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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천부인권(天賦人権)은 사람의 권리가 하늘, 곧 자연에서 태어날 때 함께 주어진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신분이나 가문이 사람의 위아래를 정할 수 없고,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똑같은 자격을 지닌다는 뜻이에요.
일본 최고액권인 1만 엔짜리 지폐 얼굴이 바로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예요. 일본 근대화를 이끈 계몽 사상가인데, 그가 퍼뜨린 핵심 생각 하나가 '천부인권(天賦人権)'이에요.
말을 한 글자씩 뜯어볼게요. 天賦(천부)는 '하늘이 준다', 人権(인권)은 '사람의 권리'예요. 붙이면 "사람의 권리는 하늘이 태어날 때 함께 쥐여 준 것"이라는 뜻이 돼요. 임금이 내려 주는 것도, 부모의 신분에서 물려받는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놀이터를 떠올려 보세요. 먼저 왔다고, 부잣집 아이라고 미끄럼틀을 더 탈 권리가 생기지는 않지요. 태어나면서 누구나 똑같이 들고 있는 입장권 같은 것, 그게 천부인권이에요.
후쿠자와가 이 생각에 목을 맨 데에는 아주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요. 그는 나카쓰번의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 후쿠자와 하쿠스케는 학문에 밝은 유학자였지만 신분이 낮아 뜻을 펴지 못하고, 오사카에서 번의 회계와 창고 일만 하다 세상을 떠났어요. 후쿠자와가 한두 살 무렵이었지요.
능력이 아니라 태어난 자리 때문에 아버지가 눌려 살다 갔다는 것, 그는 이걸 평생 잊지 못했어요. 훗날 그는 신분제와 문벌제도를 두고 '부모의 원수(かたき·가타키)'였다고 회고했어요. '가타키'는 '원수'라는 뜻이에요. 마치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미워하듯 신분질서를 증오했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에게 천부인권은 멋진 이론이 아니라, 억울하게 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는 열쇠였던 셈이에요.
후쿠자와의 생각을 가장 널리 알린 문장이 있어요.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예요. 그의 대표작 《학문의 권장(学問のすゝめ)》 첫머리에 나오는 것으로 전해지고, 유럽과 미국에까지 소개된 명문장이 됐어요.
한 가지 정직하게 짚을게요. 이 문장은 지금 여러 나라 번역으로만 널리 알려져 있고, 원래 일본어 원문이 정확히 어떤 문장이었는지는 제가 확인한 자료만으로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려워요. 그러니 뜻만 또렷이 기억하면 좋겠어요. 하늘의 눈으로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원래 높낮이가 없다는 것, 이게 천부인권을 한 줄로 압축한 말이에요.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풀고 갈게요. "모두 평등하다"는 말은 "모두 똑같아진다"는 말이 아니에요. 후쿠자와도 사람마다 처지가 갈린다는 걸 알았어요. 다만 그 차이가 타고난 신분에서 오는 게 아니라, 배움의 있고 없음에서 온다고 봤어요.
| 무엇이 사람을 가르나 | 후쿠자와의 답 |
|---|---|
| 타고난 신분·가문 | 아니다 (하늘이 정한 게 아님) |
| 배우고 익힌 것의 차이 | 그렇다 |
출발선은 모두 같지만, 스스로 배워서 자기 삶을 세워야 한다는 거예요. 태어날 때 받은 똑같은 입장권을 어떻게 쓰느냐는 각자의 몫이라는 이야기지요. 배움을 통한 자립이라는 쪽 이야기는 그의 다른 사상과 이어지니, 여기서는 '평등은 출발선의 문제'라는 점만 붙잡아 두면 충분해요.
지금은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가 너무 당연해서 새삼스럽지 않아요. 하지만 무사와 평민이 태어나면서 신분으로 나뉘던 시대에, 그 벽을 하늘의 이름으로 허물자고 외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요.
한편으로 후쿠자와를 '민주주의의 상징'으로만 보는 건 정확하지 않아요. 그는 뒷날 국수주의 여론을 이끌기도 했고, 여성의 참정권이나 집 밖 사회활동에는 선을 그었어요. 사람의 평등을 외친 사람도 자기 시대의 한계 안에 있었다는 것, 이걸 함께 기억하면 인물을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어요.
천부인권(天賦人権)은 '사람의 권리는 하늘이 태어날 때 함께 준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신분이나 가문이 사람의 위아래를 정할 수 없어요. 하급 무사 집안에서 신분에 눌린 아버지를 본 후쿠자와는 이 생각을 열쇠 삼아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고 외쳤어요. 평등은 모두가 똑같아진다는 뜻이 아니라 출발선이 같다는 뜻이고, 그 다음은 배움의 몫이라는 것까지가 그의 결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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