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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람모한 로이는 힌두교의 수많은 신상과 복잡한 의례를 걷어내고, 우주를 만들고 지키는 형상 없는 단 하나의 신만 남기자고 했어요. 그 근거를 밖에서 빌려오지 않고 인도 고전 우파니샤드 안에서 찾은 게 핵심이에요.
한 집 거실에 사진 여러 장이 걸려 있다고 해봐요.
할아버지 사진, 부모님 사진, 형제 사진…
그런데 사진 속 사람들은 결국 한 가족이잖아요.
람모한 로이(1772년~1833년)가 힌두교를 본 눈이 딱 이랬어요.
인도 벵골의 학자였던 그는 산스크리트어·페르시아어·영어에 두루 밝았어요.
그가 보기에 힌두교에는 신상과 신의 이름이 아주 많았지만, 그 모든 것 뒤에는 형상 없는 단 하나의 신이 있었어요.
'유일신 신앙 개혁'은 바로 이 하나의 신만 남기자는 운동이에요.
로이는 1804년 페르시아어로 《투흐파트 울 무와히딘(Tuhfat-ul-Muwahhidin)》, 곧 '유일신론자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첫 신학 책을 썼어요.
제목부터 '하나의 신을 믿는 사람'을 향하고 있죠.
여러 신에게 각각 빌던 습관을 접고, 우주의 창조자이자 보존자인 한 분께로 마음을 모으자는 게 그의 출발점이었어요.
로이가 밖에서 새 종교를 수입한 건 아니에요.
오히려 인도 안에서 답을 찾았어요.
힌두교 고전인 베단타와 우파니샤드에 이미 '형상 없는 하나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고 본 거죠.
재밌는 건, 1804년 첫 책을 쓸 때만 해도 그는 아직 우파니샤드를 몰랐다고 자료는 전해요.
이후 이 고전들을 깊이 읽으면서 자기 생각의 뿌리를 인도 고전에서 발견한 셈이에요.
그래서 그는 이 뿌리를 사람들과 나누려 했어요.
1814년 콜카타에 아트미야 사바(Atmiya Sabha), 곧 '벗들의 모임'을 만들어 베단타의 유일신 사상을 전하고, 우상숭배와 굳어진 카스트, 뜻 없는 의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어요.
1815년에는 《베단타 그란타》를 펴내며 어려운 고전을 보통 사람도 읽게 풀어주려 했고요.
남의 옷을 빌려 입는 개혁이 아니라, 집안 다락에 있던 오래된 지혜를 다시 꺼내 닦는 개혁이었던 거예요.
로이가 신상 자체를 미워한 건 아니에요.
그가 문제 삼은 건 '사진 액자를 진짜 사람으로 착각하는' 태도였어요.
유럽인 지인들에게 힌두교를 옹호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superstitious practices which deform the Hindu religion have nothing to do with the pure spirit it dictates!"—힌두교를 일그러뜨리는 미신적 관행들은, 그것이 가리키는 순수한 정신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뜻이에요.
즉 그는 힌두교를 버리자고 한 게 아니라, 본래의 맑은 알맹이는 지키고 겉에 낀 때만 벗기자고 한 거예요.
무엇을 벗기고 무엇을 남겼는지 정리하면 이래요.
| 로이가 걷어내려 한 것 | 로이가 지키려 한 것 |
|---|---|
| 신상 앞의 우상숭배 | 형상 없는 하나의 신 |
| 뜻을 잃은 복잡한 의례 | 마음을 모으는 경배 |
| 굳어진 카스트의 벽 | 누구에게나 열린 신앙 |
형상 없는 하나의 신을 믿으면 예배 방식도 달라져요.
특정 신상 앞, 특정 사원, 특정 절차가 꼭 있어야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이 신앙을 설명하는 한 문장이 있어요.
"We can adore Him at any time and at any place, provided that time and that place are calculated to compose and direct the mind towards Him."—마음을 가라앉혀 그분께 향하게만 할 수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그분을 경배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가 믿은 신은 그저 흐릿한 기운이 아니라, 독자적 인격과 도덕적 속성, 우주의 창조자에 걸맞은 지성을 지닌 분이었어요.
화려한 도구가 필요 없고, 조용히 마음을 모으는 것으로 충분한 신앙이죠.
로이는 종교가 달라져야 한다고 봤고, 그 중심에 이 '하나의 신, 형상 없는 신'을 두었어요.
람모한 로이의 유일신 신앙 개혁은 세 가지로 기억하면 돼요.
첫째, 힌두교의 수많은 신상 뒤에 형상 없는 단 하나의 신을 놓았어요.
둘째, 그 근거를 밖이 아니라 인도 고전 우파니샤드와 베단타에서 찾아, 1804년 《유일신론자에게 주는 선물》과 1814년 아트미야 사바로 실천했어요.
셋째, 우상과 뜻 없는 의례라는 겉때는 벗기되 순수한 정신은 지키려 했고, 예배는 언제 어디서든 마음을 모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봤어요.
신을 여럿에서 하나로 줄인 게 아니라, 원래 하나였던 것을 다시 또렷하게 본 개혁이었던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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