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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신유식론(新唯識論)』은 불교 유식학의 종자설(種子說)을 비판하면서, 그 통찰을 빌려 세계의 뿌리와 세계의 모습이 둘로 나뉘지 않는 유학 형이상학을 새로 세운 책이에요. 불교를 이어 설명한 해설서가 아니라, 불교를 딛고 유학으로 건너가는 비판서라는 점이 핵심이에요.
한 학자가 몇 년을 매달려 겨우 완성한 자기 원고를 스스로 없앤다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슝스리(熊十力, 1885~1968)가 딱 그랬어요.
그는 난징의 지나내학원(支那內學院)에서 어우양징우(歐陽竟無) 아래 불교 유식학을 배웠고, 그 공부를 담은 초고 『유식학개론(唯識學概論)』을 쓰고 있었어요.
이 원고 덕분에 베이징대에 초빙되기까지 했죠.
그런데 베이징대에 자리 잡은 뒤, 슝스리는 아끼던 제자 량수밍(梁漱溟)이 아까워하는데도 이 원고를 파기해요.
그리고 완전히 다른 책을 새로 써요.
그게 1932년에 나온 고전 한문판 『신유식론(新唯識論)』이고, 1944년에는 이를 아예 다시 쓴 백화문(구어체 중국어)판을 내요.
배운 것을 정리한 게 아니라, 배운 것을 뒤집는 책이었던 거예요.
제목을 한 글자씩 뜯어볼게요.
'유식(唯識)'은 인도 불교에서 온 말로 '오직 식(識), 곧 마음·의식만이 있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딱딱한 바깥세상이라 여기는 것도 사실은 마음이 지어낸 모습이라고 보는 거죠.
바수반두·아상가 같은 4세기 인도 스님들이 세우고, 뒷날 현장(玄奘) 스님이 중국으로 들여온 오래된 학문이에요.
거기에 슝스리는 '새로울 신(新)'을 붙였어요.
옛 유식학을 그대로 잇겠다는 게 아니라, 새로 다시 쓰겠다는 선언이었어요.
같은 재료를 쓰되 전혀 다른 요리를 내놓겠다는 식당 간판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 책을 '불교 유식학 교과서'로 오해하면 안 돼요.
오히려 유식학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책이니까요.
슝스리가 콕 집어 문제 삼은 건 '종자설(種子說)'이었어요.
옛 유식학은 이렇게 설명해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는 창고가 있고, 그 안에 수많은 종자(種子, 씨앗)가 저장돼 있어요.
이 씨앗들이 마치 냄새가 옷에 배듯 '훈습(熏習)'하면서 온갖 마음의 일과 물질의 모습을 하나하나 만들어낸다는 거예요.
슝스리가 보기에 이건 문제였어요.
씨앗 하나하나가 저마다 따로 노는 원인 노릇을 하면, 세계의 근본과 세계의 겉모습이 서로 다른 두 조각으로 갈라져 버려요.
창고에 부품을 잔뜩 쟁여 두고 조립품과 부품을 딴 물건 취급하는 셈이죠.
그는 인도 불교가 이렇게 근본과 현상을 끝내 이어지지 않는 두 세계로 다룬다고 아쉬워했어요.
뿌리와 잎은 결코 남남일 수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슝스리는 방향을 유학으로 틀어요.
그는 불교를 '날마다 줄어드는(日損)' 학문, 곧 인간 본성의 소극적인 면만 강조해 삶의 적극적 지침을 못 주는 가르침으로 봤어요.
반대로 유학은 사람 안의 선한 뿌리를 '날마다 새로워지며(日新)' 넓혀 간다고 여겼죠.
그래서 근본과 현상이 나뉘지 않는다는 중국 전통의 체용론(體用論)을 유학 쪽으로 끌어와 자기 형이상학의 기둥으로 삼아요.
이 기둥이 바로 '체용불이(體用不二)', 근본과 작용이 둘이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여기서는 자세히 풀지 않을게요.
다만 『신유식론』의 목적이 유식학 종자설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근본·현상이 하나인 유학의 세계상을 세우는 데 있었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요.
유식학의 날카로운 도구는 빌리되, 도착지는 공자의 길이었던 거예요.
이 도발적인 책이 조용히 넘어갔을 리 없어요.
불교 진영에서는 곧바로 반발했고, 슝스리의 주장을 깨부수겠다는 뜻의 비판서(『파신유식론破新唯識論』류)까지 나왔어요.
그러자 슝스리는 그 비판을 다시 되받아치는 『파파신유식론(破破新唯識論)』을 써요.
'깨뜨림을 깨뜨린다'는 제목부터가 그가 얼마나 물러설 뜻이 없었는지 보여줘요.
인순법사(印順法師)의 「평신유식론자서(評新唯識論自序)」처럼, 불교 쪽 반론은 이어졌어요.
슝스리는 뒷날에도 손을 놓지 않았어요.
1958년부터 1959년 사이에 낸 두 책이 함께 『신유식론』의 개정판을 이루거든요.
한 권으로 끝난 완성품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고치고 다투며 다듬어 간 살아 있는 저작이었던 셈이에요.
『신유식론』은 슝스리가 배운 유식학을 그대로 옮긴 책이 아니라, 그 종자설을 비판하며 유학으로 건너간 책이에요.
세 가지만 붙잡으면 돼요.
첫째, 그는 자기 초고를 파기하고 1932년과 1944년에 걸쳐 이 책을 새로 썼어요.
둘째, 씨앗들이 세계를 만든다는 종자설이 근본과 현상을 둘로 갈라놓는다고 봐서 이를 물리쳤어요.
셋째, 그 자리에 근본과 작용이 하나인 유학의 세계상을 세웠고, 불교계의 반박에는 『파파신유식론』으로 맞섰어요.
그래서 이 책은 '새로운 불교 해설서'가 아니라 '불교를 딛고 선 유학의 선언'으로 읽어야 제대로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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