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소라이는 인(仁)을 사람마다 마음속에 타고난 착한 씨앗으로 보지 않았어요. 옛 성인이 만들어 둔 다스림의 길 안에서, 윗사람이 백성을 먹이고 편안하게 살게 해 주는 실제 능력이 바로 인(仁)이라고 봤습니다.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1666년부터 1728년까지)는 에도 시대에 활동한 유학자예요.
옛 성인이 만든 다스림의 길, 곧 선왕의 도(先王之道)를 강조했고, 경전을 옛 중국어 그대로 읽어야 한다는 고문사학(古文辭學)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런 소라이가 인(仁)을 이렇게 풀었어요.
인(仁)은 '내 마음을 착하게 갈고닦는 일'이 아니라 '백성을 편안하게 살게 하는 일'이라고요.
학교로 옮겨 볼게요.
마음씨는 참 곱지만 정작 반 친구들이 굶든 다투든 아무것도 안 하는 반장이 있고, 속마음이야 어떻든 급식 순서를 정하고 싸움을 말리고 청소를 굴러가게 만드는 반장이 있어요.
소라이가 인(仁) 있는 사람이라고 부른 쪽은 뒤쪽이에요.
마음의 온도가 아니라, 여럿을 실제로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에요.
그게 소라이의 인(仁)입니다.
소라이가 이런 말을 꺼낸 데는 상대가 있었어요.
당시 학문의 주류였던 주자학(성리학)이에요.
주자학은 인(仁)을 하늘이 사람마다 마음속에 심어 준 착한 본성, 곧 천리(天理)로 봤어요.
그러니 공부의 방향도 안쪽을 향합니다.
조용히 앉아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욕심을 걷어내면 그 안의 인(仁)이 드러난다는 거죠.
소라이는 여기에 반대했어요.
그는 1716년경부터 『논어징(論語徵)』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주자의 『논어』 풀이와 이토 진사이의 해석을 반박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소라이가 보기에 인(仁)은 남몰래 마음을 닦아 얻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나 여럿을 살리는 데서 완성되는 것이었어요.
두 입장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습니다.
| 물음 | 주자학의 인(仁) | 소라이의 인(仁) |
|---|---|---|
| 어디에 있나 | 사람마다 타고난 마음속 본성 | 백성을 편안케 하는 다스림의 일 |
| 뿌리는 | 하늘이 정한 이치(천리) | 옛 성인이 만든 제도 |
| 어떻게 이루나 | 마음을 들여다보고 닦아서 | 실제로 사람들을 잘 살게 해서 |
| 누구의 일인가 | 누구나 안으로 | 특히 다스리는 자리의 몫 |
인(仁)만 따로 뚝 떼어 나온 생각이 아니에요.
소라이의 도(道) 자체가 남달랐거든요.
그는 도가 우주에 원래부터 깔려 있는 원리가 아니라, 옛 성인들이 세상을 잘 굴러가게 하려고 일부러 만들어(작위·作爲) 경전에 적어 둔 제도라고 봤어요.
그 제도가 바로 예악형정(禮樂刑政)이고요.
예(禮)는 사회의 질서를, 악(樂)은 마음의 함양을 맡는다고 했습니다.
요리로 비유해 볼게요.
주자학은 '좋은 맛은 하늘이 재료 안에 미리 넣어 둔 것이니 마음을 비우면 우러난다'고 말하는 쪽이라면, 소라이는 '맛은 옛 요리사가 불과 소금과 순서를 궁리해 만들어 낸 솜씨'라고 말하는 쪽이에요.
도가 사람이 만든 솜씨라면, 그 안의 덕인 인(仁)도 마음속 성분이 아니라 실제로 상을 차려 여럿을 배불리 먹이는 능력이 됩니다.
소라이가 성리학의 도덕주의가 사람의 감정을 억누른다고 비판하며 감정의 자연스러운 표출을 중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안으로 파고들어 마음만 다그치는 공부보다, 밖에서 여럿을 살리는 일을 인(仁)의 자리로 옮겨 놓은 거죠.
소라이의 인(仁)은 우리에게 질문 하나를 남겨요.
착한 마음과 좋은 결과 중 무엇으로 사람을 평가할까 하는 물음이에요.
소라이의 답은 분명한 편이에요.
'나는 마음이 따뜻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고, 곁의 사람이 실제로 편안해졌는지를 봐야 한다는 거죠.
봉사 동아리 회장이 아무리 봉사 정신을 외쳐도 정작 활동이 엉망이면 인(仁)이 아니고, 말수 적은 회장이라도 회원들이 제 몫을 하며 잘 굴러가게 만들면 그쪽이 인(仁)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 생각은 그늘도 있어요.
결과와 다스림 쪽으로 무게가 쏠리면, 사람 각자의 마음속 도덕은 뒷전으로 밀리기 쉬워요.
실제로 소라이 사후 나카이 치쿠잔은 그가 개인의 도덕적 자기 개선 가능성을 부정했다며 반박했습니다.
오규 소라이의 인(仁)은 마음속에 타고난 착한 본성이 아니라, 옛 성인이 만든 다스림의 길 안에서 백성을 편안하게 살게 해 주는 실제 능력이었어요.
주자학이 인(仁)을 안으로 닦는 마음의 문제로 봤다면, 소라이는 그것을 밖으로 드러나 여럿을 살리는 정치의 일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가 남긴 물음, '따뜻한 마음이냐 편안해진 사람들이냐'는 지금 누군가를 평가할 때에도 곱씹어 볼 만합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