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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국학은 유교와 불교라는 중국식 안경을 벗고 고사기 같은 가장 오래된 일본 문헌을 있는 그대로 읽어, 일본에 원래 있던 마음과 신들의 길(신토)을 되찾으려던 학문이에요. 노리나가에게 신토는 그 국학이 다다르려는 목적지였어요.
오래된 집을 새로 꾸민다고 해볼게요.
벽에 여러 겹 발라 놓은 벽지를 한 장씩 뜯다 보면, 맨 아래에서 이 집이 처음 지어졌을 때의 나뭇결이 나오죠.
모토오리 노리나가(1730~1801)가 한 일이 바로 이거예요.
그는 마쓰사카에서 40년간 아이들을 보던 소아과 의사이자, 일본 4대 국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사람이에요.
노리나가가 살던 시대에는 일본의 옛 이야기와 시를 읽을 때도 유교와 불교, 곧 중국에서 건너온 학문의 틀로 해석하는 게 당연했어요.
국학(國學)은 그렇게 덧발라진 '벽지'를 걷어내고, 일본에 본래 있던 생각과 감정을 옛 문헌에서 직접 찾아내려던 학문이에요.
노리나가는 게이추의 고전 연구와 오규 소라이의 문헌 다루는 법에서 자극을 받아 이 길로 들어섰어요.
국학이 벽지를 뜯는 '방법'이라면, 신토(神道)는 그 밑에서 드러나는 '나뭇결'에 해당해요.
신토는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진 일본의 신들과 그 신들의 길을 뜻하는데, 노리나가는 그 원래 모습이 고사기(古事記)에 담겨 있다고 봤어요.
그는 고사기를 지금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일본 문헌이라고 주장했거든요.
그래서 노리나가에게 국학과 신토는 한 몸이에요.
옛 문헌을 꼼꼼히 읽어 신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되살리는 일이 곧 신토를 되찾는 일이었죠.
이 생각을 짧게 정리한 글이 1771년에 발표한 나오비노미타마(直毘靈)예요.
이 글은 옛날로 돌아가자는 복고(復古) 사상의 총론 격이라, 훗날 그의 대표작인 고사기전 제1권 안에 함께 실렸어요.
그냥 옛것이 좋아서가 아니었어요.
그는 사람에게 원래부터 있는 꾸밈없는 마음, 곧 진심(眞心, 마고코로)이 옛 일본 문헌에 가장 솔직하게 담겨 있다고 믿었어요.
1763년에 쓴 이소노카미노사사메고토(石上私淑言)에서 그는 일본의 노래인 와카(和歌)가 억지로 지어낸 감정이 아니라 저절로 우러난 감정을 길러 일본인의 참된 마음을 만든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이것을 '인위적으로 영리한 마음'을 담은 중국 시와 나란히 놓고 견주었죠.
이걸 확인하려면 옛 글을 정확히 읽어야 했어요.
노리나가는 고증하듯 한 글자 한 글자를 따졌고, 그 과정에서 조사와 조동사 같은 일본어 문법 전통을 세우는 데도 크게 이바지했어요.
흥미롭게도 그는 뒷사람 이름을 딴 '렌다쿠의 라이먼 법칙'을 그보다 약 100년이나 앞서 발견하기도 했답니다.
노리나가가 세상을 떠날 무렵 그의 문인(제자)은 487명이나 됐고, 그중 200명이 그의 고향 이세국 사람이었어요.
상인과 농민이 큰 몫을 차지했다는 점도 눈에 띄어요.
학자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 널리 스며든 학문이었던 거죠.
그가 국학으로 찾으려던 일본의 마음은 시 한 수에 압축돼 있어요.
"敷島の大和心を人問はば,朝日に匂ふ山桜花" — "누군가 진정한 일본인의 정신을 묻거든, 아침 햇살에 빛나는 산벚꽃을 가리키라"는 뜻이에요.
화려한 설명 대신 아침 볕에 조용히 물든 산벚꽃 한 그루를 내미는 것, 그게 노리나가가 옛 문헌 밑에서 찾아낸 신토와 국학의 결이었어요.
국학은 중국식 해석을 걷어내고 고사기 같은 옛 문헌을 그대로 읽는 방법이고, 신토는 그 밑에서 드러나는 일본 신들의 길이에요.
노리나가는 이 둘을 한 몸으로 여겨, 옛 글을 꼼꼼히 읽는 일이 곧 일본 본래의 마음과 신들의 길을 되찾는 일이라고 봤어요.
나오비노미타마가 그 복고 정신을 담은 총론이었고요.
산벚꽃 한 그루로 대신한 그 마음이, 노리나가가 평생 찾던 답이었다는 것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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