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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식인편〉의 핵심 메시지는 이거예요. 인(仁)은 밖에서 새로 배우거나 억지로 단속해서 지키는 게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識) 진실함(誠)과 공경함(敬)으로 그저 보존하기만 하면 된다는 거죠.
북송 시대의 학자 정호(1032년~1085년)는 성격이 온후하고 넉넉해서, 제자들이 그와 함께 있으면 '봄바람 속에 앉아 있는 것 같다(如坐春風)'고 했대요.
이 사람의 생각이 잘 담긴 짧은 글이 바로 〈식인편(識仁篇)〉이에요.
제목부터 풀어 볼게요.
'식(識)'은 알아차린다, '인(仁)'은 남을 아끼고 어질게 대하는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식인편〉은 '인을 알아차리는 글'이라는 뜻이죠.
여기서 정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딱 하나예요.
"어짊은 어디 멀리서 배워 오는 게 아니라, 이미 네 안에 있으니 그걸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보통 우리는 무언가를 '배운다'고 생각하면, 학원에 가고 문제집을 풀고 밖에서 지식을 채워 넣는 장면을 떠올려요.
그런데 정호는 인(仁)만큼은 그런 게 아니라고 봤어요.
비유하자면 이런 거예요.
자전거 타는 법은 책 백 권 읽는다고 알게 되지 않죠.
넘어지고 페달을 밟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이 '아, 이거구나' 하고 감을 잡아요.
그 뒤로는 잊어버리지 않고요.
인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개념을 달달 외워서 아는 게 아니라, 이미 내 마음이 남의 아픔에 반응하는 그 자리를 스스로 '알아채는' 거죠.
정호는 〈식인편〉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仁者渾然與物同體, 義禮智信皆仁也. 識得此理, 以誠敬存之而已(인자혼연여물동체, 의례지신개인야. 식득차리, 이성경존지이이)"
풀이하면 "어진 사람은 만물과 한 몸처럼 어우러지니, 의·예·지·신이 모두 인이다. 이 이치를 알아차리면 진실함과 공경함으로 그것을 보존할 뿐이다"라는 뜻이에요.
앞부분의 '만물과 한 몸'이라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큰 주제라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루고, 여기서는 뒷부분, '알아차려서 보존한다'는 방법에 집중해 볼게요.
정호는 저 문장 바로 뒤에 재미있는 말을 덧붙여요.
"不須防檢, 不須窮索(불수방검, 불수궁색)", 즉 "따로 단속할 필요도, 파고들어 찾을 필요도 없다"는 거예요.
'방검(防檢)'은 마음이 나쁜 데로 새지 않게 계속 감시하고 단속하는 거예요.
'궁색(窮索)'은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캐내는 거고요.
정호는 이 둘 다 지나치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봤어요.
왜 그럴까요?
예를 들어 볼게요.
잠을 잘 자려고 '자야 해, 자야 해' 하고 계속 감시하면 오히려 더 말똥말똥해지죠.
또 친구를 정말 아끼는 마음이 있는데도 '이게 진짜 우정이 맞나' 하고 끝없이 따지고 분석하다 보면, 정작 따뜻하게 대하는 일은 놓쳐 버려요.
인도 그래요.
이미 내 안에 있는 어진 마음을 자꾸 밖에서 검사하고 캐물으면, 그 마음 자체가 굳어 버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호는 '알아차렸으면 됐다, 그다음엔 지나치게 애쓰지 마라'고 한 거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에요.
정호는 딱 하나만 하라고 해요.
'성경(誠敬)으로 보존하기'요.
'성(誠)'은 진실함, 자기를 속이지 않는 마음이에요.
'경(敬)'은 함부로 하지 않고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공경의 태도고요.
알아차린 그 어진 마음을, 진실하고 공경하는 태도로 그냥 잘 간직하라는 거예요.
화분에 비유하면 이해가 쉬워요.
씨앗(인)은 이미 심겨 있어요.
우리가 할 일은 씨앗을 억지로 뽑아 다시 심거나(밖에서 구하기), 흙을 파헤쳐 뿌리를 확인하는 게(궁색) 아니에요.
그저 물을 잘 주고 햇볕을 쬐게 하며 지켜보는 것(성경으로 보존), 그거면 충분하다는 거죠.
이렇게 보면 〈식인편〉의 메시지는 놀랄 만큼 단순해요.
'이미 있으니, 알아차리고, 잘 지켜라.'
〈식인편〉은 천 년 전 글이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말을 걸어요.
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려면 무슨 대단한 비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곤 해요.
하지만 정호는 반대로 말해요.
누군가 넘어졌을 때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가는 그 마음, 그게 이미 인이라고요.
새로 만들 필요 없이,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아끼기만 하면 된다는 거죠.
동시에 지나친 자기 검열도 내려놓게 해 줘요.
'내가 충분히 착한가'를 끝없이 감시하고 캐묻는 대신, 이미 있는 따뜻함을 진실하게 지켜 가면 된다는 거니까요.
〈식인편〉의 메시지는 세 마디로 줄일 수 있어요.
인(仁)은 밖에서 배워 오는 게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고(識得此理), 그러니 억지로 단속하거나 파고들 필요 없이(不須防檢, 不須窮索), 진실함과 공경함으로 그저 잘 보존하면 된다(以誠敬存之)는 거예요.
어짊을 어려운 숙제가 아니라 이미 심긴 씨앗으로 본 것, 그게 정호가 짧은 이 글에 담은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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