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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성지(性智)는 우리 본성 그 자체가 지닌 앎이에요. 추리하거나 계산하지 않고도 실재(본체)를 곧바로 자각하는 지혜를 가리키며, 슝스리는 이것을 머리로 따지는 앎보다 더 근본이라고 보았어요.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을 떠올려 볼까요.
페달을 어떻게 밟고 균형을 어떻게 잡는지 말로 다 설명할 수는 없어도, 어느 순간 몸이 "아, 이거구나" 하고 알아 버려요.
이렇게 따로 계산하지 않고 곧바로 아는 앎이 있어요.
슝스리(熊十力, 1885년부터 1968년까지 살았어요)가 말한 성지(性智)가 바로 그런 앎에 가까워요.
슝스리는 불교와 유학을 아울러 현대 신유가의 기초를 놓은 스승인데, 그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다가 이 성지를 이야기했어요.
성지의 '성(性)'은 타고난 본성을, '지(智)'는 앎과 지혜를 뜻해요.
즉 성지는 "본성 자체가 지닌 앎"이에요.
슝스리는 이 앎을 참된 본성인 본심(本心)이 움직이는 방식으로 보았어요.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실재와 하나로 이어진 참나가 있고, 그 참나가 세계의 뿌리(본체)를 직관으로 곧바로 자각한다는 거예요.
눈으로 보고 자로 재서 아는 게 아니라, 안에서 저절로 환하게 밝아지는 앎이지요.
슝스리는 사람의 마음을 두 가지로 나눠서 봤어요.
하나는 습심(習心), 곧 살면서 익힌 계산하는 마음이에요.
이 마음은 양지(量智) 또는 이지(理智)라고도 부르는데, 세상을 논리로 따지고 재고 나누어 아는 능력이에요.
시험 문제를 풀고, 물건값을 계산하고,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게 다 양지의 일이에요.
다른 하나가 앞에서 말한 성지예요.
양지가 바깥 사물을 조각조각 나눠서 재는 앎이라면, 성지는 나와 세계가 본래 하나임을 안에서 통째로 아는 앎이에요.
사과를 예로 들어 볼게요.
사과의 무게, 당도, 성분을 표로 정리하는 건 양지의 몫이에요.
그런데 그 사과가 지금 내 손에 살아 있는 실재로 있다는 그 생생함 자체는, 아무리 표를 채워도 다 담기지 않아요.
그 생생함을 곧바로 느끼는 힘이 성지예요.
표로 정리하면 이렇게 달라요.
| 구분 | 양지(量智·理智) | 성지(性智) |
|---|---|---|
| 나오는 곳 | 습심(익힌 마음) | 본심(참된 본성) |
| 아는 방식 | 논리로 재고 나눔 | 직관으로 곧바로 자각 |
| 대상 | 바깥 사물과 현상 | 실재의 뿌리(본체) |
| 비유 | 사과를 재는 저울 | 사과가 있다는 생생함 |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있어요.
슝스리는 양지가 나쁘다고 하지 않았어요.
계산하는 마음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해요.
다만 양지만으로는 세계의 근본에 닿을 수 없고, 그 뿌리를 아는 데는 성지가 있어야 한다고 본 거예요.
슝스리는 원래 난징의 지나내학원(支那內學院)에서 불교 유식학을 깊이 공부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공부할수록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어요.
세계의 근본을 오직 머리로 따지고 분석하기만 하면, 정작 그 근본과 내가 하나로 살아 있는 생생함은 놓쳐 버린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세계의 뿌리를 아는 길이 바깥에서 재는 데 있지 않고, 내 안의 참된 본성이 스스로를 밝히는 데 있다고 보았어요.
성지는 남에게 배워서 얻는 지식이 아니라, 원래 내 안에 있던 밝음을 도로 켜는 일에 가까워요.
캄캄한 방에 없던 빛을 밖에서 들여오는 게 아니라, 방 안에 이미 있던 등을 켜는 셈이지요.
슝스리는 학문하는 자세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어요.
"凡有志于根本学术者,当有孤往精神(무릇 근본 학문에 뜻을 둔 자는 마땅히 홀로 나아가는 정신을 지녀야 한다)."
근본을 아는 일은 남이 대신 해 줄 수 없고, 결국 내 안의 성지를 스스로 밝히며 홀로 걸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어요.
성지 이야기는 백 년 전 옛말 같지만, 지금 우리 삶과 가깝게 닿아 있어요.
우리는 정보를 검색하고 데이터를 재는 데는 무척 익숙해요.
이게 다 양지의 능력이에요.
그런데 아무리 자료를 모아도, "나는 지금 살아 있다", "이 순간이 소중하다" 같은 앎은 계산으로 나오지 않아요.
그건 안에서 곧바로 느껴지는 앎, 곧 성지에 가까워요.
슝스리가 말하고 싶었던 건, 재고 따지는 앎과 곧바로 자각하는 앎이 둘 다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이에요.
계산에만 기대다 보면 정작 나와 세계가 살아 있다는 가장 생생한 감각을 잊기 쉬워요.
성지는 그 잊기 쉬운 감각을 다시 일깨우라는 오래된 권유이기도 해요.
성지(性智)는 우리 본성 자체가 지닌 앎으로, 논리로 재는 대신 실재를 곧바로 자각하는 지혜예요.
슝스리는 마음을 계산하는 양지(量智)와 직관하는 성지로 나누고, 세계의 뿌리에 닿으려면 성지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어요.
양지가 사과를 재는 저울이라면 성지는 사과가 지금 있다는 생생함을 아는 힘이고, 그 힘은 밖에서 얻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밝음을 도로 켜는 일이에요.
이 한 가지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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