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체용불이(體用不二)는 세상을 있게 하는 근본인 '본체(體)'와 그것이 드러나 움직이는 '작용(用)'이 따로 떨어진 두 물건이 아니라 한 몸이라는 뜻이에요. 바닷물과 파도가 하나이듯, 본체는 작용을 떠나 어디에 따로 숨어 있지 않아요.
바다를 떠올려 보세요.
파도가 쉴 새 없이 일었다 사라져요.
그런데 파도를 싹 걷어내면 그 밑에 '진짜 바다'가 따로 남아 있을까요?
아니에요.
파도가 곧 바닷물이 움직이는 모습이고, 바닷물은 파도를 통해서만 자기 모습을 보여줘요.
둘은 떼어놓을 수가 없어요.
슝스리(熊十力, 1885년부터 1968년까지)는 현대 신유가(新儒家)의 문을 연 중국 철학자예요.
그가 평생 붙든 한 문장이 바로 체용불이(體用不二), 곧 '본체와 작용은 둘이 아니다'였어요.
여기서 체(體)는 만물을 있게 하는 근본, 용(用)은 그 근본이 드러나 움직이는 온갖 현상이에요.
우리는 보통 이 둘을 나눠서 생각하기 쉬워요.
'진짜 알맹이'가 어딘가 따로 있고, 눈앞의 세상은 그 껍데기라는 식으로요.
슝스리는 이걸 뒤집어요.
본체는 작용 뒤에 숨은 다른 물건이 아니라, 작용 그 자체로 살아서 흐르고 있다는 거예요.
바닷물과 파도처럼요.
슝스리는 젊은 시절 난징의 지나내학원(支那內學院)에서 불교 유식학을 배웠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마음에 걸리는 게 생겼어요.
인도 불교(유식학·중관학)에서는 본체와 현상이 끝내 서로 통하지 못하는 '단절된 두 세계'처럼 다뤄지는 것 같았거든요.
진짜 세계는 저 너머에 있고,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헛것에 가깝다는 느낌이었죠.
슝스리는 여기에 회의를 품었어요.
그럼 지금 내가 살아 움직이는 이 세상은 대체 뭐냐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본체와 현상을 나누지 않는 중국 전통의 체용론(體用論)을 끌어와 유학의 형이상학 원리로 삼았어요.
본체가 저 멀리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이 살아 있는 세상 속에서 쉬지 않고 자기를 펼치고 있다고 본 거예요.
세상이 껍데기가 아니라, 세상이 곧 본체가 일하는 현장인 셈이죠.
슝스리는 '둘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세 걸음에 걸쳐 밟아 나가요.
순서대로 보면 이래요.
| 단계 | 원어 | 쉬운 풀이 |
|---|---|---|
| 1 | 차전(遮詮) | 현상이 그 자체로 딱딱한 실재라는 생각을 부정(空)해서, 오히려 본체가 참되다는 걸 긍정해요 |
| 2 | 대용류행(大用流行) | 본체가 스스로 현상으로 직접 흘러나와 펼쳐진다는 걸 깨달아요 |
| 3 | 즉용현체(卽用顯體) | 그 작용에 곧바로 나아가 그 안에서 본체를 드러내 봐요 |
첫걸음인 차전(遮詮)은 '아니라고 말해서 밝히는' 부정법이에요.
눈앞의 파도가 영원히 굳어 있는 딱딱한 덩어리라고 착각하는 마음을 먼저 지워요.
그래야 그 밑에 흐르는 바닷물, 곧 본체가 참되다는 게 드러나거든요.
둘째 걸음에서는 그 본체가 가만히 멈춰 있지 않다는 걸 봐요.
본체는 스스로 움직여 파도를 일으켜요.
이 끊임없는 펼쳐짐을 대용류행(大用流行)이라고 불러요.
세 걸음의 결론이 즉용현체(卽用顯體)예요.
'작용에 나아가(卽用) 본체를 드러낸다(顯體)'는 뜻이죠.
본체를 보겠다고 세상 밖으로 나가면 안 돼요.
파도를 떠나 바닷물을 못 만나듯, 작용을 떠난 본체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슝스리에게는 지금 이 순간 움직이는 세상 전부가 본체를 만나는 자리예요.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마음이 오가는 이 모든 작용 속에 이미 본체가 흐르고 있어요.
이 점이 그를 불교와 갈라서게 했어요.
그는 불교를 삶에서 자꾸 덜어내는 '날마다 줄어드는' 길로 보았고, 유학은 본래의 선한 뿌리를 '날마다 새로워지며' 키워 가는 길로 보았거든요.
본체가 세상 안에 살아 있으니, 세상을 등질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자기를 밝혀 가야 한다는 거예요.
체용불이는 그저 어려운 형이상학이 아니라, 이 세상을 긍정하고 살아가라는 권유이기도 했던 셈이에요.
체용불이(體用不二)는 근본인 본체(體)와 그 드러남인 작용(用)이 둘이 아니라 한 몸이라는 슝스리 철학의 핵심이에요.
바닷물과 파도처럼, 본체는 작용을 떠나 따로 숨어 있지 않아요.
그는 본체와 현상을 갈라놓는 인도 불교에 회의를 품고 중국 전통 체용론을 유학으로 끌어왔어요.
그리고 현상을 헛것으로 부정하는 데서 출발해(차전), 본체가 스스로 펼쳐짐을 깨닫고(대용류행), 마침내 그 작용 속에서 본체를 만나는(즉용현체) 세 걸음으로 이 생각을 세웠어요.
기억할 한 가지는 이거예요.
진짜는 저 너머가 아니라, 지금 움직이는 이 세상 안에 있어요.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