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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후쿠자와 유키치가 1875년에 쓴 《문명론의 개략(文明論之概略)》은, 한 나라가 문명으로 나아가려면 정치권력 하나만 커져서는 안 되고 학문·경제·사람의 마음 같은 여러 힘이 서로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본 생각이에요. 그는 서양이 이 균형을 이뤘고 일본은 권력에 치우쳐 불균형했다고 진단했어요.
달리기 시합에서 다리 힘만 세고 심장이 약하면 금방 쓰러지죠.
반대로 몸 곳곳이 고르게 튼튼하면 멀리까지 잘 달려요.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은 나라를 이 '몸'에 빗대어 본 이야기예요.
그는 한 사회가 문명으로 나아가는 힘이 어느 한 곳에만 몰리면 안 된다고 봤어요.
정치의 힘, 학문의 힘, 장사와 돈이 도는 힘,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과 지혜가 골고루 자라야 진짜 문명이라는 거죠.
그래서 문명론의 핵심 낱말은 딱 하나, '균형'이에요.
문명은 어떤 신기한 기계나 멋진 건물 하나가 아니라, 여러 힘이 서로 받쳐 주는 상태라는 뜻이에요.
후쿠자와 유키치(1835년부터 1901년까지)는 신분 낮은 무사 집안에서 태어나 네덜란드학과 영어를 공부한 일본의 계몽 사상가예요.
젊은 시절 미국과 유럽을 직접 다녀오면서 병원, 은행, 우편, 의회 같은 제도를 꼼꼼히 적었어요.
그때 그는 중요한 걸 깨달았어요.
서양이 강한 이유는 대포나 증기선 같은 물건만이 아니라, 그 물건을 굴러가게 하는 '사회 구조'에 있다는 거였죠.
그래서 1875년에 《문명론의 개략》을 써서, 일본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정리했어요.
기계만 사 오지 말고 그 밑에 깔린 문명의 짜임새를 배우자는 이야기였어요.
후쿠자와는 프랑스 역사가 프랑수아 기조 같은 유럽 학자들의 생각을 빌려 왔어요.
서양 문명은 여러 요소가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룬 점이 특징이라는 거였죠.
반대로 일본은 어땠을까요.
그는 일본의 발전이 정치권력의 지배에 눌려 '불균형'했다고 봤어요.
힘센 사람이 위에서 다 정하니, 아래에서 학문이나 자유로운 생각이 자랄 자리가 좁았다는 거예요.
한쪽 근육만 키운 몸처럼요.
아래 표처럼 정리하면 이해가 쉬워요.
| 구분 | 후쿠자와가 본 모습 |
|---|---|
| 서양 | 여러 힘이 서로 균형을 이룸 |
| 일본 | 권력 한쪽으로 치우쳐 불균형 |
후쿠자와는 문명을 마치 학년처럼 여러 단계로 나눠서 봤어요.
아직 배울 게 많은 단계가 있고, 더 나아간 단계가 있다는 식이죠.
이건 그가 유럽 역사가들의 '문명 단계론'을 빌려 온 생각이에요.
다만 이 생각에는 그늘도 있어요.
문명에 앞뒤 등수를 매기면, 뒤처졌다고 여겨진 나라를 낮춰 보기 쉬워지거든요.
실제로 후쿠자와의 후기 글에서 그런 태도가 자라났다는 평가가 있어요.
그래서 문명론은 '배우자'는 밝은 면과 '줄 세우자'는 위험한 면을 함께 품고 있었어요.
재미있게도, 균형을 그렇게 강조하던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후쿠자와는 방향을 틀어요.
추상적인 문명을 좇는 것보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독립을 지키는 게 먼저라고 못을 박은 거예요.
즉 문명은 목표 그 자체라기보다, 나라가 살아남기 위한 도구라는 쪽으로 기운 셈이죠.
이 대목은 뒷날 그가 이웃 나라를 어떻게 대했는가와도 이어지지만, 그 이야기는 다른 글의 몫이에요.
여기서는 문명론이 '균형'에서 출발해 '국가 독립 우선'으로 닫혔다는 점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은 문명을 여러 힘의 균형으로 본 생각이에요.
서양은 그 균형을 이뤘고 일본은 권력에 치우쳐 불균형했다고 진단하며, 기계가 아니라 사회의 짜임새를 배우자고 했죠.
문명에 단계를 매기는 생각과, 끝에 가서 국가 독립을 문명보다 앞세운 결론이 함께 들어 있다는 두 얼굴을 기억하면, 이 사상의 밝은 면과 위험한 면을 균형 있게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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