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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실학(実学)은 일상에 바로 쓰이는 배움을 뜻해요. 어려운 옛글을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읽기·쓰기·셈·과학처럼 살아가는 데 도움 되는 지식이고,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런 배움이 있느냐 없느냐가 사람의 처지를 가른다고 봤어요.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의 대표작 《학문의 권장(学問のすゝめ)》은 이렇게 시작해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위아래가 정해진 게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왜 현실에는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대접받는 사람과 무시당하는 사람이 갈릴까요?
후쿠자와는 그 차이가 바로 '배움'에서 온다고 답했어요.
그리고 그가 말한 배움이 곧 실학(実学)이에요.
실학은 글자 그대로 '실제로 쓸모 있는 학문'이에요.
요리에 비유하면 이래요.
요리책 문장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통째로 외우는 사람이 있고, 실제로 칼을 잡고 밥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 있잖아요.
후쿠자와가 원한 건 두 번째 사람이었어요.
아무리 근사한 옛글을 줄줄 외워도 오늘 살아가는 데 도움이 안 되면 그건 진짜 배움이 아니라고 본 거죠.
그의 삶을 알면 이 고집이 이해돼요.
그는 나카쓰번의 가난한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학문에 밝은 사람이었지만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뜻을 펴지 못하고 창고·회계 일만 하다 세상을 떠났어요.
후쿠자와는 이런 신분제와 문벌 제도를 두고 훗날 '부모의 원수(かたき·가타키)'였다고까지 회고했어요.
태어난 집안이 사람의 앞길을 다 정해 버리는 세상이 그에게는 원수처럼 미웠던 거예요.
그런 그에게 답이 되어 준 것이 실학이었어요.
집안은 못 바꿔도 배움은 스스로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는 네덜란드학(난학)을 배우고, 1860년 배를 타고 미국을 다녀오고, 1862년에는 통역관으로 유럽 여러 나라를 약 1년간 돌며 병원·은행·우편·의회 제도를 꼼꼼히 적어 왔어요.
이 여행에서 그는 확신했어요.
서양이 앞선 건 대단한 정신이 따로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같이 쓸모 있는 지식으로 무장했기 때문이라고요.
그럼 실학은 무엇을 배우는 공부였을까요?
후쿠자와가 든 것은 아주 실용적인 목록이에요.
읽고 쓰기, 셈(계산), 지리, 물리와 과학, 경제, 그리고 장사와 살림에 필요한 지식이었어요.
지금 우리에겐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 조선이나 일본의 '학문'이 주로 한문 고전을 외우고 풀이하는 일이었다는 걸 떠올리면 굉장히 파격적인 방향 전환이었어요.
그는 말로만 그친 게 아니라 직접 실학의 재료를 날라 왔어요.
서양의 실제 모습을 소개한 《서양사정(西洋事情)》은 1866년부터 나와 20만 부가 훌쩍 넘게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한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1872년판은 22만 부가 팔려, 일본인 160명 가운데 한 명꼴로 읽은 셈이었대요.
또 그는 회사 살림을 정확히 기록하는 복식부기(複式簿記)와 근대 보험 제도를 일본에 처음 소개한 사람으로 꼽혀요.
장부 적는 법, 위험에 대비해 돈을 모으는 법.
이렇게 손에 잡히는 지식이 바로 그가 말한 실학이었어요.
실학이 뭔지 더 또렷하게 보려면, 그전까지의 공부와 나란히 놓고 보면 좋아요.
| 구분 | 그전까지의 공부 | 후쿠자와의 실학 |
|---|---|---|
| 목표 | 옛글 뜻풀이와 글재주 | 실생활에서 바로 써먹기 |
| 내용 | 한문 고전 암송 | 읽기·쓰기·셈·지리·과학·부기 |
| 쓸모 | 벼슬과 교양 쌓기 | 먹고살기와 나라 세우기 |
핵심 차이는 '누구를 위한 배움이냐'예요.
옛 학문이 소수의 벼슬아치나 교양인을 위한 것이었다면, 후쿠자와의 실학은 평범한 사람 누구나 스스로 서기 위한 것이었어요.
신분이 아니라 배움으로 자기 삶을 세우자는 생각이죠.
다만 그가 모두에게 똑같이 문을 열었던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그는 부부의 평등이나 여성의 실용 교육은 주장했지만, 정작 자기 다섯 딸은 아들들과 달리 서구식 교육을 못 받고 전통 방식으로 길러졌어요.
이상과 현실이 늘 딱 맞지는 않았던 셈이에요.
실학의 정신은 지금도 낯설지 않아요.
시험을 위한 암기냐, 실제로 문제를 풀 줄 아는 힘이냐.
우리도 늘 이 사이에서 고민하잖아요.
후쿠자와는 100년도 더 전에 '배움은 살아가는 데 쓰여야 한다'고 못 박은 사람이에요.
그렇다고 그를 단순히 '좋은 스승'으로만 기억하기는 어려워요.
그는 실학과 문명을 앞세우면서도, 근대화에 뒤처진 이웃 나라들을 낮잡아 보는 태도로 나아갔거든요.
배움을 힘으로 여겼기에, 그 힘이 남을 누르는 논리로 흘러가기도 했어요.
그러니 실학이라는 좋은 씨앗도 어디에 심느냐에 따라 열매가 달라진다는 것까지 함께 보는 편이 정확해요.
실학(実学)은 옛글 암송이 아니라 일상에 바로 쓰이는 배움이에요.
후쿠자와 유키치는 신분이 사람의 처지를 정하던 세상에서, 배움만큼은 누구나 스스로 얻어 자기 삶을 세울 수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그는 읽기·쓰기·셈·과학·부기 같은 쓸모 있는 지식을 실학이라 부르며 책과 학교로 퍼뜨렸어요.
오늘 우리가 '이 공부가 실제로 쓸모 있나'를 물을 때, 우리는 이미 그가 던진 질문을 이어받고 있는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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