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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수리철학(数理哲学, suri tetsugaku)은 수학 문제를 푸는 공부가 아니라, "수학은 도대체 무엇이고 왜 그렇게 확실한가"를 철학으로 되묻는 일이에요. 원래 수학을 공부하던 다나베 하지메는 이 물음을 자기 철학의 맨 첫 출발점으로 삼았어요.

2 더하기 2는 4예요.
지구 반대편 친구에게 물어도, 천 년 전 사람에게 물어도 답은 똑같아요.
그런데 잠깐 멈춰서 이렇게 물어볼 수 있어요.
"왜 이건 이렇게까지 확실할까? 숫자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 내가 만든 걸까, 원래부터 세상에 있던 걸까?"
이렇게 수학을 푸는 대신 수학을 캐묻는 공부가 바로 수리철학(数理哲学, suri tetsugaku)이에요.
계산기가 답을 내주는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 답이 왜 참인지"를 따지는 거지요.
요리로 치면 요리를 하는 게 수학이고, "맛있다는 게 뭘까, 왜 우리는 이걸 맛있다고 느낄까"를 묻는 게 수리철학이라고 보면 쉬워요.

다나베 하지메(田辺元, 1885년부터 1962년까지)는 뒷날 종의 논리 같은 어려운 이론으로 유명해지지만, 첫 단추는 수학이었어요.
그는 도쿄제국대학에 들어가 처음에는 자연과학, 그중에서도 수학을 전공했어요.
그러다 1908년에 철학과로 전과했지요.
수학의 손을 놓은 게 아니라, 수학을 더 깊이 캐물으려고 철학으로 옮겨 간 셈이에요.
증거도 뚜렷해요.
그는 1913년 도호쿠제국대학에서 자연과학 분야의 철학을 강의했고, 1916년에는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의 책 『과학의 가치』(科学の価値)를 일본어로 옮겼어요.
그리고 1918년 교토제국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 바로 『수리철학연구』(数理哲学研究, suri tetsugaku kenkyū)였어요.
이 논문은 1925년에 같은 제목의 책으로 다시 나왔지요.
다시 말해 수리철학은 다나베가 학자로서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큰 결실이었어요.

수리철학이 다루는 질문들은 열두 살 아이가 들어도 신기한 것들이에요.
몇 가지를 표로 정리해 볼게요.
|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것 | 수리철학이 던지는 물음 |
|---|---|
| 숫자는 그냥 있다 | 숫자는 발견된 걸까, 사람이 만든 걸까 |
| 증명하면 참이다 | 증명은 왜 우리를 확신시킬까 |
| 수학은 어디서나 맞다 | 그 확실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
다나베가 이 물음에 매달리던 무렵, 그는 1922년부터 독일에 유학해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에드문트 후설에게 배웠고, 오스카 베커나 젊은 마르틴 하이데거와도 어울렸어요.
이들은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는지를 파고들던 사람들이었지요.
수학의 확실함을 캐묻던 다나베에게는 좋은 대화 상대였을 거예요.
다만 그가 이 물음에 내놓은 세세한 답까지 여기서 단정하지는 않을게요.
남은 기록으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그가 수학을 가장 확실해 보이는 지식으로 놓고 그 뿌리를 철학으로 파 내려갔다는 점이에요.

수리철학은 다나베가 평생 지녔던 버릇을 보여 줘요.
그는 무엇이든 "이건 정말 확실한가, 그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가"를 끝까지 캐물었어요.
가장 딱딱하고 흔들림 없어 보이는 수학조차 그냥 넘기지 않고 뿌리를 들여다본 사람이지요.
이 태도는 뒷날 종의 논리(種の論理)나 참회도(懺悔道) 같은 다른 사상으로도 이어져요.
이 주제들은 각각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루니 여기서는 이름만 살짝 걸어 둘게요.
중요한 건, 그 모든 어려운 철학의 출발선에 "수학은 왜 확실한가"라는 소박하고도 깊은 물음이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수리철학(数理哲学, suri tetsugaku)은 수학을 푸는 대신 "수학이란 무엇이고 왜 그렇게 확실한가"를 철학으로 되묻는 공부예요.
원래 수학도였던 다나베 하지메는 철학으로 옮겨 와 푸앵카레의 책을 번역하고, 1918년 박사논문 『수리철학연구』와 1925년 같은 제목의 책으로 이 물음을 자기 학문의 첫 결실로 남겼어요.
가장 확실해 보이는 것조차 그냥 믿지 않고 밑바닥까지 캐묻는 태도, 그게 다나베 철학 전체의 씨앗이었다고 기억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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