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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타력(他力, tariki)은 나를 구원하는 힘이 내 안이 아니라 나를 넘어선 곳에서 온다는 생각이에요. 다나베 하지메는 사람이 제 힘(자력)만으로는 자기 잘못을 씻지도 자기를 온전히 부정하지도 못하며, 자기 밖의 힘에 자신을 내맡길 때에야 비로소 새로 태어난다고 보았어요.
깊은 물에 빠졌다고 생각해 볼까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 머리채를 스스로 잡아당겨 물 밖으로 나올 수는 없어요.
누군가 밖에서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하죠.
다나베 하지메(田辺元, 1885년부터 1962년까지)가 말한 '타력(他力, tariki)'이 바로 이 손 같은 거예요.
글자 그대로 풀면 '남의 힘', 곧 나를 넘어선 다른 힘이라는 뜻이에요.
다나베는 니시다 기타로와 함께 일본 교토학파를 이끈 철학자예요.
그 안에서 그는 '타력'의 입장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꼽혀요.
여기서 짝이 되는 말이 '자력(自力, jiriki)', 곧 '제 힘'이에요.
서양 계몽주의는 사람이 자기 이성의 힘으로 스스로를 완성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다나베는 바로 이 '자력만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을 의심했어요.
사람은 제 힘만으로는 끝내 자기를 구할 수 없다고 본 거죠.
다나베는 칸트에게서 '근본악(根本悪, radical evil)'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였어요.
사람에게는 선을 바라면서도, 그 바람을 거슬러 악을 저지르고 마는 어쩔 수 없는 성향이 있다는 거예요.
착하게 살고 싶다고 다짐하면서도 자꾸 어긋나는 우리 모습을 떠올리면 쉽게 와닿죠.
이런 사람이 자기 힘으로 자기 잘못을 완전히 씻는 건 불가능해요.
스스로를 심판하는 나 자신이 이미 그 잘못에 물들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다나베는 진짜 뉘우침(참회)은 내 안에서 저절로 솟는 게 아니라 '타자(他者)'가 있어야 비로소 일어난다고 봤어요.
내 밖의 어떤 힘 앞에서 나는 '내 죄는 내가 갚을 수 없구나, 나는 이토록 무력하구나' 하고 깨닫게 돼요.
그리고 바로 그 자기 밖의 힘이 나를 부수고(자기부정), 다시 살려 내요.
이 흐름이 정토진종 불교에서 아미타불의 힘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타력' 신앙과 맞닿아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다나베의 생각이 한 겹 더 깊어져요.
타력과 자력은 물과 기름처럼 딱 갈라지는 게 아니에요.
나를 뉘우치게 만드는 그 타력의 힘도, 결국 '나를 내맡기겠다'는 나의 움직임을 통해서만 내 안에서 작동하거든요.
다나베는 이 둘이 서로 붙어 떨어지지 않는 관계, 곧 '상즉불리(相即不離)'라고 했어요.
서로에게 스며들어 하나로 맞물려 있다는 뜻이에요.
| 구분 | 자력(自力, jiriki) | 타력(他力, tariki) |
|---|---|---|
| 뜻 | 나 자신의 힘 | 나를 넘어선 힘 |
| 믿음 | 이성으로 나를 완성한다 | 나를 내맡길 때 구원받는다 |
| 다나베의 눈 | 근본악 앞에서 한계에 부딪힘 | 자력과 맞물려 나를 새로 살림 |
표로 나누면 반대처럼 보이지만, 다나베가 강조한 핵심은 오른쪽 칸이 왼쪽 칸을 완전히 삼키지도, 버리지도 않는다는 점이에요.
타력에 자신을 맡기는 그 순간에도 나의 뉘우침이라는 작은 자력이 함께 살아 있는 거죠.
타력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다 남에게 맡겨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오히려 제 힘을 끝까지 밀어붙여 본 사람만이 만나는 한계에 관한 이야기예요.
최선을 다했는데도 무너질 때, 내 잘못을 스스로는 도무지 되돌릴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나 아닌 무언가에 기대야만 다시 일어서곤 하죠.
친구의 손, 뜻밖의 용서, 나를 넘어선 어떤 힘 말이에요.
다나베는 전쟁에 협력했던 자신의 잘못을 뼈아프게 돌아본 철학자이기도 했어요.
그 깊은 뉘우침 속에서 '나는 내 힘으로 나를 구할 수 없다'는 자리에 이르렀고, 거기서 타력이라는 답을 붙잡았어요.
그래서 이 개념은 차갑고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밑바닥까지 내려간 사람이 다시 살기 위해 내민 손에 가까워요.
타력(他力, tariki)은 나를 구하는 힘이 내 안이 아니라 나를 넘어선 곳에서 온다는 다나베 하지메의 생각이에요.
사람은 근본악 때문에 제 힘(자력)만으로는 자기를 구원할 수 없고, 자기 밖의 힘에 자신을 내맡길 때 비로소 부서지고 다시 살아나요.
다만 타력과 자력은 서로 반대이면서도 맞물려 떨어지지 않는(상즉불리) 관계라, 내맡김 속에도 나의 뉘우침이 함께 살아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이 개념을 오래 붙잡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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