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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안도 쇼에키는 살아서는 거의 무명이었고 죽은 뒤 100년 넘게 잊혔어요. 1899년 한 학자가 헌책방에서 그의 원고를 우연히 손에 넣으면서, 묻혀 있던 사상이 근대에 와서야 다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안도 쇼에키(安藤昌益, 1703년부터 1762년까지)는 에도 시대 데와국(지금의 아키타 지역) 출신 의사이자 사상가예요.
그런데 그의 이름이 지금 우리에게 전해진 과정 자체가 하나의 이야깃거리입니다.
"재발견"이라는 말은 원래 알려졌던 것을 다시 찾았다는 뜻이 아니에요.
쇼에키는 애초에 세상에 거의 알려진 적이 없었어요.
집에 두고 오래 안 쓴 물건이 다락방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잊히듯, 그의 생각은 아무도 펼쳐 보지 않은 원고 뭉치 속에 100년 넘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되어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하고 처음처럼 알려진 거예요.
그래서 그는 흔히 "잊혀진 사상가"라고 불립니다.
쇼에키는 하치노헤에서 의사로 개업해 이름을 얻은 명의였어요.
어려운 치료를 관청에서 맡길 정도였고, 농민들은 그를 밭을 지키는 큰 신이라는 뜻으로 '수농대신(守農大神)'이라 부르며 따랐다고 해요.
의사로서는 존경받은 셈이죠.
하지만 사상가로서는 사정이 달랐어요.
그가 쓴 대표작 『자연진영도(自然眞營道)』는 무사 계급을 비판하고 당시 사회를 뿌리부터 뒤집어 보는 내용이라, 세상에 드러내놓고 알리기 어려웠습니다.
자료마다 온도차가 있어요.
영어권 자료는 그가 생전에 이름난 철학자가 되지 못했고 따르는 사람도 적었다고 적고, 한국어·중국어 자료는 제자 가미야마 센안을 중심으로 '쇼에키학파'가 있었다고 적어요.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흔히 붙는 '일본이 낳은 최대의 사상가'라는 평가가 살아 있을 때의 명성이 아니라 훨씬 뒤에 붙은 후대의 평가라는 점입니다.
반전은 1899년에 일어났어요.
교토대학의 가노 고키치(狩野亨吉) 박사가 헌책방에서 『자연진영도』 원고를 발견한 겁니다.
헌책방을 둘러보다 낡은 책 한 권을 집어 든 순간, 100여 년 만에 한 사람의 생각이 다시 숨을 쉬게 된 셈이에요.
가노는 이 원고의 독창성과 날카로운 비판에 크게 감탄했다고 해요.
한국어 자료는 그가 쇼에키를 일본이 낳은 최대의 사상가라며 높이 평가했다고 전하는데, 다만 이 표현은 한국어 자료의 서술이고 일본어 원문 표현까지 확인된 것은 아니에요.
중요한 건 이 발견이 없었다면 우리가 쇼에키라는 이름조차 몰랐을 거라는 점입니다.
안타까운 이야기가 하나 더 있어요.
되찾은 원고가 온전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자연진영도』는 원래 총 101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이었어요.
그런데 대부분이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불타 사라졌고, 지금은 15책만 남아 있어요.
그중 12책은 도쿄대학 종합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백 권이 넘던 큰 책장이 무너져 열다섯 권만 건진 셈이니, 오늘날 우리가 읽는 쇼에키는 그가 남긴 생각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그래서 그의 사상을 이야기할 때는 "남은 것만으로 짐작한다"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일본 안에서 재발견된 쇼에키가 세계로 나간 데에는 한 외국인의 역할이 컸어요.
캐나다의 외교관이자 역사가인 허버트 노먼(E. Herbert Norman)이 쇼에키를 다룬 책을 써서 서구에 널리 알린 거예요.
책 제목은 『Ando Shoeki and the Anatomy of Japanese Feudalism』인데, 출간 연도는 자료마다 엇갈려요.
한국어 자료는 1950년, 영어권 자료의 참고문헌은 1949년으로 적고 있어서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잊혔던 시골 의사의 생각이 헌책방에서 되살아나고, 지진에서 살아남은 몇 권을 통해, 마침내 태평양 건너까지 이름을 알리게 된 거예요.
안도 쇼에키의 '재발견'은 세 장면으로 기억하면 좋아요.
첫째, 그는 의사로는 존경받았지만 사상가로는 살아서 거의 알려지지 못했고 죽은 뒤 100년 넘게 잊혔어요.
둘째, 1899년 가노 고키치가 헌책방에서 『자연진영도』 원고를 발견하면서 근대에 와서야 빛을 봤어요.
셋째, 원고는 원래 101권이었지만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사라져 지금은 15책만 남았고, 허버트 노먼의 책을 통해 세계로 알려졌어요.
그러니 '일본이 낳은 최대의 사상가'라는 평가는 살아생전의 명성이 아니라, 우연한 발견이 만들어 준 뒤늦은 이름이라는 점을 기억해 두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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