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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탈아론(脱亜論)은 일본이 근대화에 뒤처진 이웃 청나라·조선과 정신적으로 손을 끊고, 서구 열강 편에 서서 그 이웃마저 서구가 하듯 대하자는 주장이에요. 뒤처진 이웃과 한 묶음으로 취급되면 애써 근대화한 일본까지 함께 무시당한다는 조바심에서 나왔어요.
학교에서 반을 새로 배정받았다고 생각해 볼까요.
공부를 손 놓은 짝꿍과 계속 한 조로 묶이면, 나는 열심히 해도 선생님 눈엔 '못하는 조'로 뭉뚱그려지기 쉽지요.
그럴 때 '나는 이 조에서 빠져서 잘하는 조로 옮길래' 하고 마음을 정하는 것, 딱 그 심정이 탈아론이에요.
'탈아입구(脱亜入欧)'라는 네 글자로도 불려요.
'탈아(脱亜)'는 아시아에서 벗어난다, '입구(入欧)'는 서양(구라파)으로 들어간다는 뜻이에요.
후쿠자와 유키치는 1885년 3월 16일 자신이 창간한 신문 《지지신보(時事新報)》에 이 '탈아론'을 실었어요.
요지는 하나예요.
일본은 이제 아시아라는 낡은 무리에서 마음을 떼고, 서구 열강과 같은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이지요.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는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나, 게이오기주쿠(오늘날 게이오대학의 전신)를 세운 계몽 사상가예요.
1984년부터 2024년까지 일본 최고액권인 1만 엔권 지폐의 얼굴이었을 만큼 근대 일본의 상징으로 꼽혀요.
젊은 시절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를 직접 돌며 병원·은행·의회 제도까지 꼼꼼히 기록한 그는, 일본이 서양의 기술만이 아니라 사회·정치 제도까지 통째로 배워야 한다고 확신하게 됐어요.
이 확신이 훗날 '탈아론'의 밑거름이 돼요.
흥미롭게도 후쿠자와가 처음부터 아시아를 등지자고 한 건 아니에요.
한때는 아시아가 힘을 합쳐 서구에 맞서자는 '아시아 연대론(흥아론)'에 가까운 태도도 보였거든요.
그런데 이웃 나라의 근대화가 잇따라 좌절되는 걸 보며 생각이 돌아서요.
결정적 장면으로 자주 꼽히는 사건이 1884년 조선에서 일어난 갑신정변이에요.
개화를 꿈꾼 이들의 시도가 사흘 만에 무너지자, 후쿠자와는 '이웃과 함께 기다려선 안 되겠다'는 쪽으로 기울어요.
그는 근대화에 실패한 청과 조선을 '나쁜 친구(惡友)'라 부르며, 나쁜 친구와 어울리면 나까지 같은 사람 취급을 받으니 정신적으로 결별하자고 했어요.
다만 이 전환의 시점은 학자마다 다르게 봐요.
갑신정변 실패가 직접 계기였다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이미 1875년 《문명론의 개략(文明論之概略)》 단계부터 '일본의 국가 독립이 먼저'라는 생각이 싹텄다고 보는 해석도 있어요.
여기서 조심할 대목이 있어요.
'탈아론' 사설은 지은이 이름 없이 실렸고, 후쿠자와 본인이 직접 쓴 게 아닐 수 있다는 견해가 지금도 남아 있어요.
저자 논쟁이 붙은 문헌인 셈이지요.
또 청일전쟁 무렵 그의 말로 널리 인용되는 험한 인종차별 표현들도, 사후 전집을 엮은 편찬자 이시카와 간메이(石河幹明)가 지어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재평가(히라야마 요)가 있어요.
아직 논쟁 중인 주장이라, '이 표현은 후쿠자와의 것'이라고 단정하긴 일러요.
반면 조선을 향한 그의 여러 글은 결이 엇갈려서 눈길을 끌어요.
갑신정변 뒤 관련자의 부모·처자·어린 손자까지 처형·연좌된 데는 〈朝鮮独立党の処刑〉(조선독립당의 처형)에서 '용서할 수 없는 야만'이라 격하게 비판했지만, 같은 해 8월엔 〈朝鮮人民のために其国の滅亡を賀す〉(조선 인민을 위하여 그 나라의 멸망을 축하한다)라는 제목의 사설까지 실었거든요.
탈아론은 이후 일본이 아시아를 내려다보는 논리로 이어졌어요.
후쿠자와는 청일전쟁(1894~1895)을 '문명과 야만의 전쟁'이라 부르며 적극 지지했지요.
이웃을 '벗어나야 할 나쁜 친구'로 정한 시선이, 결국 그들을 힘으로 대하는 태도로 자란 셈이에요.
그래서 우리에게 탈아론은 마냥 편히 읽히는 글이 아니에요.
그를 지폐 얼굴이라는 이유만으로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뭉뚱그리는 것도 정확하지 않아요.
애초에 일본 정부는 자유민권운동에 공헌한 이타가키 다이스케를 지폐 인물로 삼으려다 방향을 틀었고, 정작 채택된 후쿠자와는 그 자유민권운동에 비판적이었거든요.
한 사람 안에 계몽과 편견이 함께 들어 있었다는 걸 잊지 않는 편이 좋아요.
탈아론은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편에 서자(脱亜入欧)'는 1885년의 주장이에요.
뒤처진 이웃과 한 묶음으로 취급될까 봐 마음을 끊자는 조바심에서 나왔고, 갑신정변 실패가 계기라는 해석과 이미 1875년부터 싹텄다는 해석이 함께 있어요.
이 사설을 후쿠자와가 직접 썼는지는 논쟁이 남아 있으니, '탈아론=후쿠자와의 확정된 속내'라고 못 박기보다 그 시대 일본이 이웃을 어떻게 바라보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문헌으로 기억해 두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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