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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성인비판이란, 공자 같은 성인(聖人)들이 스스로 밭 갈지 않고 남이 지은 것을 먹으면서 신분과 착취가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고 본 안도 쇼에키의 주장이에요. 존경받아 온 성인을 오히려 세상을 망친 사람으로 뒤집어 본 거예요.
반에서 아무도 청소는 안 하는데, 한 사람이 "청소 당번은 이렇게 정하는 거야"라며 규칙만 잔뜩 만들고 정작 자기 손엔 걸레 한 번 안 댄다고 해 봐요.
게다가 그 규칙 덕분에 자기는 편한 자리를 차지한다면 어떨까요.
안도 쇼에키가 성인을 바라본 눈이 딱 이랬어요.
안도 쇼에키(安藤昌益, 1703~1762)는 에도 시대 데와국 아키타 출신의 의사이자 사상가예요.
대표작은 1753년에 완성한 『自然眞營道(자연진영도)』고요.
보통 '성인(聖人)'이라고 하면 공자처럼 세상이 우러러보는 큰 스승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쇼에키는 이 성인들을 존경하기는커녕 정면으로 비판했어요.
이유는 하나예요.
성인들은 스스로 밭 갈아 먹지 않고, 남이 애써 지은 곡식을 먹으면서 가르침을 팔았다는 거죠.
땀 흘려 농사짓는 사람 위에 앉아 훈수만 두는 사람, 그게 쇼에키가 본 성인의 정체였어요.
쇼에키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는 잣대는 하나였어요.
바로 '직경(直耕)'이에요.
스스로 밭을 갈아 먹고 스스로 베를 짜 입는 것, 즉 제 힘으로 제 먹을 것을 마련하는 삶이죠.
쇼에키는 이 직경이야말로 자연을 따르는 바른 삶이라고 봤어요.
이 잣대를 성인에게 대 보면 답이 뻔해졌어요.
성인은 직경하지 않았거든요.
밭에 안 나가고 글과 가르침으로 먹고살았으니까요.
쇼에키 눈에는 무사도, 승려도, 상인도 마찬가지였어요.
다들 남이 지은 것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죠.
그래서 쇼에키는 불교의 계율을 비틀어 '다섯 가지 끔찍한 죄'와 '열 가지 잘못'이라는 목록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 죄목을 보면 지도자가 되는 것,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이래라저래라 가르치는 것, 글을 쓰며 잘난 척하는 저술가가 되는 것이 들어 있어요.
하나같이 성인이 해 온 일들이죠.
존경받던 행동이 쇼에키의 손에서 죄목으로 뒤집힌 거예요.
쇼에키의 성인비판은 자연스럽게 '반유교'로 이어졌어요.
성인 중에서도 그가 가장 세게 비판한 대상이 공자와 유교였거든요.
왜 그랬을까요.
당시 에도 막부는 신분과 계급으로 굴러가는 사회였고, 이 질서를 지키려고 유교, 특히 주자학을 적극 이용했어요.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자리는 하늘이 정한 이치다"라고 가르치면, 농민이 아무리 힘들어도 "원래 그런 거"라며 참게 되잖아요.
쇼에키는 바로 이 지점을 꿰뚫어 봤어요.
유교가 봉건제를 떠받치고 민중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인다고 본 거예요.
그가 살던 오우 지방엔 1749년, 1755년, 1757년 잇달아 흉년이 들었고, 굶주림 속에 어린아이를 버리는 일까지 벌어졌어요.
이런 참상을 두 눈으로 본 의사 쇼에키는 병의 뿌리가 눈앞의 이익만 좇는 사회 시스템에 있다고 진단했고, 그 시스템을 떠받치는 사상으로 유교를 지목한 거죠.
여기서 헷갈리기 쉬운 대목이 있어요.
쇼에키가 성인과 유교, 불교를 비판했다고 해서 모든 신앙을 통째로 부정한 건 아니에요.
그는 조직화된 종교가 사람의 정신을 억누른다고 봤지만, 신도(神道)의 신들만은 자연의 화신으로 여겨 존중했어요.
자연 그 자체를 신처럼 보는 범신론에 가까운 태도였죠.
그러니 쇼에키의 칼끝이 겨눈 것은 '신앙 일반'이 아니라, 땀 흘리는 사람 위에 군림하며 착취를 정당화하는 구조였다고 이해하는 편이 정확해요.
참고로 쇼에키는 생전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상가였고, 1899년 교토대학의 가노 고키치가 헌책방에서 『自然眞營道』 원고를 발견하면서 100여 년 만에 다시 조명받았어요.
워낙 앞서간 비판이라 당대엔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거죠.
안도 쇼에키의 성인비판은 '존경받는 성인이 사실은 세상을 망쳤다'는 뒤집기예요.
잣대는 직경(直耕), 스스로 밭 갈아 먹는 삶이었고, 이 잣대로 보면 밭에 안 나가고 남의 것을 먹으며 가르침을 판 성인은 착취의 출발점이 됐어요.
반유교는 여기서 자연스럽게 나온 결론이에요.
공자와 유교가 신분 질서를 하늘의 이치라며 착취를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고 봤으니까요.
다만 그가 신도의 신은 존중한 것처럼, 신앙 전부를 부정한 게 아니라 사람 위에 군림하는 구조를 겨눴다는 점만 기억하면, 쇼에키의 성인비판을 오해 없이 잡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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