요.
그는 그 체험을 들고 책상 앞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1911년, 『선의 연구』를 냅니다.
이 책은 일본 근대철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저작이에요.
절에서 붙잡은 질문을 대학 강의실의 언어로 바꾼 책이라고 보면 돼요.
여기서 핵심이 순수경험이에요.
순수경험은 “내가 본다”와 “사물이 있다”가 나뉘기 전의 경험이에요.
스마트폰 카메라가 초점을 잡기 전, 화면 전체가 먼저 한꺼번에 들어오는 순간과 비슷해요.
니시다는 말하고 싶었을 거예요.
“우리는 생각해서 세계를 만나는 게 아니야. 이미 세계 안에 들어와 있잖아.”
그래서 그의 철학은 머릿속 퍼즐이 아니었어요.
먼저 살고, 나중에 설명하는 사람의 철학이었어요.

니시다의 ‘무’는 책상 위 개념만이 아니라 장례식 뒤에도 남은 질문이었어요.
그는 아내와 자녀들의 죽음을 겪었어요.
가장 가까운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밥을 먹고, 길을 걷고, 다시 글을 써야 했던 사람이었어요.
여기서 말하는 무는 그냥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에요.
무는 비어 있는 구멍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인가가 드러날 수 있는 자리예요.
극장의 불이 꺼져야 무대 위 인물이 보이는 것과 비슷해요.
니시다는 상실을 예쁜 위로로 덮지 않았어요.
“시간이 해결해준다” 같은 말로 넘어가지 않았어요.
그는 더 불편한 질문 앞에 섰어요.
“사라진 것은 어디로 갔는가.”
“남은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 질문은 나중에 『무의 자각적 한정』 같은 글로 이어져요.
이 제목은 어렵지만, 풀면 이런 뜻에 가까워요.
무는 텅 빈 배경이 아니라, 세계가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라는 생각이에요.
오늘의 말로 바꾸면 이래요.
메신저 대화창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사라졌는데, 이상하게 그 빈칸 때문에 그 사람이 더 선명해지는 순간이 있잖아요.
니시다의 무는 그런 빈칸이에요.
없어서 끝나는 자리가 아니라, 없기 때문에 더 깊이 묻게 되는 자리예요.
그래서 니시다의 철학은 차갑게만 들리지 않아요.
그 안에는 살아남은 사람이 끝내 버리지 못한 질문이 있어요.

니시다가 남긴 것은 한 권의 책보다 더 큰 질문의 학교였어요.
그의 사유는 다나베 하지메와 니시타니 게이지 같은 철학자들에게 이어졌어요.
이 흐름을 우리는 교토학파라고 불러요.
교토학파는 교토제국대학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일본 근대철학의 한 흐름이에요.
쉽게 말하면, 서양철학을 그대로 번역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의 질문으로 다시 생각해보자”고 한 사람들의 모임이에요.
당시는 서양 학문을 따라잡는 것이 큰 과제였어요.
철학도 마찬가지였어요.
칸트, 헤겔 같은 이름은 근대 학문의 거대한 산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니시다는 동양 사유를 장식품처럼 붙이지 않았어요.
불교나 선을 “일본적인 분위기”로만 소비하지 않았어요.
그는 그것을 철학의 중심 문제로 끌고 들어왔어요.
말하자면 번역만 하던 사람이 어느 날 칠판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한 셈이에요.
“이제 남의 답을 옮기는 일만으로는 부족해. 질문의 판을 다시 짜야 해.”
여기서 교토학파의 힘이 생겨요.
서양철학은 논리의 칼을 가져왔어요.
동양 사유는 경험의 깊은 우물을 가져왔어요.
니시다는 그 둘을 한 강의실에 세웠어요.
그래서 그의 철학은 단순히 일본적인 것도 아니고, 단순히 서양적인 것도 아니에요.
가장자리에서 출발한 사람이, 동서양의 중심을 다시 묻는 자리까지 간 거예요.
처음엔 정식 졸업장도 불안정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끝에 가서는 한 시대의 질문을 바꿔놓았어요.
니시다를 읽는다는 건 그래서 한 철학자를 외우는 일이 아니에요.
“나는 어디서부터 세계를 만나고 있지?”라는 질문 앞에 잠깐 멈춰 서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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