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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법세(法世)는 법과 신분으로 남을 부려 먹는 착취의 세상이고, 자연세(自然世)는 누구나 스스로 밭 갈아 먹고 옷 지어 입는 평등한 세상이에요. 안도 쇼에키는 그 갈림길이 '직경(直耕)', 곧 저마다 제 손으로 농사짓느냐에 달렸다고 봤어요.
한 밥상을 떠올려 볼게요.
밥을 지은 사람이 그 밥을 먹으면 아무도 억울하지 않아요.
그런데 밥은 한 사람이 짓고, 그 밥을 다른 사람이 앉아서 받아먹는다면 어떨까요?
안도 쇼에키(安藤昌益, 1703~1762년)는 바로 이 물음으로 세상을 둘로 갈랐어요.
그는 에도 시대 데와국(지금의 아키타 지역) 출신 의사이자 사상가였는데, 사람들이 굶어 죽고 심지어 갓난아기까지 버려지는 현실을 보며 '세상이 왜 이렇게 됐나'를 파고들었죠.
그가 찾은 답이 '법세'와 '자연세'예요.
법세(法世)는 법과 계급, 착취가 지배하는 타락한 세상, 바로 쇼에키 자신이 살던 시대예요.
반대로 자연세(自然世)는 그 이전에 있었다고 그가 상상한, 신분도 착취도 없는 평등한 세상이고요.
둘의 차이를 표로 정리하면 이래요.
| 자연세(自然世) | 법세(法世) | |
|---|---|---|
| 밥을 짓는 사람 | 모두가 직접 | 소수만, 나머지는 받아먹음 |
| 신분·계급 | 없음 | 무사·농민으로 나뉨 |
| 지배 원리 | 자연 그대로 | 법과 권위 |
| 쇼에키의 평가 | 온전한 세상 | 병든 세상 |
쇼에키가 살던 곳은 흉년이 잦았어요.
그가 자리 잡은 오우 지방에는 1749년, 1755년, 1757년에 잇따라 흉년이 들었고, 같은 시기 간토 지방에서는 먹일 입을 줄이려 갓난아기를 죽이는 일까지 널리 벌어졌어요.
명의로 이름난 의사였던 그는 이런 참상을 눈앞에서 보면서 '이건 개인의 병이 아니라 사회의 병'이라고 생각을 바꿨어요.
그가 짚은 병의 뿌리는 이거였어요.
정작 농사를 짓는 사람은 굶는데, 밭 한 번 안 가는 무사와 지배층은 그 곡식을 걷어 배불리 먹는 구조요.
법과 신분이라는 이름으로 이 불평등을 당연하게 만든 세상, 그게 법세예요.
그는 막부가 이런 착취를 정당화하려고 유교, 특히 주자학을 이용했다고 봤어요(이 유교 비판 자체는 다른 이야기라 여기선 짚고만 넘어갈게요).
요컨대 법세는 '누군가는 짓고 누군가는 뺏는' 게 규칙이 된 세상인 거예요.
자연세와 법세를 가르는 결정적 열쇠말이 바로 직경(直耕)이에요.
스스로 밭을 갈아 먹고 스스로 베를 짜 입는다는 뜻이에요.
영어권에서는 이를 'Right Cultivation(바른 경작)'이라고 옮기기도 해요.
비유하자면 이래요.
반 아이들이 다 같이 청소하면 아무도 억울하지 않지만, 몇 명은 놀고 몇 명만 계속 청소하면 불만이 쌓이잖아요.
쇼에키가 보기에 자연세는 모두가 청소하는 반이고, 법세는 노는 사람이 청소하는 사람을 부리는 반이에요.
그러니 직경이 무너지는 순간, 즉 '밭 안 가는 사람이 밭 가는 사람을 먹여 살리게' 되는 순간부터 세상은 법세로 굴러떨어져요.
반대로 모두가 다시 제 손으로 밭을 갈면 세상은 자연세로 돌아가고요.
착취의 뿌리를 신분이나 법이 아니라 '누가 직접 일하느냐'라는 아주 소박한 자리에서 찾은 거예요.
쇼에키의 역사관은 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아요.
'자연세 → 법세 → 자연세'로 되돌아오는 둥근 원에 가까워요.
원래 온전했던 세상이 병들었으니, 언젠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는 거죠.
다만 법세에서 자연세로 단번에 건너뛸 수는 없다고 봤어요.
그 사이에 과도기가 필요한데, 여기서 그는 '읍정(邑政)'이라는 마을 자치를 바탕으로 실제로 밭 가는 사람, 곧 직경자가 결정권을 쥐는 사회를 그렸어요.
그리고 이 과도기에서 직경과 호성(서로 어울려 사는 이치)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참으로 바른 사람, 정인(正人)이 나타날 때 비로소 자연세로 넘어간다고 했어요.
영어권에서는 이 인물을 'Right Man'이라 부르는데, 흥미롭게도 쇼에키는 자신을 그 정인이라고 여기지 않았어요.
세상을 되돌릴 사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본 셈이죠.
쇼에키의 사상은 훗날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 환경운동과 곧잘 엮여 재평가돼요.
'평등'과 '착취 비판'이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겹치니까요.
하지만 조심할 대목이 있어요.
그의 자연세는 '앞으로 인류가 발전해 도달할 미래'가 아니에요.
서구식 진보사관은 세상이 계단처럼 위로 올라간다고 보고, 변증법적 발전사관은 갈등을 딛고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고 봐요.
그런데 쇼에키의 그림은 계단이 아니라 둥근 원, 즉 잃어버린 본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동양 고대의 순환사관에 가까워요.
그러니 그를 근대 서구 이념의 선구자로 똑같이 보면 오해가 생겨요.
그가 꿈꾼 건 '앞으로 갈 새 세상'이 아니라 '되찾아야 할 옛 온전함'이었으니까요.
안도 쇼에키의 자연세와 법세는 어렵게 볼 필요가 없어요.
밥을 지은 사람이 그 밥을 먹으면 자연세, 짓지 않은 사람이 뺏어 먹으면 법세예요.
그 갈림길에 놓인 열쇠말이 바로 직경, 저마다 제 손으로 밭 갈고 옷 짓는 삶이고요.
법세는 직경이 무너져 소수가 다수를 부리게 된 병든 세상이며, 자연세는 모두가 다시 밭 갈아 평등해진 온전한 세상이에요.
그리고 그가 그린 역사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아니라 본래 자리로 되돌아오는 둥근 원이라는 점, 이 하나만 기억하면 자연세 대 법세의 핵심은 다 잡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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