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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경세치용(經世致用)은 '세상을 다스려 실제에 쓸모 있게 한다'는 뜻으로, 학문이 마음속 깨달음에 그치지 않고 백성의 살림·세금·기술 같은 현실 문제를 푸는 데 쓰여야 참되다는 생각이에요. 정약용은 이 태도로 실학을 하나로 모아 정리했습니다.
칼이 아무리 예뻐도 무를 못 썰면 소용없죠.
정약용(1762~1836)이 붙든 생각이 딱 그래요.
아무리 그럴듯한 학문도 실제 삶을 낫게 못 하면 반쪽이라는 거예요.
경세치용(經世致用)을 글자대로 풀면 '세상을 다스려(經世) 실제에 이롭게 쓴다(致用)'는 말이에요.
조선 후기에 이런 태도로 현실 문제를 파고든 학문 흐름을 '실학(實學)'이라 부르고, 정약용은 그 실학을 집대성한 사람으로 꼽혀요.
그는 유배지 강진에서 18년(1801~1818) 동안 방대한 책을 써서, 나라 살림을 어떻게 고칠지 청사진을 남겼습니다.
실학은 정약용이 혼자 뚝딱 만든 게 아니에요.
15세 무렵 그는 성호 이익 선생이 남긴 글을 읽고 크게 감동받아 실학에 몰두하게 됐어요.
훗날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余之大夢,多從星湖私淑中覺來。
(나의 큰 깨달음은 대부분 성호 선생을 사숙하는 가운데서 얻어 온 것이다.)
'사숙(私淑)'은 직접 배우진 못했지만 남긴 글을 스승 삼아 혼자 익힌다는 말이에요.
정약용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자·맹자의 원래 가르침으로 돌아가려 했어요.
자기 학문을 공자의 고향을 흐르는 두 강 이름을 따 '수사학(洙泗學)'이라 불렀죠.
옛 성인의 뜻도 결국 '세상을 잘 다스리는 것'이었다고 본 거예요.
정약용이 보기에 당시 학자들은 방향이 어긋나 있었어요.
그는 이렇게 꼬집습니다.
古學用力在行事,而以行事爲治心;今學用力在養心,以養心至廢事故也。
(옛 학문은 일을 행하는 데 힘써 그 일함으로 마음을 다스렸으나, 오늘날 학문은 마음을 기르는 데만 힘써 오히려 일을 폐하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옛사람은 밭을 갈고 이웃을 도우면서 마음도 다잡았는데, 요즘 학자는 방 안에 앉아 마음만 들여다보다 정작 해야 할 일을 놓쳤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어짊(仁)'조차 마음속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해낸 일이라고 봤어요.
仁者非本心之全德,亦事功之所成耳。
(어짊이란 본래 마음의 온전한 덕만이 아니라, 실제 사업을 통해서도 이루어지는 것일 뿐이다.)
| 구분 | 마음만 닦는 공부 | 정약용의 실학 |
|---|---|---|
| 관심 | 내 마음을 기른다 | 실제 일을 해낸다 |
| 어짊의 자리 | 마음속 상태 | 이룬 일과 성과 |
| 목표 | 개인의 수양 | 백성의 살림 개선 |
말만 그럴듯하면 이것도 공허하겠죠.
그래서 정약용은 손으로 증명했어요.
1792년 수원 화성을 지을 때 도르래 원리를 응용한 거중기(擧重機)를 고안해, 무거운 돌을 적은 힘으로 들어 올려 국고 수만 냥을 아꼈어요.
문헌과 실험을 파고들어 천연두를 막는 종두술을 조선에 들여오려 했고, 민간요법을 정리한 《촌병혹치》도 엮었죠.
토지 문제에도 답을 내놨어요.
그가 구상한 '여전제(閭田制)'는 서른 집 정도가 한 마을(閭)을 이뤄 함께 농사짓고, 추수한 뒤 일한 만큼 나눠 갖자는 방식이었어요.
원칙은 단순합니다.
農者得田,不爲農者不得之。
(농사짓는 자는 밭을 얻고, 농사짓지 않는 자는 밭을 얻지 못한다.)
다만 그가 현대적 의미의 평등 사회를 꿈꾼 건 아니에요.
왕과 신분 질서를 전제로, 굶는 백성을 살릴 점진적 개혁을 그린 거예요.
한 학자는 정약용을 '도덕적 실용주의자'라고 불렀어요.
문제를 보면 '어떻게 풀까'를 먼저 묻되, 도덕적 가치를 늘 맨 앞에 뒀다는 뜻이에요.
이게 경세치용의 핵심이에요.
잔꾀로 문제만 해결하는 게 아니라, 백성을 위한다는 마음을 놓지 않으면서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것.
숙제를 잘하는 법만 외우는 사람과, 실제로 방을 치우고 동생을 돕는 사람의 차이라고 해도 좋아요.
정약용은 후자의 편에 서서, 지식은 삶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평생 믿었습니다.
경세치용은 학문이 마음속 깨달음에 머물지 말고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 살림에 실제로 쓰여야 한다는 태도예요.
정약용은 성호 이익에게 감화받아 실학을 하나로 모으고, 옛 학문처럼 '일을 행하는' 공부로 돌아가자고 했어요.
거중기·종두술·여전제처럼 손에 잡히는 결과로 그 믿음을 증명했고요.
지식이 삶에 닿아야 비로소 쓸모를 낸다는 게, 정약용이 강진에서 18년을 보내며 확인한 사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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