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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람모한 로이는 인도 학생이 산스크리트 옛 경전만 외워서는 세상에 뒤처진다고 봤어요. 그래서 수학이나 자연과학 같은 서양 근대 학문도 함께 배워야 인도가 힘을 되찾는다고 주장했지요. 옛 지혜를 버리자는 게 아니라, 거기에 새 도구를 더하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학교가 오직 수백 년 전에 쓰인 고전만 소리 내어 외우게 하고, 수학이나 과학은 한 시간도 가르치지 않는다고 상상해 볼까요?
답답하겠지요.
200년 전 인도에서 바로 이런 문제를 두고 어른들이 크게 다투었어요.
학교에서 옛 경전을 중심에 둘 것인가, 아니면 서양에서 들어온 근대 학문도 나란히 가르칠 것인가.
이게 '동서양 교육 논쟁'이에요.
이 논쟁의 한복판에 선 사람이 람모한 로이예요.
1772년에 태어나 1833년에 세상을 떠난 인도의 사회개혁가이자 저술가지요.
그는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영어에 능통했고 아랍어·라틴어·그리스어까지 알던 대단한 학자였어요.
동양 공부와 서양 공부를 모두 몸으로 겪은 사람이었기에, 그의 목소리에는 무게가 실렸어요.
로이의 결론은 분명했어요.
인도 학생들도 서양 근대 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로이는 말로만 주장하지 않고 직접 학교를 세웠어요.
1822년에 앵글로-힌두 학교를, 1826년에는 베단타 칼리지를 세웠지요.
여기서 그는 서양식 근대 교육과정에 인도의 유일신 사상을 함께 담으려 했어요.
옛것과 새것을 한 교실에서 만나게 하려 한 셈이에요.
1830년에는 알렉산더 더프 목사가 서양식 학교를 세울 때 장소와 첫 학생들을 내어 주며 돕기도 했어요.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로이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힌두인의 현재 체제는 그들의 정치적 이익을 증진하는 데 잘 맞지 않는다… 최소한 정치적 이익과 사회적 안녕을 위해서라도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
세상은 이미 배와 기계와 새로운 과학으로 움직이는데, 옛 문헌만 반복해서는 인도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킬 힘을 기를 수 없다고 본 거예요.
마치 남들은 자동차를 모는데 우리만 마차 모는 법만 배우고 있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었지요.
여기서 오해하기 쉬워요.
서양 과학을 배우자고 했으니 로이가 인도 전통을 무시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는 산스크리트 경전을 깊이 읽은 학자였고, 1826년에는 최초의 완전한 벵골어 문법서를 펴냈어요.
그래서 '당대 벵골어 산문의 아버지'라는 별명까지 얻었지요.
자기 언어와 옛 지혜를 누구보다 아끼던 사람이었던 거예요.
시인 타고르는 나중에 로이를 이렇게 평했어요.
"그는 결코 서구의 학생이 아니었으며, 그렇기에 서구의 벗이 될 자격이 있었다."
즉 로이는 서양에 끌려다닌 게 아니라, 자기 뿌리를 단단히 딛고 서서 좋은 것을 골라 받아들였다는 뜻이에요.
두 입장을 표로 견주면 이래요.
| 구분 | 옛 경전 중심 쪽 | 로이의 주장 |
|---|---|---|
| 무엇을 가르칠까 | 산스크리트 고전·전통 학문만 | 전통에 서양 근대 학문을 더함 |
| 목표 | 옛 질서를 그대로 잇기 | 인도가 힘과 살림을 되찾기 |
| 전통을 대하는 태도 | 바꾸지 않고 지킴 | 뿌리는 두되 새것을 더함 |
로이의 고민은 지금도 낯설지 않아요.
우리도 옛 고전을 읽어야 할지, 코딩과 과학을 더 배워야 할지 늘 저울질하니까요.
로이의 답은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였어요.
뿌리는 잊지 않으면서, 세상을 살아갈 새 도구도 손에 쥐자는 것이었지요.
배움을 남의 것 베끼기가 아니라 내 삶을 넓히는 일로 본 거예요.
동서양 교육 논쟁은 인도 학교에서 옛 경전만 가르칠지, 서양 근대 학문도 함께 가르칠지를 두고 벌어진 다툼이었어요.
람모한 로이는 서양 과학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직접 학교를 세웠지요.
하지만 그는 전통을 버리자고 한 게 아니라, 자기 언어와 옛 지혜를 지키면서 그 위에 새 학문을 더하려 했어요.
옛것과 새것 중 하나를 고르는 대신 둘을 잇는 길, 그것이 로이가 남긴 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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