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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간디는 힌두교·이슬람교·기독교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같은 진리(신)를 부른다고 보았어요. 그래서 어느 하나만 옳다고 다투는 대신, 여러 종교를 나란히 존중하려 했지요.
인도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간디는 1948년 1월 30일 저녁, 여러 종교의 기도를 함께 올리는 기도회로 걸어가다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어요.
그의 마지막 길마저 '기도회 가는 길'이었다는 게, 그가 평생 붙든 생각을 잘 보여줘요.
종교 다원주의는 어렵게 들리지만 한 문장이면 돼요.
"산 정상은 하나인데, 올라가는 길은 여럿"이라는 생각이에요.
간디에게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는 서로 다른 등산로였고, 그 끝에서 만나는 정상은 같은 진리(신)였어요.
그래서 어느 길 하나만 진짜라고 우기는 대신, 여러 길을 함께 존중했지요.
간디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어요.
처음엔 "God is Truth", 곧 "신은 진실이다"라고 했다가, 나중에 "Truth is God", "진실이 신이다"로 바꿔 말했어요.
순서만 뒤집힌 것 같지만 뜻은 크게 달라져요.
"신은 진실이다"라고 하면, 먼저 '신'이라는 이름을 믿어야 해요.
그런데 힌두교의 신, 이슬람교의 신, 부르는 이름이 다 다르죠.
"진실이 신이다"로 뒤집으면, 종교 이름이 무엇이든 '진실을 좇는 마음' 그 자체가 신을 향하는 일이 돼요.
다른 종교인이든 심지어 신을 안 믿는 사람이든, 정직하게 진리를 찾는 사람이면 같은 산을 오르는 셈이에요.
이렇게 그는 신앙의 문을 최대한 넓게 열어 두었어요.
다른 종교를 존중한다는 건 그냥 사이좋게 지내자는 예의가 아니었어요.
간디는 이렇게 말했어요.
"진정한 민주주의 정신을 기르고자 한다면 우리는 불관용을 용납할 수 없다. 불관용은 자기 대의에 대한 믿음의 결여를 드러낸다."
쉽게 풀면 이래요.
내 신앙이 정말 튼튼하다면, 옆 사람이 다른 신을 믿어도 흔들리지 않아요.
오히려 "내 것만 옳고 네 것은 틀렸어" 하며 화를 내는 건, 속으로 자기 믿음에 자신이 없다는 신호라는 거예요.
반 친구가 나와 다른 팀을 응원한다고 주먹을 휘두른다면, 그건 우리 팀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불안해서인 것과 비슷하죠.
말로만 그런 게 아니에요.
1947년 8월 15일 인도가 독립했지만, 나라는 힌두교도가 많은 인도와 이슬람교도가 많은 파키스탄으로 쪼개졌어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웃끼리 죽고 죽이는 일이 벌어졌지요.
이때 간디는 독립 축하 잔치에 가지 않았어요.
대신 캘커타에서 단식하며 물레를 돌렸고,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서로 죽이지 말라고 호소했어요.
자기 몸을 굶겨서라도 두 종교의 화해를 빌었던 거예요.
끝내 그를 쏜 사람도 '간디가 이슬람교도에게 너무 무르다'고 여긴 힌두 민족주의자 나투람 고드세였어요.
종교 다원주의는 그에게 목숨을 건 신념이었던 셈이에요.
간디를 '모든 종교를 똑같이 여긴 사람'으로만 보면 조금 어긋나요.
그는 스스로 힌두교도로 살며 평생 힌두교를 옹호했고, 자이나교와 힌두 요가의 다섯 서약—사티아(satya, 진실), 아힘사(ahimsa, 비폭력) 등—을 마음의 뿌리로 삼았어요.
다른 종교를 존중했지만, 자기 종교를 버린 건 아니었죠.
그래서 그의 다원주의는 "다 똑같으니 아무거나"가 아니라, "나는 내 길을 진지하게 걷되, 다른 길을 걷는 사람도 존중한다"에 가까워요.
내 집이 소중하다고 옆집을 부수지 않는 것과 같아요.
간디의 종교 다원주의는 세 가지로 기억하면 돼요.
첫째, 여러 종교는 같은 정상으로 오르는 다른 등산로예요.
둘째, "진실이 신이다"라는 말처럼, 종교의 이름보다 진리를 좇는 마음이 먼저예요.
셋째, 불관용은 오히려 자기 믿음이 약하다는 증거예요.
그는 이 생각을 위해 굶고, 걷고, 끝내 목숨까지 내주었어요.
다른 믿음 앞에서 화가 날 때, 간디라면 "내 믿음이 튼튼한지부터 보라"고 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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